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며 불편한 이유는?
|
![]() |
지난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는 동영상서비스업체인 HBO맥스가 영화사에 기록된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서비스 목록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HBO는 성명을 통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그 시대의 산물이며 불행히도 미국 사회에서 흔한 인종적 편견의 일부를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런 인종차별적 묘사는 당시에나 지금이나 틀린 것이며, 이에 대한 규탄과 설명 없이 해당 영화를 방영 목록에 두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고 일갈했다. 성명서는 이 영화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논의와 바로 그 묘사에 대한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다시는 그대로 누리지 못할 것을 명확히 하기도 했다.
사실 이 영화는 1939년에 할리우드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영화 산업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꿀 만큼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두었고,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주장이 오랜 시간 주목받지 못했다.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영화 기록을 무려 26년간이나 보유했고, 누적 흥행 기록을 물가와 연동하게 되면 아직 그 이상의 수익을 낸 영화가 없을 정도다. 또 아카데미상 13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서 8개 부문에서 상을 탔으며, 명예상 2개까지 추가해 무려 10관왕에 오른 기록도 달성했는데, 영화 ‘벤허’가 이 기록을 깨기까지 무려 20년이나 걸렸다.
그러나 최초 시사회가 열렸던 애틀랜타에선 상영반대 시위가 열렸다고 하고, 흑인 인권운동가인 맬컴 엑스가 젊은 시절에 이 영화를 보고는 오랜 시간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흑인들에 대한 편견을 구축하는 대표적인 콘텐츠로 손꼽혀 왔다. 특히 영화 ‘노예 12년’의 각본을 쓴 영화감독 존 리들리가 지난 9일 언론 기고문을 통해 HBO맥스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삭제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그만큼 이 영화의 존재감이 미국인들에게는 남다르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마거릿 미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 역시 퓰리처상을 받았고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지만,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 농장의 상황을 남부인들의 시각에서 충실하게 담아냈기 때문에, 존 리들리의 말처럼 “흑인에 관한 가장 고통스러운 선입견을 영구화”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노예제도 안에서 농장주와 인간적인 유대를 가지는 흑인들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노예제도를 미화하고 있고, 자유인이 된 흑인들이 백인 여성들을 상대로 수많은 성폭력을 저지른다며 그 사례들을 거리낌 없이 묘사한 부분들이나 인종차별주의 범죄집단인 ‘KKK’를 남부의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자경단으로 묘사하는 부분들은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물론 영화 제작자들이나 스태프들, 참여한 배우들은 원작의 문제적 부분들을 걷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어찌 보면 이 영화에서 스칼릿의 유모 역을 맡아 열연했던 흑인 여배우 해티 맥대니얼이 미국 최초의 흑인 아카데미상 수상자가 된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였을 수 있다. 하지만 1939년의 미국 남부는 흑백분리정책이 여전히 시행되던 때여서, 대스타 클라크 게이블이 “만약 해티가 오지 못한다면 나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도 흑인 배우들은 애틀랜타에서 열렸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첫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영화 그 자체는 그때의 사회적 합의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래서 HBO의 결단과 성명은 현재 미국 사회가 도달한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과거 청산에 대한 원칙, 역사에 대한 민주주의자의 태도 등 여러 측면에서 시사점들을 던져주고 있다.
HBO는 여전히 수익을 안겨주고 있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목록에서 제외하면서 이제 더는 잘못이 답습되어선 안 된다고 선언한 것이다. 발전된 합의를 담지 못한 콘텐츠는 더 이상 ‘대중적’일 수 없기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유통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네스코가 군함도를 유산으로 지정하며 반드시 비판적 평가를 고지하라는 조건을 달았던 것과 같은 문제의식이다.
그들이 여러 논의가 충분히 이뤄져 다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점이 와도 원작을 손보는 일은 없을 것을 시사한 것은 “이런 편견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대충 덮고, 흔적을 없애고, 언급하지 않으면서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좀 더 정의롭고 공정하고 포용적인 미래를 만들려면 먼저 우리 역사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HBO의 성명은 그래서 발전적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감동을 강조하며, 작은 잘못으로 작품 전체를 평가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는 분들께 묻고 싶다. 일제 강점기를 묘사한 영화에서 일본인 농장주와 인간적 유대관계를 가지며 그의 일을 헌신적으로 돕는 조선인이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광복 이후 일본인들을 적대시하는 조선인들의 일탈만 부각되는 작품을 보면서, 아무리 그 작품의 영화적 완성도가 높다고 해도 우리는 과연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이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당신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