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병영의창

한빛부대에서의 500일

입력 2020. 11. 22   13:14
업데이트 2020. 11. 22   13:21
0 댓글


김 상 우 상사 
남수단재건지원단
김 상 우 상사 남수단재건지원단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 남수단. 신생 독립국으로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내전과 끊이지 않는 종족 간의 분쟁,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이러한 남수단을 돕기 위해 유엔은 유엔남수단임무단(UNMISS)을 조직했다. 남수단 사람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한국처럼 백나일강의 기적을 바란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백나일강의 기적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단숨에 이뤄내는 고도의 경제성장보다는, 당장 눈앞의 배고픔과 위험에서 벗어나는 정도의 가장 현실적인 바람일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공병부대다. 남수단 재건지원의 임무를 부여받고, 2013년 한빛부대 1진을 시작으로 지금의 12진에 이르렀다. 한빛이라는 이름은 ‘세상을 이끄는 환한 큰 빛’의 순우리말로 오랜 내전 끝에 독립한 남수단에 한빛부대가 희망의 빛이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지어졌다.

한국에서는 비포장도로를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이곳 남수단에서는 오히려 포장된 도로를 찾아보는 게 어렵다. 이러한 남수단의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는 중요한 임무가 MSR(주보급로) 보수 작전이다. 한빛부대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임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최근 남수단 정부 및 주민의 숙원사업이었던 망겔라 ~ 보르 ~ 피보르를 잇는 주보급로 보수공사 1000㎞를 달성했다. 이를 통해 UNMISS의 작전지속지원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함으로써 ‘유엔군 최고의 모범부대’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며, 남수단 정부는 경제적 효과 창출과 지역 간 교류 활성화로 주민통합 기여 등 남수단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부대로 평가하고 있다.

한빛부대는 그동안 다양한 민군작전을 펼쳐왔다.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한빛직업학교는 목공·건축·제빵·농업 등 7개 과목을 현지인들에게 교육한다. 현재까지 500여 명의 수료생이 직업학교에서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취업하는 등 남수단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남수단은 우리나라가 6·25 전쟁 직후 겪었던 아픔을 똑같이 겪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도움과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물론 하루아침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지만, UNMISS의 적극적인 도움 아래 남수단은 조금씩 발전해 가고 있다. 이러한 남수단에서 가장 큰 환한 빛을 비추는 부대가 바로 우리 한빛부대라고 생각한다.

파병 임무 연장을 결심했던 때가 생각난다. 파병 생활은 결코 잊지 못할 보람과 뿌듯함을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즈음 문득 보르 마을에서 만난 한 어린이가 생각났다. 깡마른 몸에 해어진 옷을 걸치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흙길을 뛰어다니던 그 아이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경계심 없이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그 아이의 웃음을 더 보고 싶고 조금 더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7월 9일 한빛 11진으로 남수단에 파병됐고, 12진으로 임무를 연장해 현재까지 500일 넘게 작전관 임무를 수행 중이다. 파병 경험이 어떠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임무 수행이나 생활 여건 등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희망’이라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꼈으며, 그 희망을 지켜주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무언가를 주기 위해 왔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은 것이 나의 파병 경험이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