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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사 12월 24일] 1914년 1차대전 크리스마스 '정전' 기적

입력 2018. 12. 22   17:20
업데이트 2019. 12. 2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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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로에서의 크리스마스 기적과 관련해 1915년 1월 9일자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뉴스에 실린 한 화가의 인상적인 그림으로 영국군과 독일군 병사들이 적대감 없이 담배 등을 교환하며 담소하고 있다.
이프로에서의 크리스마스 기적과 관련해 1915년 1월 9일자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뉴스에 실린 한 화가의 인상적인 그림으로 영국군과 독일군 병사들이 적대감 없이 담배 등을 교환하며 담소하고 있다.

오죽하면 ‘죽음의 땅(No man’s land)라고 했을까. 13세기 때는 모직물 생산으로 번영했던 벨기에의 서부도시 이프르(Ieper, Ypres),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는 전역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1914년, 전선은 치열했지만 지루했다. 양측의 군대 모두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거의 전진을 하지 못하고, 참호를 깊게 파고 들어가 대치하는 상태를 보인 것이다. 겨울이 되고 겨울, 축축하고 음산했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도 그랬다. 눈이 내렸지만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포근함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전쟁터였다.


그런데 누군가 전방의 상황을 목격하면서 하나둘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전방 독일군측 진영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독일군이 방벽 위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있었다. 잠시 후엔 누군가 부르는 캐롤 ‘고요한 밤 거룩한 밤(Stille Nacht, Silent Night)’이 양측의 참호 사이 완충지대에 차분하게 퍼지듯 내려깔렸다.

뜻밖의 일에 뜻밖에도 영국군도 영어 가사로 화답했다.


노래가 끝나자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누구의 지시랄 것도 없이 양측 군인들은 참호를 나와 서로 악수하고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눴다. 담배도 나누어 피웠고 초코릿이나 잼같은 선물도 교환했다.


사람들은 훗날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전쟁이 터지고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황 베네딕트 15세(Pope Benedict XV)가 12월 7일 ‘신의 휴전(Truce of God)’을 공식 제의하는 등 여기저기에서 잠시라도 전쟁을 멈추자는 임시정전 요구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전'이라니, 전쟁 지휘부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제안들이었다. 지휘부는 그렇다해도 야전에서 실제 전투에 임하는 장병들의 마음도 그러할까.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롤이 가져온 믿기지 않는 ‘정전’은 빠르게 번져 나갔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이어졌고 그날 오후에는 축구 경기도 열렸다. 일부 전선에서는 새해 벽두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데일리 미러’지(紙)는 양국군이 이때 찍은 사진으로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야전의 병사들이 이뤄낸 이 정전과 평화는 고위 지휘부에 의해 금지되었고 전투는 다시 재개되었다.

■ 참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불리는 캐럴송 중 하나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1818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그루버(Franz Xaver Gruber)가 작곡하고 요제프 모어(Joseph Mohr) 작사한 것으로 오베른도르프(Oberndorf bei Salzburg)의 성 니콜라우스 교회에서 곡을 만든 당일인 12월 24일 저녁예배 도중에 처음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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