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관에서 동기들과 관람했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전사한 형 진태의 유해를 보며 오열하는 동생 진석의 대사다. 50년 만에 유해로 상봉한 형제의 모습은 생활관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시간을 초월한 상봉을 실현해드리기 위해, 우리 부대는 6월부터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의 열기와 언제 어디서 유해가 발굴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몸도 마음도 서서히 지쳐갔다. 하지만 선배 전우들이 치열한 전투 끝에 장렬히 전사하신 그곳에서, 우리는 그분들의 온전한 유해를 찾겠다는 의지와 정성으로 구슬땀을 흘렸다.
유해는 뜻밖의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했다. 발굴 작업 중 무언가가 “톡” 하고 떨어졌다. 모양새도, 무게도 나뭇가지와 비슷해 발굴 팀원들도 지나칠 정도였다. 그러나 뭔지 모를 끌림에 조각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단면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사전 교육에서 배운 유해의 특징 그대로였다.
‘이건 유해가 분명하다’라는 생각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이를 알렸다.
감식 결과 그것은 나뭇가지가 아닌 15cm 길이의 팔뼈로 밝혀졌고, 우리는 그 일대에서 다른 유해를 찾기 시작했다. 두개골을 비롯해 5조각의 뼈가 더 발견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교육에 따르면, 인간의 뼈는 10~20년이 지나면 백골화된다고 한다. 70년 후에도 뼛조각들이 발견되는 것은 가족의 품에 돌아가고자 하는 호국영웅의 간절한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
유해 임시 봉안식 간 봉송 임무를 맡으며 호국영웅의 유해를 모시는 영광을 얻었다. 짧은 동행이었지만, 70년의 기다림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감히 이 길을 함께 걸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국영웅들의 수많은 희생으로 지킨 값진 대한민국을 이제 내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성실히 군 복무에 임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유해 발굴 기간 내내 마음속으로 70년 전의 전투 상황을 상상했다. 평소에 비무장 상태로 오르는 것도 힘든 산악 지형인데 선배 전우들은 이곳을 전시에 무장 상태로 뛰어다녔을 것이고, 총탄과 포탄이 난무하는 혼란과 공포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싸웠을 것이다. 그렇게 나라를 지켜내셨는데, 그 유해를 우리가 찾는 것은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또 다른 호국영웅이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노력하며 조금씩 그 마음의 빚을 갚아나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목숨 바쳐 이 땅을 지켜주신 호국영웅들께 경의를 표하며,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12만여 분의 호국영웅 모두를 찾는 그날까지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한다.
생활관에서 동기들과 관람했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전사한 형 진태의 유해를 보며 오열하는 동생 진석의 대사다. 50년 만에 유해로 상봉한 형제의 모습은 생활관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시간을 초월한 상봉을 실현해드리기 위해, 우리 부대는 6월부터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의 열기와 언제 어디서 유해가 발굴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몸도 마음도 서서히 지쳐갔다. 하지만 선배 전우들이 치열한 전투 끝에 장렬히 전사하신 그곳에서, 우리는 그분들의 온전한 유해를 찾겠다는 의지와 정성으로 구슬땀을 흘렸다.
유해는 뜻밖의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했다. 발굴 작업 중 무언가가 “톡” 하고 떨어졌다. 모양새도, 무게도 나뭇가지와 비슷해 발굴 팀원들도 지나칠 정도였다. 그러나 뭔지 모를 끌림에 조각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단면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사전 교육에서 배운 유해의 특징 그대로였다.
‘이건 유해가 분명하다’라는 생각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이를 알렸다.
감식 결과 그것은 나뭇가지가 아닌 15cm 길이의 팔뼈로 밝혀졌고, 우리는 그 일대에서 다른 유해를 찾기 시작했다. 두개골을 비롯해 5조각의 뼈가 더 발견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교육에 따르면, 인간의 뼈는 10~20년이 지나면 백골화된다고 한다. 70년 후에도 뼛조각들이 발견되는 것은 가족의 품에 돌아가고자 하는 호국영웅의 간절한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
유해 임시 봉안식 간 봉송 임무를 맡으며 호국영웅의 유해를 모시는 영광을 얻었다. 짧은 동행이었지만, 70년의 기다림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감히 이 길을 함께 걸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국영웅들의 수많은 희생으로 지킨 값진 대한민국을 이제 내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성실히 군 복무에 임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유해 발굴 기간 내내 마음속으로 70년 전의 전투 상황을 상상했다. 평소에 비무장 상태로 오르는 것도 힘든 산악 지형인데 선배 전우들은 이곳을 전시에 무장 상태로 뛰어다녔을 것이고, 총탄과 포탄이 난무하는 혼란과 공포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싸웠을 것이다. 그렇게 나라를 지켜내셨는데, 그 유해를 우리가 찾는 것은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또 다른 호국영웅이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노력하며 조금씩 그 마음의 빚을 갚아나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목숨 바쳐 이 땅을 지켜주신 호국영웅들께 경의를 표하며,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12만여 분의 호국영웅 모두를 찾는 그날까지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