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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말과 함께 전장 누빈 철기 말 사랑도 남달라

기사입력 2018. 12. 04   16:05 최종수정 2018. 12. 04   16:37

<43> 철기의 말[馬]과 서예

독립군 시절 거금 주고 구입 ‘무전’
연해주·만주서 수많은 전투 함께해
국방부 장관 때는 말 타고 출퇴근도
퇴임 후엔 애마 ‘흑수’와 산책 즐겨
야생마를 명마로 조련해 아낀 ‘설희’
철기 타계 전 울음… 후에 육사에 기증 


정신수양 위해 틈틈이 붓글씨 연습
서예에도 조예… 글씨에 힘 넘쳐


일선에서 물러난 철기가 애마 흑수를 타던 모습. 사진=필자 제공

철기가 타계한 뒤 육사에 기증된 애마 설희. 설희는 1974년 5월 11일 2주기 추도식 후 기증됐다. 사진=필자 제공

초대 국방부 장관 시절 말을 타고 출퇴근하는 철기. 사진=필자 제공

기병장교 출신으로 평생을 말과 더불어 전장을 누볐던 철기에게는 말과 관련된 일화가 많다. 초대 국방부 장관 시절 서울 시내에서 말을 타고 출퇴근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립군의 자랑스러움과 무인의 기개였다. 철기는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다. 문무겸전이다. 그는 많은 서예 작품을 남겼는데, 글의 뜻과 글자 획에 힘이 넘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철기와 말[馬]


본디 기마는 힘과 용맹을 상징하고 무인의 기질을 대표한다. 중국 운남육군군관학교 기병과 수석졸업 후 철기는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다. 말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운남군관학교 졸업 때 만든 그의 호인 철기의 ‘기’ 자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천리마 ‘驥’ 자다.

기병은 과감히 마상 돌격을 감행할 수 있는 발랄하면서도 민첩·용감하고 대범한 기질을 가져야 한다. 특히 기병의 생명인 말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기병은 인마동체가 핵심이다. 철기는 거기에 적합한 체격과 기질, 그리고 성정을 타고났다.

철기 일생에서 알려진 말은 무전, 흑수, 설희가 유명하다. 무전은 철기가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일제와 투쟁을 벌였을 때 탔던 말이다. 흑수는 철기가 귀국한 후 설희를 소유하기 전의 말이다. 설희는 철기가 운명했을 때 곁을 지켰던 말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시베리아 고원지방에서는 예부터 체구가 큰 명마가 탄생하곤 했다. 무전도 그중 하나였다. 철기는 그 어려운 독립군 시절에 1800루블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무전을 구매했다. 이후 무전은 철기의 연해주와 만주 시절 숱한 사선을 함께 넘나든 전마(戰馬)가 됐다.

무전의 오른발 뒤꿈치 위에는 오리알만 한 크기로 두드러진 혹이 있었다. 그것은 명예로운 상처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어느 날 밤. 27명밖에 안 되는 철기의 기병대가 300여 명의 적을 포위해 조여들 때 발생했다. 갑자기 적탄이 날아와서 철기의 허리에 차고 있던 망원경을 깨뜨리고, 나아가 무전의 오른쪽 뒷발을 맞힌 것이었다. 그때 뼈가 부서진 자리에서 뼈가 튀어나온 것이 바로 그 상처다.

중·소 국경 소지영(小地營)에서의 전투 때다. 새벽부터 시작된 격렬한 전투는 종일토록 계속됐다. 철기는 머리 부분에 총탄 부상을 당해 붕대로 싸맨 채 칠흑 같은 밤에 절벽 위의 길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언덕이 무너지면서, 무전은 앞발을 헛디뎠다. 흙더미와 함께 그대로 낭떠러지로 밀리며 떨어지는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벼랑은 60도 이상의 급경사였다. 중상을 입은 철기와 무전은 한 덩어리가 되어 난관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몇 번이나 구르며 내리 떨어지는 동안 무전은 마침내 기진맥진해서 앞발의 맥이 풀려 넘어지려고 했다. 그 순간 철기는 전력을 다해 허리를 죄면서 중심을 말 궁둥이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재빨리 고삐를 힘껏 위로 채서 올렸다. 철기가 고삐를 힘껏 위로 채자, 무전은 최후의 용기를 다해 어둠 속에서 펄쩍 뛰었다. ‘쿵’ 소리와 함께 떨어진 곳은 다행히 평지였다. 무전이 철기를 구한 것이었다.

