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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약탈한 예술품을 구하라’...세기의 작전, 이곳서 시작되다

기사입력 2020. 11. 08   13:32 최종수정 2020. 11. 08   13:39

(70)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1870년 임대 건물에서 소규모 개관
역사 짧지만 약 200만 점 작품 소장
미국 문화·예술의 자부심으로 부상 

 
1941년 美 전역 미술관 관장 모여
특수부대 ‘모뉴먼트 멘’ 창설 회의
13개국 전문가 유럽 전선 뛰어들어
500만 점 이르는 문화재 반환 활약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전경. www.britannica.com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 박물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1870년 개관한 이곳은 루브르와 대영 박물관에 비해 역사는 길지 않지만, 약탈을 통한 작품 수집이 아닌 기증과 구입 등을 통해 고대 이집트부터 유럽의 회화와 조각·현대미술까지 200만 점 이상의 소장품을 자랑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이 점령한 국가에서 강제로 압수하고 약탈한 문화재를 반환하기 위한 연합군의 특수부대 ‘모뉴먼츠 멘(Monuments Men)’ 창설을 위한 회의가 1941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렸다. 모뉴먼츠 멘은 1943년 창설돼 1946년까지 나치가 압수한 미술품을 찾기 위한 노력을 펼쳐 약 500만 점에 이르는 문화재를 반환하는 큰 활약을 했다.



1866년 존 제이의 연설 계기로 1870년 설립

18세기에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미국은 영국과 독립전쟁(1775~1783)을 벌여 승리한 후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으로 독립했다. 1866년 7월 4일 파리에 머물던 미국인들이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한 회합 모임을 했는데, 변호사이자 외교관인 존 제이(1817∼1894)는 미국의 예술과 예술 교육을 제공하는 박물관 설립을 제안하는 연설을 했다. 이를 발단으로 박물관 설립 운동이 이어져 1870년 4월 13일 5번가 681번지에 있는 도드워스 빌딩을 임대 형식으로 빌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개관했다.

그해 11월 20일 박물관은 첫 번째 소장품으로 로마 석관을 취득했다. 이듬해 1871년 반 다이크, 니콜라스 푸신,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등 유럽 화가 작품 174점이 소장품 목록에 추가되면서 점차 규모를 늘려갔다. 1880년 뉴욕 시의 부지 기증으로 현재의 맨해튼 5번가로 규모를 확장해 고딕 양식의 새 건물이 지어졌다. 박물관은 지속적으로 규모를 확장했는데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와 입구는 1926년에 완성됐다.

1945년 5월 3일 모뉴먼츠 멘의 데일 포드(왼쪽) 중위와 해리 에틀링거(오른쪽) 병장이 독일의 하일브론 소금 광산에서 렘브란트의 작품을 발견한 사진. 
 사진=www.npr.org

모뉴먼츠 멘 결성하게 된 회의 열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전쟁사에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다. 1938년 히틀러는 유럽의 문화재와 미술품들을 모아 자신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린츠에 총통박물관을 세우고자 계획했다. 그는 2차 대전 중에 나치에 문화재 수집 특수부대인 아인자츠타프(Einsatzstab Reichsleiter Rosenberg·ERR)를 조직해 유럽과 서아프리카 등지에서 약 500만 점에 이르는 문화재를 약탈했다. 히틀러뿐만 아니라 나치의 2인자였던 헤르만 괴링(1893~1946) 역시 점령지의 미술품을 수집했는데,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비롯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곳곳에 수집품을 보관했다.

유럽에서 2차 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41년 12월 20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관장이자 미국 미술관관장연합회 회장인 프랜시스 헨리 테일러(1903~1957)와 미국 국립미술관 관장인 데이비드 핀리(1890~1977)의 긴급 전보를 받고 미국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 관장 48명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유럽에서 자행되고 있는 나치 독일의 문화재 약탈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고, 미술 전문가를 선발해 군에 보내자는 하버드대 포그미술관의 폴 색스(1878~1965) 부관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2년 후인 1943년 연합군은 전쟁으로 파괴되는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한 특별부대로 기념물, 미술품, 기록물 전담반(Monuments, Fine Arts, and Archives program·MFAA)을 뜻하는 모뉴먼츠 멘을 결성했다.



모뉴먼츠 멘, 문화재 파괴 막아내

박물관 관장, 큐레이터, 건축가, 시인, 고고학자, 미술품 복원 전문가 등 13개국의 문화예술계 전문가로 구성된 350여 명의 모뉴먼츠 멘은 문화재와 미술품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의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독일에서만 1500개의 비밀 창고를 찾았으며, 약 500만 점의 예술품을 되찾는 큰 활약을 했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5년 3월 19일 히틀러는 ‘모든 군사, 공업, 운수, 통신시설과 독일 국내의 모든 점포를 적군에게 넘어가지 못하도록 파괴하라’는 네로 명령을 내렸다.

이때 모뉴먼츠 멘은 6500여 점의 그림과 1200여 개의 공예품이 보관된 오스트리아의 알타우세 소금 광산을 발견해, 인류의 문화재가 파괴되는 걸 막아냈다.

전쟁이 끝나고 박물관은 1954년 대규모 개축을 통해 근대적 스타일의 전시장을 완비했고, 1970년부터 시작된 미술관 개조 계획에 의해 규모가 더욱 확장되면서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큰 박물관으로 면적은 5만6206평(18만5806㎡)이다. 5층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3개 층에 236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아시아 지역 미술품은 중국실·일본실·동남아실에 이어 1998년 6월 7일 한국실이 개관돼 약 400점의 한국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모뉴먼츠 멘을 창설하기 위한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작품이 전쟁에서 잿더미로 사라졌을 것이다. 이곳은 미국 문화·예술의 자부심이자 상징으로 지난해 647만 명이 방문했다.
<이상미 문화·예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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