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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면장 취득·영화 촬영 완료… 꿈이 현실이 되다

기사입력 2018. 11. 29   16:59 최종수정 2018. 11. 29   17:05

<44> 모든 도전의 끝은 존재한다

꿈 이루기 위해 2016년 홀로 미국행
장학금·영화 지원 미팅 등 동분서주
꿈만 같았던 19개월이 주마등처럼
힘들 때 히바 형·여자친구 응원 큰 힘
한국에서 영화 편집 후반 작업 매진
다음 단계 라이선스 등 또다른 도전 


나의 꿈을 향해 함께 날아줬던 비행기와. 사진=필자 제공

비행기 조종석에서. 사진=필자 제공

파일럿이 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원래 계획했던 것은 라이선스 3~4개를 전부 취득하는 것이었지만, 이번엔 하나만 취득할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히바 형은 최선을 다해서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파일럿이 되는 전 과정을 온전히 영화로 찍은 사례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사실 최초라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파일럿이 되고 싶었고, 그 과정을 영화로 찍고 싶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결국 그걸 해냈다는 것이다.

2016년 1월 장학금을 받으러 미국에 갔었다. 그때 10개 학교를 돌았고, 한 개 학교에서 재미팅 요청이 들어왔을 때, 히바 감독 형에게 연락해 촬영을 부탁드렸다. 놀랍게도 내 계획대로 미팅 장면을 촬영했고, 그 덕분인지 협상은 더 순조롭게 진행돼 결국 장학금을 받게 됐다.

미국에 온 지 33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장학금을 받고 나서, 히바 형에게 정식으로 우리 영화의 감독님이 되어달라고 부탁드렸다. 형은 함께 하자고 했다. 든든한 동료가 생기니 큰 힘이 생긴 듯했다.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더 구체적인 영화제작 계획을 짰다. 그리고 많은 곳에 강연을 다니면서 또 여러 회사에 영화 제작 지원에 관한 미팅을 제안했고, 100여 곳 이상에서 꿈과 영화를 주제로 발표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나도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넉 달째 되었을 때, 장학금 받으러 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셨던 최고경영자(CEO) 두 분께서 제작을 지원해 주셨다. 영화 제작비가 없어서 학교 시작 시기를 세 번이나 미뤘는데 결국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그해 8월 31일 미국에 도착해 9월부터 비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과정 중에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큰 것은 영어였고 그런데도 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좋은 선배들 덕분에 공부에 재미를 붙였고, 비행도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교관을 바꾸었고 그때부터 비행 진도를 많이 나갈 수 있었다. 솔로 비행도 했고, 주어진 테스트도 모두 통과했다. 최종 시험에서 두 번 떨어지긴 했지만, 결국 세 번째 최종 합격했다. 또 50개 주 횡단을 위해서 열심히 준비했는데, 마지막 6000㎞ 미국 종단 왕복 비행으로 대신했다. 아쉬웠던 것은 라이선스를 따기 전이라 직접 비행을 못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세웠던 목표들 덕분에 가까이에서 그것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한 번에 이뤘다면 너무나도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나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이선스를 이제 막 취득했기 때문에 앞으로 평생 비행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조급해할 게 전혀 없다. 앞으로 취득할 라이선스가 많이 남아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떨어졌고 재수해서 대학에 들어가 군대 휴학을 포함해 8년 만에 졸업했다. 2년 휴학 기간에 많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못 하는 일은 지난 과거에 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뿐이다. 과거에 내가 했던 것을 다시 하라고 하면, 그것을 처음에 해냈던 시간의 반 혹은 3분의 1 정도도 안 걸릴 것을 나는 안다. 그 과정을 다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오래 걸렸던 만큼 주변에서 응원을 정말 많이 받았다. 특히 함께 동고동락했던 히바 감독님은 좌절할 때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찍고 있는 것이니 괜찮다고 격려해줬다. 힘든 순간 “괜찮아”라고 하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나는 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또, 선배 파일럿인 여자친구는 정말 큰 힘이 됐다. 그녀는 단시간에 해낸 같은 파일럿 과정임에도, 영어나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를 100% 공감해주고 진심으로 응원해줬다. 내가 힘들어했던 시간에 만났기에 곁에 있어 주는 그녀에 대한 감사함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인 학교 교장인 윌도 미국인들도 라이선스를 따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며 항상 ‘파이팅’을 외쳐줬고, 내 마지막 교관 다비드는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도 한 발짝 나간 거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힘을 북돋워 주었다. 학교 친구들과 심지어 집주인 형님도 힘을 주셨다. 생각해보면 나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서 큰 항공사에 들어가 여객기를 몰겠다는 꿈으로 시작한 도전인데, 처음엔 생각지도 못하게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한가득 생겨났다. 꿈이 준 선물인 라이선스는 작은 것이었고, 곁의 사람들이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께서는 매일 기도해 주셨다. 그래서 몸이 건강하게 마지막까지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친구들도 대단한 도전을 하러 가는 것이라며 나를 응원해줬다. 돌이켜 보면 이 모든 분의 응원과 사랑 덕분에 내가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어찌 됐든,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도 박수를 쳐준다. 잘했든 못했든 나는 열심히 했다. 오히려 더 확실해졌다. 앞으로 뭘 하든 포기는 하지 말자. 그거면 된다. 인생에서 원하는 걸 다 얻을 수는 없을지언정 내가 선택한 걸 이끌어가는 방법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다

라이선스를 취득한 다음 날 히바 형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만약 세 번째 시험 전에 종단 비행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매 순간 선택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두 개 다 선택할 수도 없고, 그럴 만한 시간도 없기 때문에 잘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좋은 판단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한 걸 밀고 나가는 힘이다. 그동안 도전해 왔던 것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됐다. 분명 이번 경험이 또 내일의 도전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나는 미국에 남아서 지난날 수리를 맡겼던 비행기를 찾으러 갔고, 그걸 반납했다. 며칠간 LA에 있으면서 지난날을 돌이켜봤다. 1년이 안 되게 미국에서 생활했다. 장학금을 받은 날부터 치면 18개월이 지났다. 한국에 돌아가면 본격적인 영화 편집을 위한 후반 작업을 시작한다. 예전 ‘고삐’ 영화 때는 5개월이 걸렸고, 그 후 시사회 등을 하면서 5개월 동안 영화를 홍보하는 등 10개월을 썼다. 이번에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우선 한국에 가면, 가장 먼저 후반 작업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했던가. 영화 제작비를 따지면, 학교 교육비는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한다. 영화를 완성하려면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국에 가자마자 새로운 도전을 또 시작한다. 영화를 다 하고 나면 나는 다시 미국으로 와서 그다음 비행 라이선스들을 취득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하나하나씩 해나가자. 이번 개인 비행면장 취득과 영화 촬영이 끝났듯이 좋든 싫든 모든 일에는 끝이 존재한다.  <이동진 파일럿·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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