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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방위 최전선 철통방어…지작사로 ‘제2의 창군’

기사입력 2018. 12. 26   16:55 최종수정 2018. 12. 26   16:58

48·끝-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육군 1·3군사령부와 지상작전사령부 출범

1군사령부 1953년 12월 창설
중동부전선·동부전선 방어
1973년 7월 창설된 3군사령부
서부전선과 중부전선 책임
반세기 국군사의 핵심 역할 수행 


올해 12월 31일 역사 뒤안길로
2019년 첫날 지상작전사령부 출범


1군사령부의 전경. 부대 제공
대한민국 국토 방위의 최전선을 책임지고 있는 육군1·3야전군사령부가 내년 1월 1일부로 지상작전사령부로 재탄생한다. 비록 1·3군사령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만 이들이 수행했던 국토 방위의 신성한 임무와 책임은 지작사로 그대로 이어질 예정이다. 사진은 3군사령부의 전경. 
 부대 제공

2018년 12월 31일, 대한민국의 지상작전을 책임졌던 육군의 부대구조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됐다. 그것은 바로 휴전선 전체를 포함해 경기도 지역을 책임지게 될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의 창설이다. 이에 따라 전방방어 임무를 책임졌던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가 그 임무를 종료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국방 역사에서 많게는 65년(1군사령부 기준), 짧게는 45년(3군사령부 기준)이 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지상작전사령부의 창설은 ‘제2의 창군’이라 할 만하다. 

 
육군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는 대한민국 국토방위의 최전선을 책임진 최고의 야전군사령부였다. 1군사령부는 중동부전선과 동부전선을, 3군사령부는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을 책임져 왔다. 1·3군사령부는 후방의 2작전사령부와 함께 대한민국 국토를 실질적으로 수호해 온 최고 야전군사령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대한민국 육군의 부대구조가 오늘날과 같은 전후방 체제로 바뀐 것은 6·25전쟁을 거치면서다. 전쟁 직후 육군은 전방방어 임무를 맡는 1군사령부와 후방지역의 책임을 맡는 2군사령부 체제의 지휘구조를 갖췄다. 6·25전쟁이 끝나면서 군 수뇌부는 전방방어 임무를 책임지는 1군사령부를 1953년 12월 15일 강원도에서 창설했고, 후방작전과 군수지원을 책임지는 2군사령부를 1954년 10월 31일 대구에서 창설했다. 그 결과 휴전선을 포함한 전방지역의 책임은 1군사령부가 맡고, 경기도 이남의 후방지역은 2군사령부가 책임을 지게 됐다. 그런 체제는 1973년 7월 1일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을 맡게 될 3군사령부가 창설될 때까지 계속됐다. 이후 육군의 전반적인 부대구조는 전방지역을 맡는 1·3군 체제와 후방지역을 책임지는 2군 체제로 정착됐다. 이른바 ‘육군 3군사령부 시대’의 시작이었다. 그 세월이 어언 45년이었다. 1군사령부와 2군사령부 체제로부터는 65년의 세월이 흘렀다.

최초 육군이 전후방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은 6·25전쟁을 수행한 미8군의 지휘구조에서 비롯됐다. 6·25전쟁 초기 미8군사령부는 전선의 유엔군지상군사령부 역할을 수행하면서 후방작전과 교육훈련 그리고 유엔군에 대한 군수보급까지 도맡아 수행했다. 그러다 보니 미8군사령관의 임무가 너무나 버거웠다. 그것을 알게 된 유엔군사령부에서는 미8군사령관의 임무를 덜어주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한국병참관구사령부(KCOMZ)의 창설이었다. 1952년 창설됐고 ‘케이콤즈’라고 불리는 한국병참관구사령부는 전쟁 초기부터 미8군사령관이 맡고 있던 후방지역 작전과 포로관리 업무, 군수보급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됐다. 그럼으로써 미8군사령관은 전투임무와 교육훈련만을 수행하게 됐다. 그 결과 6·25전쟁 기간 유엔작전을 총괄했던 미군의 부대구조는 전방지역에서 전투임무 및 교육훈련을 맡는 미8군과 후방작전과 군수지원을 책임지는 한국병참관구사령부의 전후방 체제로 나뉘게 됐다. 그런 상태에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6·25전쟁이 끝나자 우리나라 군 수뇌부에서는 전쟁 기간 지상작전을 총지휘했던 미군의 지휘구조를 본 떠 휴전선을 포함한 전방지역 작전을 맡게 될 1군사령부를 정전협정 체결 직후인 1953년 12월 15일에 창설했으며, 그 이듬해인 1954년 10월 31일에는 후방지역작전과 군수보급을 맡게 될 2군사령부를 창설하고, 또한 교육훈련을 책임질 교육총본부(교육사령부 전신)를 창설해 미군 철수에 따른 전력상의 공백을 최소화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2군사령부는 군수업무를 육군군수사령부로 이관하면서 후방지역 작전 및 경계 임무만 수행하게 됐다.

6·25전쟁 시 미8군의 역할을 떠안게 될 1군사령부 창설은 국방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6·25전쟁 발발 당시 단 1개의 군단도 없이 순수 8개의 보병사단뿐이었던 국군이 전쟁 직후 16개 사단을 지휘하게 될 동양 최대의 군사령부를 창설한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인 일이었다. 거기다 초대 1군사령관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4성 장군에다 현직 육군참모총장인 백선엽(白善燁) 육군대장이 임명됐다. 일천하기 짝이 없는 국방사에서 4개 군단(1·2·3·5군단)에 16개 사단을 지휘하게 될 1군사령부 창설은 대한민국 국군의 자랑이자 자존감을 드높이는 일이었다. 이후 1군사령부는 서부전선을 맡고 있는 미군(한미1군단·한미1야전군사령부)과 함께 휴전선을 책임지게 됐다. 그 과정에서 역대 1군사령관은 승승장구했다. 1973년에 3군사령부가 창설될 때까지 1군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 그리고 국방부 장관으로 대거 진출했다. 이때부터 1군사령관의 임무와 역할은 국방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다 1973년 7월 1일 3군사령부가 베트남에서 철수하는 주월한국군사령부(駐越韓國軍司令部)를 모체로 창설되면서 전방방어 임무는 1·3군 체제로 발전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창설된 3군사령부의 초대 사령관에는 2대 주월한국군사령관이었던 이세호(李世鎬) 육군중장이 임명됐다. 이후 이세호 장군은 육군대장으로 진급하면서 육군참모총장으로 발탁됐다. 3군사령부 시대의 개막이었다. 3군사령관 출신들도 육군총장을 비롯해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으로 대거 진출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철수 후 각각 창설된 1·3군사령부는 국방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출범해 국토방위 임무에 최선을 다해왔다. 그리고 2018년 12월 말을 끝으로 그 임무를 새로 출범하는 지상작전사령부에 인계하려 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역사와 전통에 빛난 1·3군사령부는 비록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만 그들이 수행했던 국토방위의 신성한 임무와 조국이 부여한 막중한 책무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1·3군 소속으로 전방에서 국토방위에 헌신한 예비역을 포함한 1·3군 장병 여러분의 충정과 애국심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2019년 밝아오는 새해 아침과 함께 국방역사의 첫 페이지를 기록하게 될 ‘지작사(地作司)’에도 무운장구와 함께 영광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남정옥 전 군사편찬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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