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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원이 되어 해전을 통제한다

기사입력 2019. 12. 19   14:58 최종수정 2019. 12. 19   16:08

48 배틀스테이션 미드웨이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해전 배경
해군 승조원 전투 임무 쉽게 설명
개개인 입장서 전투상황 역할 수행


거함거포 중심에서 잠수함과 항공모함의 등장으로 보다 입체적인 전장이 된 태평양전쟁의 해전을 다룬 게임들이 적지 않지만, 전략과 현장 모두를 다룬 게임으로 ‘배틀스테이션’은 의미깊다. 필자 제공
‘배틀스테이션’ 시리즈는 해전 현장의 곳곳에 대한 직접 개입이 가능한 액션 장면을 제공한다. 항공모함이 주력이 된 시대의 대양해전 현장을 느껴볼 수 있다.  필자 제공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많은 게임과 영화들이 주목하는 곳은 주로 유럽 전역이다. 독일의 프랑스 침공, 영국 본토 항공전, 노르망디와 스탈린그라드 등이 주목받는 와중에 비유럽권에서 벌어진 전투는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지는 편이다. 특히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물 만큼 권역이 넓었던 태평양 전역은 전세에 미친 영향이나 규모 면에서 결코 유럽 전역에 비해 빠지는 게 아닌데도 그러하다.

기존의 해전들이 주로 해안선을 끼거나 지중해처럼 최소한 육지·항구와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던 것과 달리, 2차 대전의 태평양 해전은 육지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대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대부분의 전투가 해전과 상륙전으로 이뤄졌던 태평양전쟁을 다룰 때 가장 앞서 거론되는 전투는 그래서 해전일 수밖에 없다.

대양해군의 전력이 본격적으로 맞부딪치던 이 전장을 다룬 게임들은 그래서 주로 대규모 대양함대의 운용이라는 전략적 측면에 집중한다. 대규모 함대를 운용하고 망망대해에서 적을 먼저 찾아내는 과정은 주로 드넓은 해도 상에서 전략적 의사결정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를 조금 더 수병 혹은 개별 함장의 시각에서 가까운 카메라로 그려낸 게임이 존재한다. ‘배틀스테이션’ 시리즈다.


태평양 해전의 생생한 현장 속으로

‘배틀스테이션: 미드웨이’와 ‘배틀스테이션: 퍼시픽’이라는 두 개의 시리즈가 나와 있는 2차 대전 태평양 해전 게임 ‘배틀스테이션’은 대전략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기에는 굉장히 좁은 국면을 다루며, 게임이 다루는 해전 데이터 또한 방대하기보다는 좁은 영역을 세세하게 다루는 방식으로 구현돼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틀스테이션’ 시리즈는 하나의 전투함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승조원들 개개인의 시점을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이를테면 플레이어는 한 척의 구축함에 하이라이트를 맞춰 세부적인 컨트롤을 수행할 수 있다. 적 함재기의 공습이 있는 상황이라면 대공포좌에 앉아 액션 게임처럼 직접 대공포를 조준하며 적기를 상대할 수도 있고, 함 카메라 시점에서 함포를 직접 조준해 적함을 향해 사격할 수도 있다. 어뢰 발사, 기뢰 투하, 심지어 항공모함 조종의 경우 함재기에 직접 탑승해 항공전을 수행하는 것까지 ‘배틀스테이션’ 시리즈는 태평양 해전의 대국면보다는 각 전투 장면에서 개별 승조원들이 어떤 전투를 벌이고 있는지를 더 가까이서 연출하는 데 중점을 둔다. 덕분에 게임은 전략 시뮬레이션과 액션 게임을 바쁘게 오간다. 함대의 변침을 해도 상에서 지시하면서도 교전 중 얽힌 아군과 적군 사이의 특정 상황을 클릭하면 플레이어가 실제 그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은 손쉽게 해전의 디테일한 양상을 체험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플레이어가 직접 개입하지 않는 상황은 AI가 알아서 적절한 행동을 수행하며, 플레이어가 그 상황에 개입해 전황을 조금 더 유리하게 전술적 측면에서 끌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플레이어가 막상 개입했는데 별다른 활약을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거시적·미시적 관점의 적절한 조화

디테일한 개입은 그래서 대전략에 비해 좀 더 인물과 사건에 몰입적이며, 나름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낸다.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는 주인공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며, 태평양 전역에 배치된 이 인물들이 전쟁에 참여하고 겪는 경험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진행하는 방식으로 게임이 풀려나간다. 진주만 기습의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주인공이 동료와 아군을 잃고 이어나가는 게임 플레이는 화면 밖 플레이어에게도 부채감과 복수심을 만들어낸다.

이런 연출 덕분에 이 게임은 일반인들에겐 해군 승조원의 전투 임무에 대해 가장 쉽게 설명하는 게임으로 자리매김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전투함 승조원이 전투 중 수행하는 상당히 높은 우선순위 작업인 피격 전투함의 화재 진압은 게임 안에서 실제로 매우 중요하게 작동한다. 제때 잡지 못한 불길이 엔진룸을 건드리면 배가 멈추고, 탄약고를 건드리면 유폭하기 때문이다. 해도와 전략계획서, 작전문서가 아닌 수병들의 실제 전투상황을 승조원 혹은 개별 전투함 입장에서 다루는 ‘배틀스테이션’은 그 만듦새에서 아주 높은 평가를 받는 게임은 아니지만, 승조원 시점의 해전이라는 디테일이 갖는 특성은 이 게임을 오래 기억하고 추억하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


대해전 속에서 움직이는 수병의 의미

육군과 공군이 각각 보병 개인, 전투기 조종사 시점에서 전투를 다루는 것에 비해 해군의 경우에는 개별 승조원의 시점으로 전투가 다뤄지는 경우가 드문데 ‘배틀스테이션’이 드러내는 수병의 입장은 꽤 흥미로운 경험으로 자리한다. 실제 전투 중인 배 위에서 좁은 통로를 바쁘게 오가는 수병들의 상황을 모니터 안에서 구경해 본 것으로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겠지만, ‘배틀스테이션’ 시리즈는 해군 또한 장비가 전부가 아니라 그 장비를 운용하는 해군 장병들이 있음을 색다른 게임 연출을 통해 시사하면서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해군 장병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는 면모를 가진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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