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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군사명저] “6·25전쟁, 美-中 대결구도 겨냥 스탈린이 유도”

김상윤

입력 2019. 06. 07   17:39
업데이트 2019. 06. 0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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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리처드 스론턴의 『왕따: 트루먼, 스탈린, 마오쩌둥과 6·25전쟁의 기원』



리처드 스론턴 『왕따: 트루먼, 스탈린, 마오쩌둥과 6.25 전쟁의 기원』

Richard C. Thronton, 『 Odd Man Out: Truman, Stalin, Mao, and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2000 Potomac Books Inc)


마오쩌둥, 처음엔 중공군 투입 꺼렸으나
스탈린의 ‘벼랑 끝 전술’에 휘말려 참전 결단
트루먼도 정치적 목적 위해 ‘전투 장기화’ 원해
열강 틈새 ‘자주국방 필요성’ 느끼게 하는 책


프로이센의 유명한 군사전략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목적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6·25전쟁에서 참전국의 정치적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전쟁의 전략적 수준에서 6·25전쟁을 분석한다. 트루먼, 스탈린 및 마오쩌둥이 가졌던 정치적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쟁지도방식에 대한 도발적 해석을 통해 6·25전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전쟁에 숨겨진 정치적 목표

6·25전쟁의 발발에서 스탈린의 역할에 대한 일반적 시각은 간접적 후원자 정도였다. 그러나 저자는 스탈린에게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한다. 당시 스탈린이 중국의 국가전략을 눈치채고 이를 막기 위해 6·25전쟁을 교묘히 이용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 공산화 이후 마오쩌둥의 국가안보전략은 일차적으로 중·소동맹 체결을 통해 스탈린으로부터 항공기와 함정을 지원받아 대만을 점령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점차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와의 관계를 정상화할 의도를 가졌다고 한다. 스탈린에게 이러한 시나리오는 용납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이었다. 미·중 관계 정상화를 막기 위해 6·25전쟁을 이용, 이들 간의 무력충돌을 유도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당시 미국의 국가전략에 대한 이 주장은 다소 음모론에 가깝다. 1949년 9월 소련의 핵실험과 10월 중국 공산화를 계기로 미국은 1950년 1월부터 4월까지 소련 및 중국 같은 공산세력이 제기하는 다양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안보전략 문서 ‘NSC-68’을 작성했다. 문제는 이 문서가 요구하는 것을 구현하려면 100억 달러 규모의 미 국방비를 5배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500억 달러 미만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이 같은 국방비 증액을 위해서는 국민과 우방국에 공산세력의 위협을 절감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 공산 진영과의 전쟁이 필요했다는 추론이다. 그런데 이 같은 전쟁은 제한전 범주 안에서 처절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북한군의 남침은 일종의 기회였다. 그러나 소련의 참전은 막아야 했다. 소련이 참전하면 한반도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의 경우 한반도 전쟁에 참전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참전을 꺼렸다. 그러나 소련과 미국의 노력으로 참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남북한이 분단된 상태에서 북한에 친중 정권이 수립되는 것이 최상이었다. 중국의 전쟁목표는 유엔군의 자국 영토 침공을 저지하고 북한에 친중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의 교묘한 전략과 미국의 의도가 맞물리면서 중국은 6·25전쟁에 전면적으로 참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6·25전쟁에서 진정한 왕따(odd man)는 마오쩌둥이었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모습. 리처드 스론턴은 저서 『왕따: 트루먼, 스탈린, 마오쩌둥과 6·25전쟁의 기원』에서 중공군의 참전이 스탈린에 의해 유도된 것이라 주장한다. 중국과 미국이 가까워지는 것을 염려했던 스탈린이 6·25전쟁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가까워질 기회를 차단함으로써 소련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국방일보 DB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모습. 리처드 스론턴은 저서 『왕따: 트루먼, 스탈린, 마오쩌둥과 6·25전쟁의 기원』에서 중공군의 참전이 스탈린에 의해 유도된 것이라 주장한다. 중국과 미국이 가까워지는 것을 염려했던 스탈린이 6·25전쟁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가까워질 기회를 차단함으로써 소련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국방일보 DB


트루먼·스탈린·마오쩌둥의 전쟁 지도


6·25 당시 유엔군, 북한군, 중공군은 트루먼, 스탈린 및 마오쩌둥의 지도에 따라 움직였다. 전쟁지도는 이들 국가의 정치적 목표에 입각해 이뤄졌다.

