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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롤드컵 3회 우승 기록... 인성 겸비한 e스포츠 대명사

기사입력 2020. 12. 03   16:29 최종수정 2020. 12. 03   16:35

46 ‘페이커’, 이상혁 선수
아마추어 고등학생 화려한 등장
2013년 프로 데뷔 첫 해 롤드컵 우승
전 세계 주목하는 lol 미드라이너
여섯 수 앞선 넓은 시야로 허 찔러 

귀감 되는 언행 ‘페이커 신드롬’ 불러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한국 e스포츠 티저 영상에서 의자는 아무 선수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페이커’ 이상혁은 데뷔 다음 해부터 티저 영상에서 의자에 앉는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아무도 이에 토를 달지 못했다.  

 사진=OGN 유튜브 갈무리
실력과 인성을 겸비하며 e스포츠 존재감을 빛낸 이상혁 선수.   사진=나이키-T1 콜라보 프로젝트

2020년 한 해를 e스포츠와 함께해 온 이 코너도 12월을 맞아 이제 몇 개의 연재만을 남겨 둔 상태다. 한 해 동안 e스포츠의 여러 사건과 다양한 종목들, 족적을 남긴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온 와중에 도리어 너무 유명한 나머지 언급하지 않은 선수가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마지막 즈음에 다뤄야 더 의미 깊은 선수일지도 모르겠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다.

2012년, ‘리그 오브 레전드’가 이제 막 시즌 2를 지나고 있을 무렵에는 한국에서 조금씩 이 게임의 인기가 성장하고 있었고, 물밑에서 몇몇 유명 게이머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프로팀 창단이 준비되던 시기였다.

초창기 프로 씬의 선수들이 일반 랭크 게임의 상위권을 지배하고 있던 시기, 시즌 말엽에 갑자기 등장한 ID ‘고전파’는 어마어마한 피지컬과 승률로 순식간에 리그 상위권으로 뛰어오르며 프로팀 선수들과 감독들로부터 ‘도대체 누구냐’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1996년생, 여드름도 채 가시지 않은 아마추어 고등학생 선수의 등장은 초기부터 휘황찬란했다.

수많은 팀이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이는 이 고등학생의 잠재력에 주목했고, 특히 당시 T1의 코치를 맡고 있었던 ‘꼬마’ 김정균 코치는 이 소년의 가능성에 크게 베팅했다. 그리고 2013년, 새롭게 구성된 SKT T1의 미드라이너로 자리 잡으며 소년은 자신의 프로 계정명을 ‘FAKER(페이커)’라고 붙인다.


데뷔와 함께 롤드컵 3회 우승 빛나는 커리어


‘페이커’ 이상혁은 2013년 데뷔와 동시에 ‘리그 오브 레전드’ 모든 관계자의 호기심을 집중시켰다. 랭크 게임에서 워낙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준 선수의 첫 프로 출전은 과연 아마추어의 기세가 프로팀 리그에서도 통할 것인지를 가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방송 경기의 부담감, 이미 자리를 잡은 다른 선배 프로 선수들 속에서의 위압감 등이 장애물이 되었을 테지만, ‘페이커’ 이상혁은 그런 것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프로 선수들마저도 ‘아예 한 수 위에 있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경기를 지배하며 커리어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2013년 데뷔 첫해 국내 리그를 휘젓고 나아가 북미에서 열린 롤드컵 우승까지 거머쥐면서 이상혁은 순식간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미드라이너 자리에 올랐다. 2014년 데뷔 2년 차에는 다소 주춤한 기세였으나, 이후 2015, 2016 롤드컵을 연속으로 우승해 세계 최초 롤드컵 3회 우승자로 등극하는 대기록을 세우며 ‘리그 오브 레전드’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상혁의 실력은 단지 결과로서의 ‘잘한다’에 머무르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미 수많은 경기 경험으로 닳고 닳은 베테랑 프로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이상혁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킬각(킬을 낼 수 있는지의 여부 판단)을 재며 상상도 못하는 순간을 캐치해 상대 선수를 잡아내곤 했다. 빠르고 정확한 암산에 의한 정밀한 판단은 매번 엇나가지 않았고, 상상을 뛰어넘는 이런 ‘슈퍼 플레이’가 곧 이상혁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다.

