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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부처의 겨울궁전 주인 잃고 관람객만 북적

기사입력 2020. 11. 27   16:59 최종수정 2020. 11. 29   09:45

<72> 중국 티베트의 포탈라 궁전 

 
티베트 행정·종교·정치 중심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의 궁전
中 통치에 봉기…포탄 날아들기도
달라이 라마 인도에 임시정부 세워
1959년부터 주인 잃은 궁전으로
중국 문화대혁명 때 파괴 위기도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포탈라 궁전 전경.  사진=news.cgtn.com
1959년 3월 17일 수천 명의 티베트 여성들이 중국의 통치와 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달라이 라마의 본거지인 포탈라 궁전을 에워싸고 있다. 몇 시간 후 전투가 벌어졌고 달라이 라마는 인도에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야 했다.  사진=claudearpi.blogspot.com

중국 티베트 자치구의 주도인 라싸 외곽의 해발 3600m 홍산 기슭에 있는 포탈라 궁전은 티베트의 행정·종교·정치 중심지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궁전이다. 이곳은 7세기에 티베트의 왕인 송첸캄포가 축조했다는 홍산 궁전 자리에 17세기에 제5대 달라이 라마가 새로운 궁전을 건설하면서 지어졌다. ‘바다와 같은 지혜를 가진 스승’이라는 뜻인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에게 살아있는 부처로 여겨지는 지도자다. 역대 달라이 라마들이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 ‘겨울궁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959년 중국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봉기가 일어났을 때 포탈라 궁전은 피해를 입었으며,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면서 주인을 잃고 관람객들만이 드나드는 비운의 궁전이 돼버렸다.


17세기 제5대 달라이 라마에 의해 지어져


히말라야 산맥의 북쪽 쿤룬산맥의 남측에 옆으로 누운 산악지대를 지리적으로 티베트(Tibet)라고 부른다. 기원전 2세기에 티베트 내 여러 국가가 등장했으나 최초의 통일국가는 여러 부족을 통합한 티베트 초대 왕인 송첸캄포(581~649)로부터 시작된다. 왕은 수도를 라싸로 옮긴 뒤 토번(吐蕃) 왕조를 열었는데, 641년 당나라에서 시집온 문성공주와 살기 위해 홍산 궁전을 지었다. 약 3세기 동안 존속했던 토번 왕조는 9세기 중엽에 이르러 몰락하게 된다. 티베트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홍산 궁전도 황폐해졌다.

티베트는 13세기 초 중국의 원나라 시대에 공식적으로 중국 영토에 포함된 이후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700년간 중국의 직간접 지배를 받았다. 1642년 청나라 황제에게 황제 직위를 받은 제5대 달라이 라마 롭상 갸초(1617~1682)가 홍산 궁전 자리에 포탈라 궁전을 착공해 30년에 걸친 대역사가 진행됐다. 1649년 정부청사 역할을 하는 백궁(白宮)을 완공한 후 사원 역할을 담당할 홍궁(紅宮)을 건립하던 중 롭상 갸초는 열반에 들지만, 공사는 차질 없이 진행돼 홍궁은 1694년에 완공됐다.

포탈라는 산스크리트어로 ‘관음보살이 사는 산’이라는 포탈라카에서 유래됐다. 궁전은 그 후 여러 차례 개축과 증축을 거듭해 지금의 규모를 갖추었다. 이곳은 동서 길이 360m, 남북 길이 140m에 이른다. 궁전은 외관상 13층이나 실제로는 9층으로 이뤄져 있고 그 높이가 117m에 달한다. 벽은 두께 2∼5m의 화강암과 나무를 섞어서 만들었다. 내부에는 1000여 개의 방과 20만여 개에 달하는 불상 및 경전이 있다. 총면적은 13만㎡(39325평)이다.


1951년 중국에 강제 합병되며 티베트 수난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제13대 달라이 라마 툽땐 갸초(1876~1933)는 티베트의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마오쩌둥의 공산당 정부는 이듬해 10월 10일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티베트를 침공하고 점령했다. 1951년 티베트는 십칠조협의를 체결하며 중국에 강제 합병됐다. 중국의 강압적인 티베트 통치에 항거해 1959년 3월 10일 티베트 국민들이 일제히 봉기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티베트 전역에서 8만 명의 티베트인이 학살됐다.

달라미 라마를 보호하기 위해 수천 명의 여성이 포탈라 궁전으로 모여들면서 포탈라 궁전에도 전쟁의 포탄이 날아들었다. 당시 폭격을 목격한 한 승려는 “1959년 3월 19일에 중국의 포격이 포탈라 궁전에 가해졌다. 폭탄이 터지며 하늘이 마치 대낮처럼 밝아졌고, 대학과 궁전이 무너져 내렸다”고 밝혔다.

전날인 3월 18일 밤 9시 군복을 입고 병사로 위장한 제14대 달라이 라마 땐진 갸초(1935~)는 소수 인원의 호위를 받으며 티베트를 탈출해 2600㎞나 되는 고단한 여정 끝에 3월 31일 인도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인도에 망명정부를 세운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고유문화의 보존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비폭력 평화주의에 입각한 독립운동을 현재까지 벌이고 있다.


문화재 약탈로 기록물·불상 등 대부분 소실


마오쩌둥이 주도한 극좌 사회주의 운동인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를 거치며 티베트에 3700개나 되던 사찰은 13개만 남고 모조리 파괴됐다. 포탈라 궁전 역시 광기에 찬 홍위병(문화대혁명의 일환으로 준군사적인 조직을 이뤄 투쟁한 대학생 및 고교생 집단)에 의해 파괴될 뻔했으나, 총리 저우언라이(1898~1976)가 군대를 보내 포탈라 궁전의 보호를 지시함으로써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약탈이 빈번히 자행돼 10만 점이 넘는 기록물들과 보석, 그림, 불화, 고대 갑옷, 불상들이 대부분 소실됐다.

중국 중앙정부는 1961년부터 포탈라 궁전을 전국 중점 문화재 보호 장소로 정하고 해마다 자금을 내어 보수하고 있다. 1989년 봄부터 1994년 여름까지 중국은 5300만 위안을 투입해 궁전에 대한 전면 보수를 진행했다. 또한 중국 정부는 포탈라 궁전이 있는 라싸 지역에서 21m가 넘는 건물을 세우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규칙을 제정했다.

포탈라 궁전은 199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궁전은 하루에 1600명만 방문할 수 있도록 입장 제한이 있고, 하루에 6시간만 관람할 수 있다. 궁전 내부는 백궁 일부의 방 이외는 원칙적으로 비공개돼 있고, 홍궁은 역대 달라이 라마의 옥좌와 영탑 등이 공개되고 있다. 티베트가 중국의 자치주로 전락하며 달라이 라마가 사라진 포탈라 궁전은 주인 잃은 비운의 궁전으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만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이상미 문화 예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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