북한군에 대한 스탈린의 의도는 미군과 중공군이 한반도에서 격돌하는 것이었다. 북한군이 한반도 공산화에 성공할 경우 미·중 격돌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미군이 낙동강방어선을 중심으로 교두보를 확보하도록 스탈린은 서울 점령 후 며칠 동안 체류하도록 했고 천안과 대전에 주둔했던 북한군 6사단과 4사단을 부산이 아닌 호남지역으로 진격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낙동강 교두보에서 유엔군을 공격하던 북한군에게 충분한 물자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전쟁 발발 직후 마오쩌둥에게 국경 부근으로 중공군을 집결토록 했지만,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고전할 때와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될 때 등 정작 중공군 참전이 절실한 순간에는 참전을 독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트루먼의 경우도 북한군의 남침 저지가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강방어선 구축을 주장했던 맥아더의 권유를 거부한 채 뒤늦게 지상군 투입을 결정했으며, 유엔군을 낙동강방어선까지 후퇴시켰다고 한다. 중공군이 참전하는 경우 유엔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었던 순간, 즉 낙동강방어선 전투와 인천상륙작전 당시 중공군 참전을 막기 위해 트루먼이 다양한 형태의 당근과 채찍을 마오쩌둥에게 제공했다고 한다.

북진 과정에서 8군과 10군단의 지휘를 양분했던 것 또한 미 육군 교리에 따라 10군단이 서울에서 평양으로, 8군이 서울에서 원산으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중공군이 참전할 경우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양을 겨냥해 진격하는 8군을 중공군이 공격해오는 경우 10군단이 원산에서 협공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유엔군이 평양-원산 이북 지역으로 진격하는 상황에서는 중공군 참전을 유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당시 중국은 계속 협상을 요구했지만 트루먼은 이를 거부한 채 압록강-두만강 국경을 겨냥해 유엔군을 진격시켰다. 중공군이 한반도 전쟁에 참전해 유엔군과 장기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것이 트루먼이 추구하던 정치적 목표 달성에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마오쩌둥은 유엔군이 압록강과 두만강 부근으로 진격해올 경우 참전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소련과 연합 차원에서 유엔군에 대항할 목적이었다. 마오쩌둥은 계속 소련 공군의 참전을 요구했지만 스탈린은 이를 지속적으로 거부했다. 결국 한반도를 미국에 모두 넘겨줄 수도 있다는 ‘벼랑 끝 전술’을 통해 중공군을 참전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국가전략적 사유의 중요성

저자는 미국, 소련, 중국, 북한에서 비밀 해제된 방대한 자료를 인용해 논리를 전개한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추정과 가설, 그리고 사실상 음모론에 가까운 주장들이 뒤섞여 있어 얼마나, 어디까지 타당한지 확인하기 쉽지 않다. 특히 스탈린과 트루먼의 전쟁지도에 관련된 세부적 주장 역시 타당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전략 차원에서 6·25전쟁을 다시금 논의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 전쟁이 단순히 군사적 충돌과 승리를 위한 군사적 노력 그 이상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큰 틀에서 전쟁의 정치적 목표와 현실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정치적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스탈린은 김일성의 한반도 적화야망과 마오쩌둥의 불안함을 이용해 자신의 전략적 목표(중국과 미국의 무력충돌과 관계악화)를 달성한 셈이다. 김일성 역시 철저히 속은 셈이다. 그와 북한군은 말 그대로 괴뢰군에 불과했다. 이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확전을 주장한 모든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스탈린의 교묘한 전략에 말려 들어간 셈이다. 전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국가전략적 사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일깨워주고 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와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 아닐까 한다.


권영근

한국국방개혁연구소장



김상윤 기자 < ksy0609@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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