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병영칼럼

[김선희 병영칼럼] 무엇을 볼 것인가?

입력 2019. 10. 31   15:48
업데이트 2019. 10. 3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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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 희 
서울여대 특수치료 전문대학원 부교수
김 선 희 서울여대 특수치료 전문대학원 부교수

 
2000년대 초반, 유명한 뉴욕 현대 미술관 ‘모마(MoMA)’는 휴관일인 월요일에 뉴욕시의 어느 의과대학 수련의들을 위해 전시관을 오픈했습니다. 그곳에서 ‘지각의 기술’을 연마하는 교수님과 의대생들이 토론을 벌였습니다. 대체 바쁜 의대생들이 미술관에 가서 한가로이 그림을 보면서 토론하는 방식의 수업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 교육적 효과는 과연 얼마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국내에서 『우아한 관찰주의자』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다시 한번 그때 그 학습방식을 떠올렸습니다.

미술사학자이자 변호사인 에이미 허먼은 실제 뉴욕 의대생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여러 주에서 경찰, 군인, FBI 요원들이나 기업인 등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관찰능력을 기르는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경험하고 연구한 내용을 정리해서 2016년 『시각 지능: 지각을 단련하고 당신의 삶을 바꿔라(Sharpen your perception, Change your life)』를 출간했습니다. 한국에서 소개된 『우아한 관찰주의자』의 원서입니다.

저자 허먼이 소개한 의사, 앨리슨 웨스트는 시카고대학교 메디컬센터의 내과 의사이자 2012년에 ‘뉴욕(New York)’이라는 잡지가 의대 졸업생 중 최고의 의사들을 소개하는 데 선정되기도 한 유능한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허먼의 수업을 통해 먼저 알게 된 것은 “자신이 생각보다 관찰력이 없다”는 점이었다고 합니다.

의사로서의 수련 과정에서 작성한 보고서에는 ‘중년 백인 남자, 침대에 기대어 누워 있음. 피곤한 눈, 창백한 피부…. 주변 환경 평범하나 침대의 하얀 시트 오른편에 핏자국 있음’ 이런 기술만 간략히 했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허먼의 미술관 수업을 통해 낯선 그림 앞에서 먼저 이 그림 안에 펼쳐지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설명해야 했기 때문에, 그림의 중심뿐만 아니라 구석구석 보이는 것과 사용된 색, 구도와 느낌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관찰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한 학기 동안 지속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얻은 것에 대해 앨리슨 웨스트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수업 이후에 의사로서 환자에 관한 기록이 달라졌습니다. 같은 환자를 눈앞에 두었더라도 이제는 이렇게 기록하게 됩니다. ‘환자의 손에 낱말 퍼즐, 옆에는 스페인어 신문이 있고 옆에 할아버지의 쾌유를 바라는 카드가 놓여 있음. 그리고 옆에 놓인 꽃은 무슨 꽃인지 어느 정도 시들한지 볼 수 있고….’”

미술 감상을 통해 이 의사가 무엇을 보게 됐는지에 대해 결론적인 내용은, 의학적으로 새로운 진단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런 관찰력과 공감력이 없다면 알 수 없으며 오히려 진단명 이상으로 중요한 내용, 즉 무엇이 이 사람을 고통과 투병 중에서도 살고 싶게 만들며, 그 과정에서 의사로서의 상황파악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은 의사뿐만 아니라 가장 인간다우면서도 중요한 순간에 가장 적절한 판단을 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사람이라면 꼭 함양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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