단순 교전에서의 우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순간 레벨업을 통해 기술 하나를 앞서가는 찰나를 노린 기습이나 나에게 적의 포커스를 맞추게 한 뒤 다른 라인에서 이득을 보는 플레이처럼 이상혁은 이른바 ‘여섯 수는 앞서가는’ 넓은 시야를 통해 허를 찔러냈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최고의 플레이, ‘류’ 류상욱 선수와 같은 ‘제드’ 캐릭터로 맞상대한 경기가 대표적이다. 류상욱의 제드는 체력 100%였고 이상혁의 제드는 체력 10%였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걸린 승부는 상대 제드의 공격을 먼저 흘려내고 비는 쿨타임을 정확히 노려 들어간 계산된 반격으로 오히려 류상욱의 제드가 사망하는 결과를 뽑아내며 전 세계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상황을 선보인 바 있었다. 빠른 판단력과 신체반응, 과감한 승부수가 절묘하게 얽혀 만들어낸 명장면은 이후 이상혁의 플레이를 상징하며 그를 세계 ‘리그 오브 레전드’ 계의 대마왕으로 불리게 했다.


실력보다 중요한 인성, 페이커를 e스포츠의 대명사로 만들다


‘페이커’라는 이름은 이제 전 세계 e스포츠 팬들로부터 e스포츠의 GOAT(Greatest of All Time. 해당 종목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불린다. 농구의 나라 미국 출신인 게임제작사 라이엇 게임즈에서 ‘e스포츠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표현했다는 사실은 이상혁의 존재감이 ‘리그 오브 레전드’ 역사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를 가늠케 한다. 라인전과 운영, 오더와 같은 게임 전반의 모든 능력치에서 사실상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자리했으며, ‘리그 오브 레전드’를 몰라도 ‘페이커’를 아는 사람들을 만들어낼 정도로 게임 안을 넘어 바깥 세계에서까지 위상을 확보하는 선수가 되었다.

이런 그의 배경을 이야기할 때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의 놀라운 성적과 뛰어난 게임 실력만이 아니다. 어느새 2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이상혁의 플레이는 그를 보고 성장해 온 숱한 후배 게이머들 속에서 과거만큼의 독보적인 슈퍼플레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e스포츠계에서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그가 게임 밖에서도 보여줄 수 있는, 성품과 인성에 있다.

e스포츠 게이머, 특히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의 상당수는 데뷔 시점에서 과거 아마추어 시절에 벌였던 문제적 행동들이 발목을 잡는 사례를 겪는다. 욕설이나 트롤링(게임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행위)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거나 혹은 게임 외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며 심한 경우 프로 데뷔 자체에 실패하거나 데뷔 후에도 지속적으로 비난을 듣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문제는 특히 e스포츠가 대중화되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행보를 옥죄는 결과로 돌아오곤 한다. ‘e스포츠가 무슨 스포츠냐, 욕만 하는 인성 나쁜 애들 모이는 곳이다’와 같은 비난으로부터 당당하기 위해서는 스포츠맨십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매너와 에티켓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이상혁의 존재는 사실상 e스포츠의 존재감을 혼자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지분을 가져간다. 과거 기록을 아무리 뒤져 봐도 어디 가서 험한 말 한 번을 내뱉지 않았으며, 팬들의 때로는 과도한 비난에도 별달리 반응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승부욕만을 게임에 불태울 수 있는, 그리고 거기서부터 오는 패배조차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자 하는 매너 있는 스포츠맨십이 ‘페이커’ 신드롬의 기저에 깔려 있다.

이따금 벌어지는, 임요환과 이상혁 중 누가 더 최고의 게이머냐는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잃는다. 실력 좋은 선수야 차고 넘치는 e스포츠 세계지만, 그 속에서도 스스로가 자신이 곧 e스포츠임을 인식하고 그렇기에 더욱 말과 몸과 마음을 단정히 세울 줄 아는, 그럼으로써 스스로가 e스포츠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이겠는가? ‘페이커’ 이상혁의 선수 커리어가 은퇴로 멈춘다 해도 영원히 e스포츠 역사에 빛날 수 있음을 자신하는 이유는 그가 갖는 스스로를 향한 마음가짐이 곧 e스포츠 그 자체를 향하는 리스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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