기획 완결 MZ세대를 말하다

성향 따라 뭉치고, 콘텐츠로 통한다

입력 2020. 12. 08   16:29
업데이트 2020. 12. 0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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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컨셉친: Concept(콘셉트)+親(친구)
-취향에 맞는 콘셉트 세계관 속 콘텐츠로 소통하다 
 
특정 콘텐츠 끌리면 쉽게 팬층 형성
공통의 소재로 ‘그들만의 세계’ 창조
재미에 열광…2차·3차 콘텐츠 생산
가입·탈퇴 자유롭고 위계 필요없어 

 
몇 달 전에 우리 사회 젊은이의 멘토라고 일컬어지는 이들 중 첫손가락에 꼽힐 만한 친구와 자리했다. 아주 오랜 친구였는데, 한동안 못보다 만나 더욱 반가웠다. 마침 그때가 꼰대 레벨을 확인하는 ‘르르르-꼰대성향검사’가 나온 직후였다. 친구가 바로 큰 관심을 보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꼰대’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아졌단다. 대부분 농담이지만, 나이를 기준으로 꼰대 낙인을 찍는 이들도 있고, 그 낙인은 으레 마음을 후벼 파는 댓글로 연결되곤 했다. 그래서 정말 자신의 꼰대 레벨이 궁금하다고 했다. 다행스럽게 그의 꼰대 레벨은 가장 낮은 ‘Lv.1’, 즉 1단계가 나왔다. 또 꼰대 유형으로는 ‘옹졸한 평화주의자’가 나왔다. 1단계에서는 그냥 안심하는 정도의 반응이던 친구가 자신의 꼰대 유형을 보고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자신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고 유쾌하게 고백했다. 특히 ‘옹졸하다’는 표현이 숨기려 했던 부분을 꼬집어 끌어냈다고 했다. 그에게 ‘Lv.2-망원동 나르시시스트’라는 필자의 결과도 나누면서 우리의 대화는 제대로 불이 붙었다.


올해를 풍미한 유행 중 하나가 꼰대성향검사를 포함해 MBTI로 대표되는 성격·취향 테스트다. 이곳 연재에서도 지난 7월 15일 자에 ‘몰랐던 나를 알고, 대화의 문을 연다’라는 제목으로 특별히 그런 테스트들을 조명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콘셉트를 파악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소개하고 상대방을 알게 되며 대화를 시작하고, 어떻게 사귀어야 할지 감을 잡으면서 그 세계 안에서 친구가 된다. 꼰대성향검사에서는 상대방과 나눌 수 있는 ‘등급’과 재미있게 정의되고 묘사된 ‘유형’, 그리고 그 유형별 대처법을 ‘말을 걸 수 있는 장치’라고 했다. 그런 장치가 250만 명 이상을 꼰대 테스트로 이끌었고, 꼰대를 기준으로 한 그들만의 콘셉트 세계를 만들었다.

콘셉트 세계는 소규모로 은밀하게도 만들어진다.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엽기적인 사진을 올렸다. ‘좋아요’를 눌렀더니 그 친구에게서 DM(Direct Mail)이 왔다. 24시간 안에 비슷하게 부끄럽거나 엽기적인 자신의 사진을 올리며 챌린지를 이어가라고 한다. 24시간 안, 바로 내일까지 해야 한다고 해서 ‘Until Tomorrow’라고 불린 이 인스타그램 챌린지는 ‘엽기’라는 콘셉트 아래 코로나 시대 만나지 못하는 친구 사이를 확인하는 의미로 인기를 끌었다. 기성세대는 이 챌린지 이야기를 듣고 바로 ‘행운의 편지’를 떠올렸다. SNS라는 전달 매체, 스스로 선택하는 사진이나 영상 콘텐츠, 24시간으로 더욱 짧아진 한시성,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연대의 지속성 등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사실 ‘24시간’이란 제한은 2015년에 나와서 미국과 유럽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스냅챗(snapchat)을 연상시키는 면도 있다. 스냅챗의 몰락은 찰나적인 재미에 집중하면서 지속적인 관계와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지 못한 까닭이 크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취향이 맞는 사람들끼리 어떤 식으로건 무리 짓는다. 또 그 결속이나 관계를 특징짓는 규정이나 용어들이 있다. 이전 사람들 사이에는 ‘의형제’니 ‘S동생/S언니’와 같은 의사(擬似) 가족 관계를 결성하는 게 흔했다. 패밀리(family)의 줄임말인 ‘팸’과 용어상으로는 비슷한 것 같다. MZ세대의 팸은 주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가입과 탈퇴가 이뤄진다. 의형제라면 떠오르는 『삼국지연의』 속 유비·관우·장비를 생각하면 이들은 복숭아나무 아래서 형제의 관계를 맺었다. 같은 날 태어나지 않았으나, 한날한시에 죽겠다며 오로지 죽음만이 의형제 관계를 끝낼 수 있다고 엄중한 탈퇴 조건을 붙였다. S자매는 맺기도 힘들지만, 관계를 끊으려면 변절자 취급이 이어지곤 했다. 온라인에서는 간단하게 탈퇴문을 작성해 게시하거나, 그럴 필요도 없이 소통을 끊는 것만으로도 탈퇴가 쿨하게 이뤄진다. 약간 예외적으로 초등 여학생이 대부분인 유튜브 팸의 경우 탈퇴문 관리가 심한 편이다. 1000자 이상의 탈퇴문을 요구한다. 탈퇴문을 쓰지 않으면 공개 저격 영상을 만들어 박제하고 다른 구독자와 소통하지 못하게 한단다. 그래도 유튜브 계정을 탈퇴하면 그만이라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접촉 환경 자체가 이전 아날로그 팸의 구속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태다.