철기와 무전의 사이는 영혼의 결합이었다. 수많은 전투마다 철기와 무전은 한편의 조화로운 관현악을 연주했다. 그러나 무전의 종말은 가슴 아팠다. 철기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 무전에게 먹일 귀리를 구하지 못해 산림 채벌꾼에게 겨울 동안 먹여달라고 무전을 맡겨야만 했다. 결국, 무전은 중노동으로 인해 폐마가 되고 말았다.

설희는 호주산 말로 철기의 마지막 애마였다. 원래 철기가 귀국해서 타던 말은 흑수였다. 철기가 설희를 만난 것은 타계하기 1년 전인 1971년 5월 어느 날이다. 어떤 말 수입업체가 호주에서 수입해 온 스노퀸(snow queen)이라는 이름의 말을 우연히 보게 됐다. 철기는 한눈에 평생을 두고 찾던 명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흑수와 교환해 그 이름을 설희로 지었다. 순백색 말인 설희에 대한 철기의 애정은 그야말로 지고지순했다.

철기는 비 오는 날을 빼고는 매일 아침 각설탕과 당근을 들고 설희를 찾았다. 조련을 끝낸 다음에는 꼭 손수건으로 눈곱과 입 언저리를 닦아주곤 했다. 철기는 야생마에 불과했던 설희를 손수 조련해 이름 그대로 명마로 만들었다. 설희는 작은 각설탕도 시키는 대로 어김없이 절반만 깨물고 세 발로 달리기, 발 엇갈려 닫기 등 어려운 기술을 쉽게 익혔다.

철기가 운명하던 1972년 5월 11일 오전 6시쯤. 설희는 마사공원의 마구간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세 번 크게 울었다.

마사공원 직원들은 이날 오전 7시 뉴스로 철기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직원 모두는 그때 비로소 명마인 설희가 주인의 운명을 알고 울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설희의 나이는 7살로 말의 평균수명을 18년으로 잡으면 20대의 청춘이었다.

설희는 철기의 국민장 때 철기의 운구차를 뒤에서 묵묵히 따랐다. 철기 사후에 제대로 먹지 않고 힘이 없었기에 철기의 유언에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기증됐다.

설희는 철기의 승마복, 안장, 장화, 굴레 등과 함께 육군사관학교로 옮겨졌다. 조국 광복에 일생을 바친 철기였다. 설희는 육사 생도들에게 철기의 우국충정을 배우게 하는 역할을 끝으로 육사에 묻혔다. 철기의 애마다운 마지막 스토리다.

설희는 눈의 여인이라는 뜻이다. 철기가 눈의 도시 러시아 톰스크 억류 시절 만나 사랑을 나눴던 폴란드 여인 올랴(올레리나)를 생각하고 지었다는 일화도 있다.


철기의 서예 


제전기풍. ‘발굽은 번개처럼, 갈기는 바람처럼’이란 뜻으로 말의 민첩함과 용맹무쌍함을 칭송하는 글이다. 1971년 1월 1일  마사공원에 기념으로 써준 글이다. 사진=필자 제공

호연정기.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 크고 밝은 기운’이라는 뜻이다. 김해 소림기념관에서 소장하다가 지금은 개인 소장가에게 경매됐다.  
 출처=소림기념관
철기는 서예에도 남다른 조예가 있었다. 철기의 글은 무인답게 글의 뜻과 글씨에 힘이 넘친다는 평을 받았다. 사관학교 교명과 이승만 대통령 영결식 때 관을 덮었던 만장이나 묘비명도 철기의 글이다. 이외에도 많은 작품이 남아있다. 심심치 않게 TV나 경매시장에서 철기의 글이 등장해 고가로 판매된 적도 있다.

철기는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해 30여 년간 전장을 누볐다. 서예를 따로 익히고 담금질할 만한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볼 때 대단한 일이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도 있었겠지만, 틈틈이 시간을 아껴 익히고 숙달한 결과일 것이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고급간부로 올라갈수록 매우 중요한 재능이다. 요즈음 군대의 간부들은 무척 바쁘고 여유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서예는 정신수양과 인격도야에 많은 도움을 준다. 철기는 평생을 무장독립투쟁을 하며 중국 본토와 만주, 연해주, 시베리아 등지를 누비고 다녔다. 이런 철기의 생애를 통해 볼 때 지도자는 스스로 수련을 통해 품격을 갖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군 간부들이 배울 만한 교훈이다.  <박남수 철기 이범석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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