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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4월5일 육군, 최초 화포 실탄 사격 (M3 곡사포)

입력 2020. 04. 02   09:13
업데이트 2023. 04. 07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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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 위치한 미 육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M3 105mm 곡사포. 사진= 위키피디아
하와이에 위치한 미 육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M3 105mm 곡사포. 사진= 위키피디아

 

1949년 4월 5일, 우리 군 포병의 최초 실사격이 이승만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고위 관계자와 주한 외교 사절까지 참석하는 큰 관심 속에 경기도 광주에서 실시됐다. 

 

최초의 포병 부대인 포병훈련소가 창설된 1948년 6월26일 이후 10개월, 육군 잠정 포병사령부가 설치된 지 4개월 만에 처음 실시한 이날 실사격 시범에서 운용된 화포는 M3 견인 곡사포였다. 

 

M3 곡사포는 공수 부대용인 만큼 크기도 작고 가볍다. M2 곡사포의 무게는 2029kg이지만 M3 곡사포는 1131kg에 불과하다. 포신의 길이도 M2 곡사포는 2.56m이고 M3 곡사포는 1.86m밖에 되지 않는다. 당연히 이동에는 편리하지만 포신이 짧은 만큼 사거리도 짧은 것이 중요한 약점이었다. M3 곡사포의 최대 사거리는 7584m, 유효 사거리는 6525m에 불과해 M2 곡사포 사거리의 3분의 2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M3 곡사포 91문만을 보유한 육군 포병 부대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 육군이 제대로 된 표준형의 105mm 곡사포도 보유하지 못했지만 북한군은 훨씬 구경이 큰 122mm 곡사포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사거리·화력 모두 북한 포병에 비해 열세였다. 

 

한국 포병이 M2 곡사포를 인수한 것은 전쟁 발발 이후인 1950년 7월 6일로서 M3는 M2로 완전 교체되기까지 짧은 기간 운용됐지만 우리 육군 포병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개전 초 북한의 T-34 전차를 상대로 간접 사격이 아닌 직접 조준 사격을 감행하며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고(故) 김풍익 중령의 포병대대가 보유한 장비가 다름 아닌 M3 곡사포였기 때문이다. M3은 포병 투혼을 상징하는 곡사포라고 할 수 있다. 

 

M3 곡사포는 미국에서도 소량을 보유했고 제한적으로만 운용했기 때문에 실물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국내에서 M3 곡사포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경남 사천에 위치한 항공우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이다. 이 M3 곡사포는 6·25전쟁 종군 기자로도 유명한 지갑종(池甲鍾) 유엔 한국참전국협회장이 일본 오키나와(沖繩)의 미군 부대로부터 1968년 기증받은 것으로 포신에 국군(國軍)이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 국방일보 2004년 기획 ‘무기의 일생’>

 

6·25전쟁 개전 초 북한의 T-34 전차를 상대로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고(故) 김풍익 중령의 포병대대의 무훈을 기린 전투전적비. 국방일보 DB
6·25전쟁 개전 초 북한의 T-34 전차를 상대로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고(故) 김풍익 중령의 포병대대의 무훈을 기린 전투전적비. 국방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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