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참전단체 릴레이 탐방 리멤버 솔저스

[참전단체 릴레이 탐방] ⑬ 6·25참전언론인회

김상윤

입력 2020. 07. 29   14:28
업데이트 2023. 08. 17   10:09
0 댓글

총탄 빗발친 전장 생생히 기록… 펜은 칼보다 강하다


2019년 전적지 답사에 나선 6 25참전언론인회 회원들이 철원 전몰장병 추모비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전우회 제공
2019년 전적지 답사에 나선 6 25참전언론인회 회원들이 철원 전몰장병 추모비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전우회 제공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종군기자로서 6·25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볐다. 전후에는 언론계에 투신해 사회정의 실현과 국가 발전을 위해 정론직필(正論直筆)하며 사명을 다했다. 참전언론인들은 고령이 됐지만, 조국을 위해 휘두르는 날카로운 ‘필봉(筆鋒)’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 

 

리멤버 솔저스, 오늘은 언론계의 원로로서 국가 안보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며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6·25참전언론인회’를 만나본다. ‘6·25참전언론인회’(참전언론인회)는 특정 전투·출신 등에 근원을 둔 참전 단체나 전우회와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별점은 회원 전원이 참전용사 또는 종군기자 출신인 동시에 전쟁 이후 언론계에서 왕성히 활동했던 인물들이란 점이다. 

 

6·25전쟁 60주년이었던 지난 2010년 7월 27일 대한언론인회 산하 단체로서 ‘6·25참전언론인 동우회’가 출범한다. 

 

6·25전쟁을 직접 경험한 신문·방송계의 언론인들이 국가 안보의 중요성과 호국보훈의 정신을 기록해 후대에 전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바탕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동우회는 창립 이듬해인 2011년 이름을 현재와 같은 ‘6·25참전언론인회’로 변경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전개한다. 

 

2018년에는 국가보훈처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발전해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참전언론인회의 주요 추진 사업은 국가보훈정신 고취, 나라사랑정신 함양 활동, 전적지 답사, 6·25전쟁사 발굴 및 기록 보존, 도서 출판, 학술회의 개최 등 다양하다. 

 

특히 회원 간 친목 도모나 참전 당시의 전공을 기리는 차원을 넘어 언론인으로서 직업적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취재·보도, 매체 제작, 출판 등의 저술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참전언론인회가 발간한 대표적인 책자로 ‘6·25! 우리는 이렇게 나라를 지켰다’가 있다. 

 

참전언론인 30여 명이 뛰어난 필력으로 총탄이 빗발쳤던 전장과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지난 2013년 발간돼 이미 수년이 흘렀지만, 이 책의 사료적 가치와 안보교육 자료로서의 유용성은 오늘날에도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참전언론인회는 올해 책의 속편을 출간·배포할 계획도 갖고 있다. 6·25전쟁 65주년이었던 2015년 참전언론인회는 ‘6·25참전언론인 명패’를 국방부와 서울프레스센터에 기증하기도 했다. 

 

명패에 새겨진 참전언론인 및 종군기자 78명의 이름과 이들의 빛나는 공헌을 기리는 문구는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와 후배 언론인들의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아울러 참전언론인회는 매년 다부동·백마고지 등 6·25전적지 답사와 춘천대첩·인천상륙작전 전승행사 참관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기며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나아가 현장을 취재한 기사를 대한언론인회가 발행하는 ‘대한언론’을 통해 소개하거나 타 방송·신문 매체에 기고하는 등 원로 언론인으로서 노익장과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참전언론인회 회원은 6·25 참전용사 출신 언론인 17명, 종군기자 4명 등이다. 회원 대부분이 아흔을 넘겼다. 

 

최고령은 100세 이상으로, 80대 회원은 젊은이로 분류될 정도다. 안타깝게도 올해들어서만 회원 10여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역전의 노장이자, 언론계의 큰 어른인 이들이 펜과 수첩을 들고 활동하는 하루하루가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다. 

 

 

 

 

 [인터뷰]박기병 6·25참전언론인회 회장

사진=조종원 기자
사진=조종원 기자

"전쟁이라는 과거에 치중하기 보다는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 후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화랑무공훈장에 빛나는 6·25참전용사이자 대한민국 언론계의 원로로서 대한언론인회 및 6·25참전언론인회를 이끄는 박기병 회장이 참전단체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박 회장이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게 된 것은 그가 춘천사범학교(현 춘천교대)에 재학 중이던 19살 무렵이다. 

 

당시 국군을 도와 포탄을 날랐던 청년 박기범은 유격대원을 거쳐 학도병으로 입대해 수많은 전장에서 활약했다. 

 

조국을 위해 전장을 누비며 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박 회장은 전역 이후 언론계에 투신하게 된다. 그 계기가 재미있다. 

 

"전쟁 당시 가칠봉을 넘던 외국 종군기자들이 화채 그릇과 비슷한 분지 지형을 보고 감탄하며 ‘펀치볼’이라 명명합니다. 이후 실제로 이곳은 펀치볼로 불리게 되죠. 이런 현상을 통해 기자라는 직업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역 이후에 언론인이 되겠다 마음먹었어요." 

 

박 회장은 1958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부산일보 정치부 기자를 거쳐 강릉·춘천 MBC 사장, 강원민방 사장, 제10·17대 한국기자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렇듯 화려한 경력의 원로 언론인 박 회장이 매일 꼭 읽는 신문이 있다. 바로 국방일보다. 

 

"국방일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줄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꼼꼼히 읽는다"는 박 회장. 그는 참전언론인으로서 ‘기록’의 사명을 후배들과 함께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역사의 교훈을 잊으면 그 나라는 반드시 위태롭게 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안보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기 어렵죠. 이들에게 역사의 교훈을 일깨워 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기록’입니다. 우리 참전언론인들은 끝까지 사명을 완수하며 국가안보 발전과 국민 호국보훈의식 함양에 혼신을 다할 것입니다." 

김상윤 기자 < ksy0609@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