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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시간, 수많은 고생 끝…“꿈은 이루어진다”

기사입력 2018. 11. 22   16:59 최종수정 2018. 11. 22   17:02

<43> 15년간 품어왔던 꿈, 파일럿이 되다

처음엔 어려웠던 비행…시간과 비례 실력 상승
마지막 시험 앞두고 오히려 담담하고 당당해져
시험관 요청 듣자마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
지난번 실수했던 착륙 완벽하게 수행하며 합격
 

 

파일럿 합격 직후, 함께 날아줬던 나의 비행기와 함께.

파일럿이 된 후, 교관 다비드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느낌이었다. 나만 증세가 심했지만, 같은 공간에 있었기에 같이 병원에 가서 일산화탄소 중독 검사를 받는 게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응급실에 연락을 취했는데 앰뷸런스가 공항에 도착했다.

구급대원이 전화한 분이냐고 하면서, 같이 병원으로 가자고 했는데 미국에서 구급차를 타는 순간 몇백만 원이 청구된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구급대원에게 우리는 구급차를 요청하지 않았고, 이걸 타게 되면 돈이 많이 나오니 알아서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하라며 쿨하게 돌아갔다. 공항에서 휴식을 취하다 머리가 더 아프기 전에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이동했다. 늦은 밤, 대기 환자들이 몇 있었다. 미국에 와서 새벽에 병원을 오게 될 줄이야. 등록 절차를 마치고, 간호사의 안내를 기다렸다. 30분 정도 지나 병원 안쪽 진찰실로 이동했다.

의사가 오더니 내 상태를 물어봤고, 왜 병원에 왔는지 확인했다. 일단 피검사부터 해보자고 했다. 그래야 일산화탄소 중독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했다. 피를 뽑고 가만히 앉아있다가 진료실 칸막이 커튼을 바라봤다.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싶었다. 여행 중 여러 일이 있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이렇게 큰일이 일어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 의사가 오더니, 아무 문제가 없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다행히 그 냄새가 몸에 영향을 끼치진 않았나 보다. 정말 다행이었다. 좋은 경험 했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새벽녘 병원 로비 대기실에 앉아 택시를 부르는데, 2시간을 기다리라고 했다. 새벽 5시가 다 돼서야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씻고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비행기 상태를 점검해 보니, 배기관이 타면서 그 단단한 철에 아주 작은 구멍이 몇 개 생겼다. 이 정도로 천만다행이었구나 싶었다. 다행히 공항 안에 항공 정비소가 있어 전화를 하니, 우리가 세워둔 구역으로 비행기용 토잉카를 끌고 왔다. 그걸로 비행기를 고정하더니 우리와 함께 정비소로 향했다. 정비소 대표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비행기를 점검하겠다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 어려운 상황들이 많았지만, 항상 침착하고 즐겁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 바로 여자친구와 감독님 덕분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우리는 시험이 끝나면 비행기를 다시 찾으러 오리라 생각하고, 샌디에이고로 차를 몰았다.

학교에 도착했고 재시험 보기 전날, 내 교관 다비드와 최종 점검 비행을 했다. 반드시 붙어야 된다는 절실한 마음과 이렇게까지 했으니 모든 걸 내려놓고 실력대로 보자 하는 두 가지 마음이 있었다. 최단 비행시간으로 교육과정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에 했었는데, 이미 최단시간을 넘겨버렸다. 오히려 비행시간이 많아질수록 마음이 더 편해졌다. 처음에 그렇게 어려웠던 비행이 신기하게도 시간과 비례해 실력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신기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나 스스로 많이 조급해하지 않았던가. 그랬기 때문에 이제는 시험에 자신이 있었다. 마지막 기회지만 오히려 담담했고, 당당했다. 실패도 자주 해봐야, 별거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시험 날이 왔다. FAA 시험관과는 세 번째 보니 어느새 친근감이 생겼다. 교실에서 오늘 비행에 관한 브리핑과 날씨 점검을 모두 마치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마음속으로 비행기에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이륙 절차를 시작했다. 비행기가 뜨고 기동할 수 있는 공역으로 이동해서 재시험을 보기로 했던 긴급 하강에 대한 기동을 했다. 시험관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예정에 없던 다른 기동들을 하나씩 해보라고 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전날 연습을 안 했던 것뿐이지, 지난 몇 개월 동안 수백 번 했던 것이었다. 내가 놀란 것은 시험관이 나에게 기동하도록 시킨 것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그의 요청을 듣자마자 머리가 아니라 몸이 이미 그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머리보다 몸이 빨라져 있었다. 그는 다른 것들도 몇 가지 더 요청했다. 오히려 매뉴버를 하고 나니, 자신감이 더 생겼다. 추가로 요청한 사항을 해내고 나니, 공항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날따라 교신도 훨씬 더 잘됐다. 그렇게 힘들어했던 교신이었는데 시험 날 이렇게 자신 있게 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분명 여행하면서 선배 파일럿의 교신을 매일 들으며 실력이 는 것이 분명했다.

드디어 지난날 탈락한 요인 중 하나였던 착륙 후 브레이크를 세게 잡는 것에 실수했던 것을 떠올리며, 착륙 절차에 들어갔다. 착륙 허가도 받고, 파이널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활주로가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시험관도 지난번 내가 실수했던 부분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 온 신경을 집중해 나의 착륙을 관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와 활주로 지면이 점점 가까워져 오는 찰나, 롤 아웃을 하기 위해 요크를 천천히 뒤로 당기며 비행기 앞부분을 위로 올리면서 플로팅을 유지하다 마지막에 플레어로 자세를 유지한 채 내가 지목한 정확한 곳에 뒷바퀴를 안착시킨 다음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지그시 밟아주었다. 완벽했다. 지금껏 내가 했던 쇼트필드 랜딩 중 가장 잘한 날이 오늘이었다. 긴장을 놓지 않고, 주기장으로 차분하게 천천히 이동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멈춘 뒤 시동을 껐다. 시험관은 오른쪽 문을 열고는, 곧바로 오늘 비행에 대해 디브리핑했다. 브리핑을 끝내고 나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오늘 미국에 또 한 명의 파일럿이 탄생했네요. 이동진 씨! 축하합니다. 당신은 오늘 프라이빗 파일럿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한마디였다.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단 말인가.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15년간 품어왔던 꿈이 이뤄졌다. 그 순간 카메라를 들고 있는 히바 형과 눈이 마주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동안의 고생이 떠오르면서 격한 감정이 올라왔다. 시험관은 비행기를 정리하고 교실로 돌아오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히바 형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손을 맞잡았다. 그동안의 수십 가지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히바 형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우리가 기다렸던 이 순간이 현실이 되었다. 또 기적이 있다면, 히바 형 귀국 전날에 합격했다는 사실이었다. 우린 해냈다. 정말 긴 시간이 걸렸고,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다 보니 결국 파일럿이 되었다. 다시 한 번 더 확실해졌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낼 수 있다. 그리고 꿈은 이뤄진다.

이동진의 ‘비행학교 이야기’의 모든 과정을 영화로 만든 ‘아이 엠 어 파일럿(I AM A PILOT)’이 12월 4일 시사회를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와디즈’ 사이트 내 ‘파일럿’을 통해 예매할 수 있습니다.  <이동진 파일럿·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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