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공군

[공군창설 71주년] 하늘 넘어, 우주로

조아미

입력 2020. 10. 04   15:56
업데이트 2020. 10. 08   09:31
0 댓글

끊임없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의 시간, 71년 

 
1920년, 미국에 한인비행학교… 1948년 항공부대 창설
6·25전쟁, 승호리 철교차단 등 3대 전승작전 승리로
국산항공기 부활호 제작·F-5 전투기 도입 등 전력 증강
스텔스 등 신예 전투기 지속 도입하며 눈부신 성과


6·25전쟁 후 공군력 건설과 국산 항공기의 필요성을 절감한 우리 공군은 공군기술학교를 통해 2인승 다목적 경비행기를 제작했다. 1954년 4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활’이라는 제호를 받고 명명식을 진행했다.
6·25전쟁 후 공군력 건설과 국산 항공기의 필요성을 절감한 우리 공군은 공군기술학교를 통해 2인승 다목적 경비행기를 제작했다. 1954년 4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활’이라는 제호를 받고 명명식을 진행했다.


지난 1일은 공군 창설 7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전투기 한 대 없이 시작한 공군이, 오늘날 700여 대의 항공기와 6만여 병력을 갖춘 국가방위의 핵심 전력으로 성장했다. 짧은 시간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낸 공군의 71년을 태동기부터 오늘날까지 소개한다. 조아미 기자/사진=공군 제공 

 

공군 역사의 시작
윌로우스 비행학교, 공군의 뿌리

공군의 뿌리는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 노백린(당시 임시정부 군무총장) 장군과 김종립 애국지사, 그리고 항공독립운동을 꿈꿔온 청년들이 모여 미국에 윌로우스 한인 비행학교를 설립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정상의 문제로 자리를 잡아갈 무렵인 이듬해 4월 문을 닫게 됐다. 오늘날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항공력을 바탕으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임시정부의 원대한 구상과 항공독립운동가들의 도전 정신이 담겨있는 ‘대한민국 공군의 뿌리’로 기억되고 있다.

1949년 10월 1일 공군 독립을 보도한 일간지.
1949년 10월 1일 공군 독립을 보도한 일간지.
윌로우스 비행학교 학생들이 J-1훈련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 학생들이 J-1훈련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1950년 7월 2일, 한국 공군 조종사들이 미 극동공군으로부터 F-51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인수, 대한해협을 건너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1950년 7월 2일, 한국 공군 조종사들이 미 극동공군으로부터 F-51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인수, 대한해협을 건너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공군 창설

광복 이후,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 최용덕(1898~1969) 장군을 중심으로 모인 항공인들은 한국항공건설협회를 창립해 국내 항공인의 힘을 하나로 결집했고, 독립된 군으로 창설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통위부(현 국방부) 직할 항공부대로 출발한 대한민국 공군은 1949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254호 ‘공군본부 직제’에 의거해 마침내 독립된 군으로 창설됐다. 이는 공군 창설 주역 7인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항공인이 미 군정과 우리 정부를 설득했고, 국민들의 염원과 우리 정부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다.


최용덕 장군 등 공군 창설 주역 7인

최용덕 장군
최용덕 장군
이영무
이영무
박범집
박범집
김영환
김영환
김정렬
김정렬
장덕창
장덕창
이근석
이근석


최용덕 장군은 189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광복 이후 국내 항공단체를 통합한 한국항공건설협회를 창립해 국내 항공인의 힘을 결집했다. 1948년에는 초대 국방부 차관에 임명됐으며, 재직 당시 국군조직법 제정에 참여해 공군 독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최 장군은 제2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뒤 1956년에 전역했으며 ‘공군가’ ‘공군의 결의’ ‘공사십훈’ 등을 작사·집필하며 공군이 나아가야 할 정신적 지향점을 제시했다.

특히 최 장군을 비롯해 김정렬·장덕창·박범집·이근석·이영무·김영환 등 공군 창설의 주역 7인은 미 군정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1948년 항공부대 창설을 승인받았다.

또한, 이들 7인은 항공부대 창설에 만족하지 않고 병력과 장비 보강, 교육시설 확충 등 공군을 창군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자 쉼 없이 노력했다.



6·25전쟁, 공군의 활약
1만4163회 출격

창군 9개월 만인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다. 개전 초 변변치 않은 여건 속에서 조종사들은 연락기와 훈련기 후방석에 폭탄을 싣고 맨손으로 던지며 사투를 벌였다.