같은 콘텐츠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팸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수 비의 뮤직비디오 ‘깡’으로 뭉친 ‘깡팸’이다. 이들은 뮤비 ‘깡’ 자체보다 관련되거나 파생된 밈 혹은 댓글과 같은 2차 콘텐츠를 더 좋아한다. ‘좋아요’ 수를 비교하면 뮤비 영상 자체는 20만 개인 반면 해당 영상의 인기 댓글은 세 배에 해당하는 59만 개를 받았다. 이전의 팸이나 단체가 책임자나 수장을 위시한 위계조직이 있었다면 깡팸은 ‘관리자 없이도 이렇게 평화롭게 잘 돌아가는 커뮤니티도 없습니다’라는 댓글에서 보듯 공통의 소재와 콘셉트로 새로운 유형의 놀이터, 세계를 만들었다.

스칸디나비아 3국 중의 하나인 핀란드에는 ‘산타마을’이란 곳이 있다. 수도인 헬싱키에서 900㎞ 북쪽으로 북위 66도의 북극권이 시작되는 곳이다. 1950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前)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엘리너 루스벨트의 방문을 계기로 세운 작은 오두막을 산타클로스의 집으로 꾸미면서 시작돼, 마을 전체가 산타의 세계로 변신했다. 이제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됐는데, 방문하는 관광객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그곳의 산타에게 편지를 쓴다. 매년 전 세계에서 100만 통 가까이 편지가 온다고 한다. 편지를 분류하고 때로는 답장도 보내는 직원을 따로 두고 있다. 선물을 원하는 어린이들의 간절한 소원이 담긴 편지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어떤 관점으로 보면 크리스마스와 그를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인 산타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곳에 과몰입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올해 MZ세대가 열광한, 이런 만들어진 세계가 있었다.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라는, 보통 ‘빙그레우스’라고 불리는 인물이 불쑥 기업의 공식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라는 명을 받았다며 나타났다. 순식간에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팬층이 형성됐다. 그들은 새로운 의상이나 액세서리 등의 2차 콘텐츠를 만들고, 빙그레우스의 성격을 분석하며 빙그레우스가 만든 세계의 일원으로 뛰어들어 즐겼다. 2004년 시리얼 신제품의 맛을 놓고 한 기업에서 소비자 대상으로 선거 이벤트를 열었다. 당연히 ‘초코맛’이 당선되리라 생각했는데, 커뮤니티 유저들의 집단적인 지원과 그를 응원하는 지지자들에 힘입어 ‘파맛’의 당선이 유력해졌다. 기업에서 초코맛 당선을 선포하며 이 사태를 서둘러 진화했지만, 파맛을 지지한 이들의 반발은 실제 정치 선거와 같은 유형으로 계속됐다. 초코맛을 탄핵하라는 국민청원도 올라오고, 파맛을 되살리라는 팬아트 전시회도 선거 10주년과 15주년을 맞아 열린 것이다. 마침내 기업에서는 파맛 시리얼을 출시했고, 지지자들은 승리의 환호와 함께 파맛 시리얼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2차 콘텐츠를 양산하고 있다. 파맛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단순히 어떤 기능의 제품을 내놓고 사라고 하거나, 특정한 신분이라 그에 맞는 행동을 요구하는 때는 지났다. 제품이나 신분이 가지는 콘셉트와 그를 둘러싼 세계가 수용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MZ세대의 자발적이고 열렬한 반응을 이끌 수 있다. 그로부터 ‘찐팬’ ‘찐친’의 찐한 관계가 형성된다.

박재항 대학내일20대연구소 고문
박재항 대학내일20대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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