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병영칼럼

[장창현 병영칼럼]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할 ‘오티움’

입력 2020. 11. 03   16:07
업데이트 2020. 11. 0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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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창 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장 창 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입니다. 마음의 병이 있는 이들의 마음을 돕는 일을 하고 있지요. 저는 투잡족이기도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랩 네임 장원장(JANG1JANG)이라는 이름으로 M.O.M(Mind Over Matter·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뜻)이라는 마음의 중요성을 외치는 힙합팀에서 래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랩 음악은 제게 팍팍한 현실을 촉촉하게 적시는 단비였습니다. 래퍼의 꿈을 고등학교 때부터 가졌고, 학생 시절 힙합동아리 활동도 했지요. 그 꿈을 놓치지 않고 계속 지켜오다가 김한글이라는 멋진 팀 동료를 만나고, 휴스턴이라는 실력 있는 비트메이커와 결합해 M.O.M을 결성합니다.

얼마 전 케이블채널 엠넷(Mnet)에서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9’ 방영을 시작했습니다. 이건 지금까지 비밀이었습니다만 저도 쇼미더머니 9 참가 지원을 했습니다. 두 달 전 저의 랩이 담긴 영상 2개와 참가지원서를 보냈지만 답신은 오지 않았습니다. 1차 영상 심사에서 탈락한 거지요.

사실 지금까지는 예선 탈락이 부끄러워 이 사실을 제 가족 외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방송을 보니 그 유명한 ‘불구덩이 예선’을 하더군요. 60초 동안 주어진 반주 위에 랩을 하면 네 프로듀서팀이 통과 여부를 가르는 과정이었습니다. 1차 심사에서 탈락한 저로서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불구덩이 심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부러움을 내려놓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사를 받는 래퍼들은 자신의 랩이 심사위원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가슴을 졸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심사하는 소위 잘나가는 힙합 뮤지션들도 기술, 느낌, 메시지 운운하며 평가하기에 바빴고, 자신의 팀에 잘하는 ‘선수’가 들어오지 못하면 어떡하나 애태웠습니다. 이 프로그램 속에서 제가 사랑하는 힙합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줄을 세우는 수단으로 힙합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삐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0월 29일 저는 팀 동료 김한글과 함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그대에게’라는 제목의 ‘2020 양천구 장애 토크 콘서트’에 참여했습니다(이 콘서트는 유튜브 영상으로 다시보기 하실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강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정말 행복하게 했던 건 대한민국 유일의 마음힙합팀으로서 마음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랩을 하는 15분이었습니다.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와 함께하는 온라인·오프라인의 관객들과 힙합을 매개로 교감하면 됐지요. 힙합은 저에게 ‘내적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이었습니다. 이를 정신과 의사 문요한은 ‘오티움(Otium)’이라는 라틴어로 요약합니다. 저는 저의 오티움인 힙합을 평생 놓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는 해야 하는 일을 통해서도 삽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우리가 ‘하고 싶은’ 활동들입니다. 6년 전 우리 곁을 떠난 가수 신해철은 우리에게 이런 물음을 던집니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이거 아니면 죽음 정말

이거 아니면 끝장 진짜

네 전부를 걸어보고 싶은 그런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신해철,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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