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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문화산책] 시(侍)

기사입력 2019. 12. 12   14:51 최종수정 2019. 12. 12   15:05

박현택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전문경력관·작가


‘侍’는 일본어로 사무라이를 일컫는다. 상감마마 옆에서 심부름하는 내시(內侍)의 그 시(侍)와 같은데 ‘가까이에서 모신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모셔야 한다는 점에서는 사무라이나 내시나 같은 팔자다. 그러나 사무라이가 모실 주군을 잃으면 낭인(浪人·Ronin)이 된다. 낭인이란 곧 프리랜서 무사로, 그들은 칼싸움 외에는 딱히 잘하는 게 없어 별 직업 없이 강호를 떠돌거나 살인청부와 도적질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무라이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떠벌리지만, 질 떨어지는 것들이 양아치나 건달, 깡패들이다.

1954년 作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적인 영화다. 율 브리너, 스티브 매퀸, 찰스 브론슨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열연했던 〈황야의 7인〉(1960)과 덴절 워싱턴, 이선 호크, 한국 배우 이병헌 등이 출연했던 〈매그니피센트 7>(2016)이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사실 별것이 없다. 밥을 뺏으려는 놈들과 뺏기지 않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밥을 얻어먹기 위해 뺏기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이들의 이야기다. 모두 그놈의 밥 때문에 쟁투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비록 밥을 얻어먹지만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무라이였다. 즉 밥값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의다. 인품이 갖춰진 문무겸비의 사무라이, 신기의 칼솜씨를 지닌 레알 사무라이, 사무라이를 흉내 내는 짝퉁 사무라이, 무작정 사무라이를 따라다니는 풋사무라이 등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는데, 구로사와는 결국 정의로운 사무라이들을 기리면서 자신의 휴머니즘에 대한 관심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감독은 시대의 변화(일본 전국시대의 종말과 조총의 출현) 속에서 하릴없이 몰락해 가는 사무라이 계급과 그들의 가치가 훼손돼 가는 당대의 현실을 연민의 눈길로 바라본다. 겸손과 절제, 내심 인정 가득하지만 냉철한 지성의 진짜 사무라이가 칼이 아닌 총알 한 방에 죽어버린다. 죽는 모습이 장렬하지도 않다.

영화의 결말은 밥을 뺏으려는 놈들(도적)은 전부 죽어버리고, 뺏기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도와줬던 이들(사무라이)은 반 이상이 죽어버렸다. 다행히도 밥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민중)은 아무도 죽지 않고 다시 밥을 만든다(농사를 짓는다). 우여곡절 끝에 좋은 나라 사람들이 이기긴 이겼다. 그러나 도적을 물리치고 끝까지 살아남은 사무라이는 동료들의 무덤 앞에서 자신들이 졌다고 말한다.

“이번에도 우린(도적과 사무라이) 졌군. 이긴 건 저들(민중)이지.”

결국 사무라이들이 받들어 모셨던 것은 민중이고, 밥이고, 평화로운 삶이었다. 사무라이는 자신들의 패배를 딛고 일어선 일상의 승리를 말했다. 행복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힘들다. 그런데 그 행복이란 평범한 일상에 담겨 있다. 일상이라는 견고한 바탕화면이 없이 제아무리 뛰어난 응용프로그램이 있은들 뭔 소용이겠는가? 농사짓고 밥 해먹는 것은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의 일상 또한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다. 목숨 바쳐 지킨 것은 농사짓고 밥 해먹는 일, 결국 일상적인 삶이었다. ‘이상’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일상’이라고 하더라. 일상? 그것의 다른 이름이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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