6월 26일, 공군 조종사들은 이타즈케 주일 미군기지로 건너가 F-51 무스탕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일주일 만에 대한해협을 건너 유엔 공군의 일원으로 연합·합동작전에 참가했다. 공군은 전쟁 기간 1만4163회 출격을 통해 승호리 철교차단, 평양대폭격, 351고지전투 항공지원 등 3대 전승작전을 비롯한 임무를 완수했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79년 10월 7일 공군사관학교에서 개최한 제1회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대회. 현재는 ‘스페이스챌린지대회’라는 이름으로 매년 진행되고 있다.
1979년 10월 7일 공군사관학교에서 개최한 제1회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대회. 현재는 ‘스페이스챌린지대회’라는 이름으로 매년 진행되고 있다.


전쟁 후 공군의 성장

창군과 동시에 최악의 여건 속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어려움을 극복한 공군은 정전 이후 현대전 수행에 적합한 전력 강화와 실전적 교육체계 개선에 주력했다.

1953년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항공기 ‘부활호’를 제작해 공군의 우수한 기술력을 보여줬다. 1955년에는 C-46 수송기를 도입해 공군 단독으로 공수 임무를 시작했고 F-86 전투기와 T-33 훈련기를 차례로 도입했다. F-86 전투기의 도입으로 공군은 제트기를 운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또한, 이 시기에 공군은 전술 요격 관제 능력을 갖추기 위해 30비행관제경보대대를 창설하고, 미군으로부터 레이더기지를 인수해 자체적인 방공관제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1966년 10월 17일 공군 여의도기지에서 은마부대를 창설했다.
1966년 10월 17일 공군 여의도기지에서 은마부대를 창설했다.
1997년 공군사관학교 최초로 여자 사관생도가 제49기 생도로 입교했다.
1997년 공군사관학교 최초로 여자 사관생도가 제49기 생도로 입교했다.


공군의 발전
전력 증강에 총력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공군은 신규 전력 도입, 항공기 자체 제작, 작전 및 군수 지원 체계 확보, 교육기관 이전 등 전력 증강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을 기울였다.

공군은 1965년 F-5 전투기를 시작으로, F-4 전폭기를 아시아 최초로 도입했다. 1980년대에는 F-16 전투기와 C-130 수송기 등 최신예 전력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최신 전투기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1961년 작전사령부와 1966년 군수사령부를 차례로 창설했다.

아울러 공군은 1985년 수동식 방공체제를 자동화 방공체계로 전환하며, 비상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확충했다. 이 밖에도, 1966년 공군 최초의 파병 부대로 창설된 ‘은마부대’는 한국군 베트남 파병에 따른 항공지원과 한국-베트남 장거리 공수임무 및 베트남 내 공수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더불어 1979년에는 제1회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 대회를 개최해 청소년들의 항공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도 했다.

지난해 3월 29일 공군 청주기지에 착륙한 F-35A 스텔스전투기. F-35A는 2021년까지 총 40대가 도입될 예정이다.
지난해 3월 29일 공군 청주기지에 착륙한 F-35A 스텔스전투기. F-35A는 2021년까지 총 40대가 도입될 예정이다.


항공우주군으로 도약

19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공군은 국가방위 핵심 전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항공우주군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공군은 1991년 통합 방공작전 능력 신장을 위해 육군으로부터 방공포병을 인수, 공군방공포병사령부를 창설했다. 또한 F-15K 전투기, E-737 공중조기경보통제기, KC-330 공중급유기, F-35A 스텔스 전투기 등 공군력 신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신예 항공기를 도입했다. 이뿐만 아니라 KT-1, T-50, KT-100 훈련기를 성공적으로 전력화해 조종사 양성의 모든 과정을 국산 항공기로 일원화하는 ‘한국형 비행교육체계’를 구축했다.

1997년에는 3군 사관학교 최초로 여생도가 입교했고, 지난해에 이르러 최초의 여군 비행대대장이 탄생했다. 이 밖에도 공군은 재난 상황에서 재외국민을 무사히 귀국시키는 공수 임무를 수행하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해 방역을 지원하는 등 국민과 함께하는 군의 역할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취임한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취임사를 통해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1600여 명의 병력과 20여 대의 연락기를 바탕으로 창설된 우리 공군은 선배 전우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위풍당당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며 “자랑스러운 공군의 전통을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창군 이래 짧은 기간임에도 기적과도 같은 발전을 이룩해 온 공군은 마침내 최첨단의 전장 감시체계와 지휘통제체계, 장거리 정밀 교전 능력을 갖춤으로써 대한민국의 안전보장과 국익증진, 나아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게 됐다. 이제 공군은 하늘 너머 우주영역을 아우르는 ‘항공우주군’으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조아미 기자 < joajoa@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