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70년 금단의 땅 70년 만의 탐사

입력 2020. 05. 28   16:25
업데이트 2020. 05. 2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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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분단의 상징에서 세계의 자연유산으로


문화재청, 문화·자연유산 실태조사… 비무장지대 가치 확인될수록 남북 모두의 자산

문화재청이 분단 이후 70여 년간 미지의 땅으로 남아있던 비무장지대(DMZ)에서 문화재 실태조사를 1년여간 추진한다. 사진은 경기도 파주 도라전망대 풍경.      조용학 기자
문화재청이 분단 이후 70여 년간 미지의 땅으로 남아있던 비무장지대(DMZ)에서 문화재 실태조사를 1년여간 추진한다. 사진은 경기도 파주 도라전망대 풍경. 조용학 기자

분단 이후 70여 년간 미지의 땅으로 남아있던 비무장지대(DMZ)에서 문화재 실태조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문화재청이 접경 광역지자체인 경기도·강원도와 함께 문화·자연유산 실태조사를 지난 26일부터 1년여간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이는 지난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서 남북이 합의한 사항 중,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실질적 조치로, 첫 번째 조사 지역은 경기도 파주의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다. 

 
비무장지대는 전쟁이나 분쟁 등으로 휴전 상태에 들어간 상호 간 협약에 따라 군사활동이 금지된 지역으로, 이전에는 중립지대라고도 불렀다.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 2㎞ 지역(총 4㎞)으로 정해져 있는데, 원칙적으로는 초소 설치나 무기 배치 등이 모두 금지돼 있지만, 적과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경우 무력 충돌도 있었던 위험한 곳이다. 따라서 국방부나 상위 정부기관의 허가 없이는 언론 취재를 비롯해 모든 민간 활동이 금지돼 있으며, 허가가 나더라도 통제하에 허가된 활동만을 해야 하는 곳이 비무장지대다. 70여 년간 시야 확보를 위한 벌목작전이나 지뢰제거를 위한 작전 외에는 거의 인위적인 변형이 없었던 곳, 비무장지대는 이런 엄격한 통제 아래 자연이 스스로 생태계를 복구한 곳이기에 더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유산으로 거듭났다.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공간인 비무장지대가 한반도에서 최고의 청정 자연유산이 된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70년간 이어진 적대적 대치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무장지대는 야생 동식물의 보고(寶庫)가 됐다. 최근 국립생태원에서 발표한 DMZ 생태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식물(1854종), 포유류(43종), 조류(266종), 양서·파충류(34종), 육상 곤충(2189종), 담수어류(136종), 저서(底棲) 무척추동물(351종) 등 7개 분야에 총 4873종의 야생 동식물이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 생물종의 약 20%가 서식하는데, 특히 두루미·사향노루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우리나라 DMZ 일원에서만 살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 내에서 멸종된 포식 동물도 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수많은 목격담도 있기에 생태학자들은 DMZ 탐사가 시급히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곳은 철책선으로 다른 지역과 생태계가 완전히 단절돼 있어 이대로 내버려둘 경우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특히 육상 이동을 하는 포유류의 경우 DMZ를 벗어나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생태환경을 확대할 방법이 차단돼 있기 때문에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자 다양성의 감소까지 우려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DMZ는 그 자체로 거대한 불발탄이자 지뢰밭이기도 하다. DMZ 및 그 이북지역의 지뢰·불발탄 문제는 현재 추정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지뢰를 완벽하게 제거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폭발에 의한 대규모 화재 등이 발생할지 모른다. 인간이 심어놓은 살상무기 때문에 70여 년간 자연이 되살려놓은 생태계가 일순간에 파괴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라도 철조망을 걷어내 동물의 생태이동로를 만들어야 하고, 또 생태이동로들의 안전과 관리 등을 위해서라도 DMZ 안팎의 이동 경로 연결, 안전지대 확보 등이 필수적이다. 당연히 지뢰나 불발탄을 제거하는 작업도 최우선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번 실태조사는 문화재청이 규정한 대로 “분단 이후 70여 년간 미지의 땅으로 남아있던 비무장지대 전역의 문화·자연유산에 대한 최초의 종합조사”다. DMZ를 민족 화해와 인류 평화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고,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실태조사로 확보된 자료들이 필수적이다. 또 조사를 통해 확인되는 비무장지대의 가치들은 남북 간의 협력을 더욱 촉구할 수 있는 동인(動因)도 될 것이다.

원래 남북이 함께하기로 했던 실태조사가 남한 단독으로 이뤄지게 된 것은 물론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미 DMZ의 가치를 주목하는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고, 평화 둘레길도 제한적으로나마 개방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재청의 실태조사는 더 미룰 수 있는 일도 아니며, 조사하는 과정에서 북한 측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도 필요한 전략이다. DMZ는 남북이 함께 관리하고 해결해야만 할 최고의 위험요인 중 하나이자, 그 가치가 확인되면 확인될수록 남북 모두의 자산으로 확보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문화재청발 좋은 소식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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