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6.25 70주년, 해외참전용사 희망드림 코리아

[6.25전쟁 70주년]목숨 걸고 중공군 물리친 용사…지금은 폐허 속 신음

김용호

입력 2020. 03. 18   15:05
업데이트 2020. 03. 1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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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에티오피아 참전영웅 레타 워레도라 옹

 
휴전협상 한창 때 부산항 디딘 청년
밤낮없는 일진일퇴 공방 끝 큰 전과
한국전쟁 영웅 칭호 뒤로 고단한 삶
위태로운 흙집서 건강 상태도 최악
10만 원 정도로 6식구 한 달 버텨야
‘손녀들이라도 희망사다리 봤으면…’

지금 대물림하는 가난에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워레도라 옹의 모습. 월드비전 제공
지금 대물림하는 가난에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워레도라 옹의 모습. 월드비전 제공

  
워레도라 옹의 쓰러져 가는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아들 타므라크.  월드비전 제공
워레도라 옹의 쓰러져 가는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아들 타므라크. 월드비전 제공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수호자로 6·25전쟁에 자원했죠. 눈앞에 펼쳐진 전장은 최악이었어요. 죽이지 않으면 죽는 그 공포감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죠. 육탄으로 부딪치는 백병전이 벌어졌고, 곁에서 동료 전우가 쓰러져도 슬퍼할 틈이 없었어요.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속에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었으니까요.”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에 한국전쟁에 자원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레타 워레도라(87) 옹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전장에선 낭만이나 휴머니즘은 사치라고 강조했다.

워레도라 옹은 에티오피아 황실근위대가 주축이 된 강뉴(Kagnew)3대대(1953년 4월 16일~1954년 7월 10일)의 일원으로 휴전협상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부산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휴전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전선에서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빼앗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 전장의 한복판에 워레도라 옹이 있었다. 미7사단 32연대에 배속된 강뉴3대대는 5월 19일 경기도 연천 요크·엉클고지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 자정이 넘어서 중공군이 요크·엉클고지에 포위 공격을 감행했고 우리 매복대는 적진에 완전히 고립됐죠. 중공군은 각종 화력을 집중했고 요크고지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어요. 포격으로 장애물과 진지가 파괴되고 유선마저 끊겨 고립무원 상황에 빠졌습니다.”

새벽 2시쯤 요크고지를 공격하던 중공군 일부가 고지로 기어오르기 시작했고, 진지에서 처절한 백병전이 전개됐다. 매복대 정면에서 공격 중인 중공군도 포위 공격을 감행했다. 고지가 위험에 놓이자 강뉴3대대는 지상 25m 상공에서 자동 폭발하는 VT신관 포격 지원을 요청해 중공군을 물리쳤으나 적은 전열을 가다듬을 틈도 주지 않고 재차 공격을 감행해 왔다.

밤이 깊어질수록 전투는 치열해졌고, 급기야 탄약마저 바닥났다. 바로 눈앞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다.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아군진지 주변에 일제히 포격을 가하는 탄막사격 지원을 포병에 요청했다. 잠시 후 진지 주변에 포탄이 비 오듯 쏟아졌고, 중공군은 혼비백산해 티본고지 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이후 대대는 요크·엉클고지 왼쪽에 주 저항선을 형성하고 적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다 휴전을 맞았다.

워레도라 옹이 소속된 강뉴3대대는 이 전투에서 강인한 정신력과 책임감으로 중공군을 격퇴한 공로가 인정돼 한국 정부로부터 부대표창을 받았다.

한국전에서 큰 전과를 올리고 귀국한 워레도라 옹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외곽 굴렐레 지역에 정착했다.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하사한 이곳은 참전용사 집성촌이었다. 요즘 코리안타운(한국마을)으로 불리는 이 달동네의 계단을 오르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그렇게 한참 걷다 보면 붉은 녹이 덕지덕지한 집 한 채가 시야에 들어온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이 집이 바로 워레도라 옹의 보금자리다.

폐허나 다름없는 이 집에서 워레도라 옹은 아들, 며느리, 세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생계는 인쇄 일을 하는 아들 타므라크(51)가 책임진다. 우리 돈 10만 원 정도 되는 월급으로 여섯 식구가 1개월을 버틴다. 항상 어렵게 살다 보니 3대(代)가 함께 사는 이 집은 성한 곳이 없다. 구멍이 숭숭 난 흙벽은 당장 무너질 듯 위태롭고, 그 위에 덧댄 양철지붕은 작은 바람에도 서로 부딪쳐 칼날 같은 쇳소리를 토해내지만 빠듯한 살림에 고칠 엄두도 못 낸다. 그래도 워레도라 옹 가족에겐 둘도 없는 금쪽같은 둥지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집수리예요. 마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흙벽은 지금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얹어 놓은 양철 지붕에선 빗물이 줄줄 새죠. 여름에는 열기가 고스란히 들어와 찜통이고, 겨울과 밤에는 외풍을 막지 못해 외투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요.”


한국전쟁 영웅 워레도라 옹의 늠름했던 군 복무시절 사진. 월드비전 제공
한국전쟁 영웅 워레도라 옹의 늠름했던 군 복무시절 사진. 월드비전 제공


한국전쟁 영웅 가족의 삶은 최악이다. 올해 아디스아바바 외곽의 TVET연방대학에 입학한 첫째 손녀 은혜네쉬(18)는 즐거운 캠퍼스 생활은 꿈도 못 꾼다. 교통비가 없어 등교하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빨리 학업을 마치고 공무원이 되고 싶지만, 취직은커녕 졸업도 장담할 수 없다.

동네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손녀 건네시사(11)는 효심이 남다르다. 자나 깨나 할아버지 걱정뿐이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수년 전부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된 상태다. 학교에 다녀오면 건네시사는 제일 먼저 할아버지의 안부를 묻는다. 그때마다 워레도라 옹은 주름진 얼굴을 끄덕이며 손녀를 안심시킨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손녀를 보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제 막 말문이 열린 셋째 손녀 기브티(2)에겐 그 흔한 장난감도 사치다. 며느리는 눈과 귀가 어두운 워레도라 옹과 아이들을 돌보느라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10여 년 전 대한민국 정부 초청으로 반세기 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았죠. 16개 해외참전국 용사들이 흘린 피 위에 활짝 피워낸 ‘한강의 기적’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폐허에서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한국의 저력에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 손녀와 며느리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요. 대한민국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서라도 우리 가족의 미래를 짊어질 손녀에게 계층 이동의 ‘희망사다리’를 놓아 주고 싶어요. 정말 간절히…!” 김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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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그룹 체리블렛 사인 앨범 당첨자 3명
남다현(경북 포항시)
이지현(경기 성남시)
황대만(강원 춘천시)


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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