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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 나를 꿈꾸게 해… 장병 여러분도 맘껏 꿈꾸길

이승복 기사입력 2018. 12. 27   16:26 최종수정 2018. 12. 27   17:35

<47·끝> 국방일보 연재를 마치며

해병대서 불굴의 의지와 용기 배워
군 경험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자산
어려운 순간 나를 세워 준 건 자신
자신을 믿으세요 할 수 있습니다
     

35개월 동안 모든 과정을 함께해줬던 가장 든든한 파트너, 김대현(HIBA·오른쪽) 형.  필자 제공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군 생활을 했던 저의 꿈은 ‘파일럿’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미국에서 1년간 비행학교에 다녔고, 개인 비행 면장 취득에 성공했습니다. 더불어 그 과정을 전부 영화로 제작해 12월 시사회를 마치고 내년 국제영화제 출품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어렵게 재수 생활을 마치고 건축공학 전공으로 대학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전혀 관계없는 일들에 도전해 왔습니다. 살면서 대학, 전공 나아가 살아온 환경과 관계없이 인생을 바꿀 기회들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경험을 하고 나서 시간이 지나서야 확신을 갖게 된 부분이었습니다. 과거에 저는 조급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도전을 통해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한 뒤 ‘최소한 굶지는 않겠구나’ 하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런 확신과 동시에 가장 깊고 풍부하게 꿈을 꿨던 시기는 군 생활이었습니다. 장병 여러분이 더 많은 꿈을 마음껏 꾸셨으면 좋겠습니다. 휴가가 아니면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우리가 꿈꾸는 상상에는 경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제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가장 힘든 순간들을 곁에서 믿음으로 함께해준 고마운 여자친구 지우(왼쪽).  필자 제공

저는 이번에 파일럿이 되는 과정을 영화로 제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에는 이 시간이 오래 걸려 답답함이 컸습니다. 하지만 시사회까지 끝난 현재에는 다 그럴 이유가 있었고, 오히려 시간이 걸렸던 만큼 빨리 끝났다면 얻지 못했을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자신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렵거나 힘들더라도 도전할 이유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20대 초반, 저는 정말 변화하고 싶었지만 정확히 뭘 해서 변할 수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학교나 주변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선택한 것이 해병대였습니다. 해병대는 제게 꿈을 심어주지도, 도전할 목록을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거보다 제가 훨씬 멋지게 변할 가능성과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라는 확신 그리고 쓰러져도 반드시 일어날 수 있다는 불굴의 의지를 해병대에서 배웠습니다. 훈련받을 때는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훈련이 끝나면 ‘나를 넘어섰다’는 생각에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았습니다. 자존감이 높아졌고, 저를 더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전역 신고 후 마지막으로 부대를 나가는 날, 오지 않을 것 같은 전역이 정말 온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면, 입대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비행을 막 시작했을 때, 또 말을 처음 탔을 때 갓난아기가 된 것같이 겁이 났었습니다. 아마존의 칠흑 같은 밤에 마라톤을 뛰었을 때도 정말 무서웠습니다. 영화 제작을 하면서 언제 끝이 날까 하는 막막함에 힘들었고, 책을 쓸 때는 한 페이지 글을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군대처럼 끝이 반드시 왔습니다. 감정이나 육체뿐만 아니라 생각하기가 힘들 때도 있었지만, 시간과 노력 그리고 꾸준한 열정이 해결해 줬습니다.

군대에서 저는 평범한 군 생활을 했습니다. 다만 저는 나름대로 잘하려고 계속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당시는 바뀌지 않았지만, 전역 후 몸에 습관이 되어 좋아진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봤던 여러 나라나 경험했던 여러 일 중에서 가장 불편했던 곳이 군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편하다’는 것은 과거에 제가 살아왔던 환경과 변화된 정도가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군대는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달라진,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버티고 적응한 경험이 몽골 사막, 독도 바다, 미국, 중국 소림사, 유럽 시골, 아프리카 오지, 파키스탄 히말라야, 아마존 정글 등지에도 아무렇지 않게 갈 수 있는 용기를 줬습니다. 어디를 가든 훈련소에 처음 갔던 그날의 불편함보다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역 후, 군 생활을 한 경험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자산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려운 순간에 저를 일으켜 세워준 최선이자 최후의 수단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이번 비행학교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도, 영화 촬영이 1년 이상 길어졌을 때도, 아마존 늪지대에 빠졌을 때도, 몽골에서 말을 타다 떨어졌을 때도, 소림사에서 무술을 배우다 허리를 다쳤을 때도 저를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만이 해결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저를 더욱 믿고, 의지를 갖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군대를 포함해 지난 어려웠던 시절을 돌이켜 봤을 때, 시간은 반드시 간다는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정도로 느리게 지나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끝나면 반드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잘하든 못하든 자신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랬기에 저는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으세요.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를 말씀드리면,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입니다. 제가 도전해 오면서 큰 의지와 열정을 갖고 했다고 하더라도 혼자였다면 이룰 수 없었던 게 대부분입니다. 그 이유는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심 어린 응원 메시지와 격려부터 경제적인 지원까지 한 분 한 분의 도움이 제 도전을 이룰 수 있게 해줬고, 다음 꿈을 꿀 수 있게 해줬습니다.

전역을 앞두고, 군에서 히말라야 등반팀에 지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대의 대대장님·중대장님 그리고 담당관님의 적극적인 도움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사함 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꿈에 도전하면서, 제가 받은 것을 더 많은 분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노력하기로 저는 다짐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와 관련된 꿈이 하나 생겼습니다. 도전과 꿈을 지원하는 장학재단을 만들어 도전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많은 분에게 받은 도움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1년간 국방일보 지면을 빌려 조종사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과정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했습니다. 만약 국방일보가 없었다면, 제 경험을 나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칼럼을 연재함에 있어 저를 믿어주신 국방일보의 모든 담당자분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모든 고생을 함께한 최고의 파트너, 감독 김대현(HIBA) 형과 내 꿈을 믿어준 여자친구 지우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두 번째 비행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해 다시 미국에 왔습니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입니다. 다시 여러분을 만날 그 날을 기다리며 ‘이동진의 파일럿 도전기’ 연재에 함께해 주신 모든 국방일보 독자 여러분의 2019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파이팅!

2018년 12월 28일 이동진 드림 

※미국으로 파일럿 유학 준비를 하고 있는 독자분들이 계신다면, 이와 관련해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을 드리겠습니다(heartbeatego@naver.com).

<이동진 파일럿 / 여행가>

이승복 기자 < yhs920@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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