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영
육군1·2·3사단은 모두 1947년 12월 1일 창설 후 지금까지 6·25전쟁과 대침투작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방개혁 2.0의 일환으로 신속대응사단으로 재탄생하는 등 73년 역사를 발판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이들 사단은 변화하는 작전환경 속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춤으로써 맡겨진 임무를 다하겠다는 계획이다. 최한영 기자/사진=부대 제공
2사단은 대전에서 조선경비대 2여단으로 창설한 후 보병2여단을 거쳐 1949년 5월 12일 사단으로 승격됐다. 6·25 발발 다음 날 의정부로 이동한 사단은 전쟁 중 철원, 포천, 화천 등으로 이동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했다.
1950년 7월 17일부터 22일까지 17연대가 벌인 화령장지구 전투는 6·25 중 2사단의 대표적인 활약으로 꼽힌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펴낸 『6·25전쟁사』에 따르면 화령장은 경북 상주의 작은 마을로, 충북 보은·괴산에서 상주로 연결되는 교통 중심지였다. 이곳을 확보하기 위해 투입된 북한군 15사단에 대항해 17연대는 1사단 등과 함께 적에 맞서 승리하고 사살 1600여 명, 트럭 26대 노획 등의 전과를 거뒀다. 적은 사단장이 면직되고, 이후 낙동강 전투에서도 제대로 된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화령장지구 전투 승리에 힘입어 17연대는 연대장(김희준 중령) 이하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하는 영예를 얻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에도 한국 육군 중 유일하게 참가해 적 500명을 사살하고 136명을 포로로 잡는 등의 전공을 거뒀다.
사단 장병들은 이후 북한강지구(174고지) 전투, 김일성고지(734고지) 전투, 저격능선(590고지) 전투 등에도 투입돼 전공을 거뒀다. 특히 734고지에서의 전공을 인정받아 한국군 최초로 한미 대통령으로부터 동시에 부대표창을 받는 영예를 얻었다. 화령장지구 전투 당시 17연대 2대대장이었던 송호림 장군은 사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송 장군은 6·25 개전 직후 고립무원의 상황이던 연대 병력을 옹진반도에서 철수시켰다. 이후 보은·진천·청주 전투에서 적 남하를 저지하고, 기계·안강 전투에서는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의 공적을 거뒀다. 21대 사단장으로 재임할 때는 양구지구 GOP 경계능력 향상을 위해 지상감시레이더를 운용하고 실전적인 교육훈련으로 2년 연속 군단 사격측정 최우수부대로 뽑히는 등 부대를 최정예 산악사단으로 육성했다. 전투병과 교육사령관(중장)으로 군 생활을 마친 후에는 9대 국회의원과 국방위원장을 역임하며 자주국방의 기틀을 다졌다.
2사단은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각종 대침투작전에 투입되는 등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9회의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다.
이후 국방개혁 2.0에 따라 현재는 제2신속대응사단 창설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2021년 1월 1일 창설을 앞둔 사단은 조국이 부여한 어떠한 임무도 완벽히 수행함으로써 지금까지 쌓아온 전통을 잇는다는 방침이다.
3사단은 기존 5·6·9연대를 기반으로 부산에서 조선경비대 3여단으로 창설됐다. 1949년 5월 12일 육군본부 일반명령 15호에 의거해 사단으로 승격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단은 ‘백골’이라는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다. 6·25 발발 전 월남해 자원 입대한 청년들이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끝까지 조국을 수호하고, 두고 온 북녘땅을 자유의 품속으로 되찾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철모 좌·우에 백골을 그려 넣고 전투에 참가한 것이 기원이다. 이 같은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부대로 전입 오는 모든 장병들은 백골용사 선서를 하고, 백골잔에 물을 담아 선배 전우의 혼을 이어가겠다는 ‘백골의식’을 하고 있다.
사단은 6·25 중에는 한강 방어전투, 안강·기계전투 등 150여 회의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했다. 전군에서 최선봉으로 38선을 돌파한 부대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경북 포항에 주둔 중이던 3사단은 강원도 양양까지 330㎞를 진격했으며, 1950년 10월 1일 사단 맹호연대가 최선봉에 서 38선을 돌파했다.
사단은 한반도 최북단까지 진격한 부대이기도 하다. 사단은 38선 돌파 후 원산을 탈환했으며 혜산진, 백암, 부암까지 진격했다. 진백골연대는 6·25 중 연합군, 국군을 통틀어 유일하게 최북단 부령까지 진격했다는 기록을 남겼으며, 혜산진연대는 한·중 국경선 최북단인 혜산진에 입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부대 애칭을 혜산진으로 정해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전투 영웅들도 배출했다. 이명수 상사는 경북 영덕지구 전투에서 적 전차 3대를 폭파해 부사관 최초로 태극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연제근 상사는 포항 형산강 전투에서 돌격대원 12명을 이끌고 적진에 침투해 적 기관총 진지를 파괴했다. 강원도 양구 변암동 전투에서 18명의 결사대를 꾸려 적 6명을 사살하고 아군 사기를 높인 박석순 소위, 간호장교로 임무수행 중 병원을 기습한 북한군을 사살한 오금손 대위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사단은 정전협정 체결 후에는 1965년 9월 10일부로 현 위치로 이동, 중부전선 최전방에서 GOP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39회의 적 침투 도발을 현장에서 종결하며 빈틈없는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국방개혁 2.0에 맞춰서 장비·부대개편 등의 노력도 지속하고 있는 사단은 앞으로도 73년의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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