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참전단체 릴레이 탐방 리멤버 솔저스

[참전단체 릴레이 탐방]③ 백마고지 참전전우회

서현우

입력 2020. 03. 11   16:47
업데이트 2023. 08. 1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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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쓴 ‘백마 신화’… 정신 계승 위해 사단법인 추진


1982년 창립… 지역별 전우회 결성 
회원 약 800명서 200여 명 생존
매달 정기회의·일 년에 한 번 총회
전승기념행사·3용사 추모제 지속
그날의 투혼 후대에 오롯이 전해 

 

백마고지 참전전우회 회원들이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추모행사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백마고지 참전전우회 제공
백마고지 참전전우회 회원들이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추모행사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백마고지 참전전우회 제공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지나간 사실이 주는 교훈을 되새긴다. 이 때문에 역사의 모든 순간순간은, 그것이 비록 비극일지라도 우리에게 소중한 기억이다. 또 역사의 기억을 저버려서는 찬란한 미래도 없다. 6·25전쟁의 참상과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6·25전쟁 70주년 기획 리멤버 솔저스 세 번째 시간에는 백마고지 참전전우회를 이야기한다. 

 
목숨 걸고 고지를 지켜낸 용사들

백마고지라는 이름은 6·25전쟁 당시 전투에서 유래됐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약 열흘간 벌어진 전투에서 국군과 중공군은 28만여 발의 포탄을 주고받았다. 전투 후 고지 정상은 포화 속에 나무가 사라지고 파헤쳐지며 땅이 꺼졌다. 이 모습을 하늘에서 바라봤을 때 하얀 말이 누워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전투의 시작은 1952년 10월 6일 저녁, 중공군 38군 114사단의 선제공격이었다. 국군은 중공군의 인해전술 공격으로 고지를 빼앗겼으나 이내 탈환했다. 하지만 중공군이 다시 밀고 내려왔다. 중공군이 밤에 고지를 차지하면 다음 날 낮에 국군이 탈환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스물네 번에 걸쳐 고지의 점령과 탈환이 반복됐다.

국군이 22만 발의 포탄을 쐈고, 중공군도 5만5000여 발을 쏘아 올렸다. 당시 전투에 참전한 용사의 증언에 따르면 얼마나 많은 포탄을 쐈는지 박격포 포열이 불덩이가 돼 포탄이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마대로 포열을 감고 물을 아무리 부어도 포열이 식지 않았을 정도였다.

전투에서 국군은 전사자, 부상자, 행방불명자 등 3500여 명이 희생됐다. 중공군도 8000여 명이 전사하는 등 1만4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백마고지 전투의 참혹함은 이 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설명한다.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중공군은 수만 명의 병력을 쏟아부었고, 많은 국군은 장렬히 산화하며 이를 막아냈다.

전략적 요충지였던 이 고지를 점령했기에 전선을 사수할 수 있었고, 또 이 땅을 지켜낼 수 있었다.

전쟁의 교훈을 말한다


백마고지 참전전우회는 1982년 창립됐다. 당시 전국에 흩어져 지내던 전우들이 모여 단체를 구성하자는 뜻을 모았다. 전우를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고 소식을 들은 전우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렇게 모인 전우가 약 800명이었다. 전국 단위의 전우회가 만들어졌고, 다시 수도권, 부산·경남, 대구·경북, 충청 등 지역별 전우회가 결성됐다. 전우회를 창립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왜 그토록 희생하면서 백마고지를 지켰는지 그리고 이 땅을 지켜낸 이유를 후배 장병들과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전우회가 창립된 지 38년이 흘렀다. 전우회 참전용사들은 여전히 매달 한 차례 정기회의와 일 년에 한 번 총회를 열고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처음 창립 당시와 비교해 회원 수가 3분의 1로 줄었다. 현재 생존한 전우회 참전용사는 200명 남짓이다. 그 200여 명도 대부분 아흔이 넘었거나 이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전우회 활동은 멈춤 없이 계속되고 있다. 전우회는 백마고지전투를 많은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 중이다. 또 장병들을 대상으로 안보 관련 강의와 견학 행사 등을 진행하며 당시의 전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이 직접 겪은 백마고지전투를 비롯해 6·25전쟁과 이 땅의 역사를 생생히 전하며 후배 장병들의 애국심을 키우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전투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백마고지 참전전우회는 최근 사단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전우회를 더욱 체계적인 조직으로 만들어 백마고지전투의 의미를 후손들이 계속 계승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현재 생존한 전우회 참전용사들이 많지 않고 이마저도 고령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노병들의 힘으로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전우회가 사단법인으로 전환되면 백마고지전투의 정신을 계승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사업들이 더욱 안정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와 함께 매년 10월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육군9사단과 함께 열고 있는 백마고지전투 전승기념행사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또 백마고지전투 3용사 추모제도 지속한다. 전우들의 희생을 기리는 국가적·지역적 행사 개최를 바탕으로 전우회는 출판 및 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힘써 백마고지전투 정신을 더욱 널리 알리고자 한다.

전우회는 참전용사들의 정신이 후손들에게 오롯이 전달돼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해 주기를 기대한다. 목숨을 다해 지켜낸 자유와 평화를 항구적으로 이어가고, 이 나라 대한민국을 더욱 사랑하고 발전시켜 나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들이 목숨 걸고 조국을 지켜내려 했던 이유를 말이다. 

 

“우리를 잊지 마십시오, 꼭 기억해 주십시오” 


  백마고지 참전전우회 박명호 회장



“우리는 6·25전쟁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전쟁의 참상을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마고지 참전전우회 박명호(사진) 회장은 후배 장병들이 전쟁과 전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문을 열었다. 박 회장은 “오직 이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전우들이 목숨을 바쳤다”며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장병들의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화는 굳건한 힘과 강인한 정신전력에서 나오고, 그 시작은 전쟁의 역사가 주는 교훈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전쟁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말을 이었다. 박 회장은 백마고지전투 당시 육군9사단 28연대 예하 박격포소대 포반장으로 중공군에 맞서 싸웠다. 열흘간 24차례에 걸친 전투를 거치며 피의 고지 쟁탈전에서 살아남았다. 이 때문에 당시 전사한 수백여 명의 전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더욱 많은 국민과 장병에게 전투를 이야기하는 이유도 전우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전우회는 최근 사단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참전용사를 중심으로 운영 중인 전우회 활동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념관과 위령비를 보수·유지하고, 추모행사를 이어가는 데 참전용사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박 회장이 “참전용사들을 예우하고 기억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회장은 “전우회가 사단법인으로 전환되면 백마고지 전투의 중요성과 의미를 후손들이 계속 계승하게 될 것”이라며 “이 역사가 참전용사들에게서 끝나지 않고 오래도록 이어지게 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특히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과 자세는 지금의 장병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최근 코로나19의 예방과 해결을 위해 장병들이 앞장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가치를 지키려는 크고 작은 모든 노력이 숭고한 정신이며, 곧 희생과 헌신이라는 것이 박 회장의 이야기다. 박 회장은 장병들의 헌신에 감사함을 전하면서, 기억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안보에서 국민 모두는 하나가 돼야 합니다. 또 우리가 하나로 뭉치면 해내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장병들의 노력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잊지 마십시오. 꼭 기억해 주십시오.”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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