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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달리고 싶을수록 충분히 쉬어야 한다”

이승복 기사입력 2018. 11. 08   16:38 최종수정 2018. 11. 08   16:44

<41> 새로운 경험과 환경이 내 마음에 새로운 생각을 꽃피운다


타오 호수의 환상적인 경관에 놀라고
축제 즐기는 주민 보고 쉼 중요성 깨달아
군 공항구역 잘못 착륙 아찔한 상황도
포틀랜드 숲 속 오두막서 행복 ‘만끽’


우리가 머물렀던 포틀랜드 숲 속의 아름다운 오두막에서.



타오 호수에서의 여행은 환상적이었다. 산 안에 있는 호숫가 옆으로 거대한 숲이 형성돼 있었고, 그 숲 속 곳곳에 숙소인 오두막들이 예쁘게 지어져 있었다. 그동안 비행학교에 다닌다고 이런 여행은 상상조차 못 했었는데, 미국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어 깜짝 놀랐다.

타오 호수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동네의 모든 사람이 모여 밴드 공연을 보면서 춤을 추고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바쁘게 살아왔던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지쳐 있는 내 모습을 마주했다. 열심히 살아온 것이 잘못됐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하루하루를 돌아보면서 조금은 편안히 호흡하는 시간도 분명 필요했음을 느끼게 됐다. 멀리 달리고 싶은 만큼 충분히 쉬는 것도 같이해야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나는 여행을 와서야 그 깨달음을 얻었다.

더불어 대자연 속에서의 하루는 지쳐 있는 나를 그대로 위로해주는 듯했다. 미국에서 살면서 그 좋아하는 캠핑을 단 한 번 해봤다. 나는 왜 이렇게 달려야만 했던 것일까. 끝날 때가 될 무렵, 지난 1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충분히 그 순간순간을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랬기 때문일까. 이 여행이 너무나 소중하게 여겨졌다. 식사도 맛있게 천천히 했다. 마지막 시험 치기 한 달 전부터는 식사도 하루에 많아야 두 끼 정도밖에 하지 않았었다. 운동도 가벼운 달리기 정도 이상으로 하지 않았다. 그만큼 시험 합격이 절실했기에 모든 걸 내려놨던 것 같다. 그래서 지난날 내가 했던 행동들은 당시 최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도전하게 된다면, 이번에 느낀 것을 결코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타오 호수에서 편안한 저녁을 보냈다. 항상 지나간 밤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아쉬움이 더했다.

민간·군 합동 공항에 착륙한 뒤 군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다음 날 아침 브런치 가게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다시 공항으로 출발했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공항에는 대형 제트기부터 소형 제트기까지 다양한 비행기가 주기돼 있었다. 언젠가 나도 세스나가 아닌 제트 비행기를 몰고 다닐 날이 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비행기에 기름을 넣고, 이륙을 준비했다. 지대가 높아 상승률이 높지 않아, 조심스럽게 이륙했다. 거대한 호수를 가로질러 다시 산맥으로 이동했다. 9000~1만1000피트를 유지하면서 비행했다. 가까이 만년설이 있는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여름에도 스키를 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중간중간에 기름을 넣기 위해 착륙했는데, 군과 민간 항공기가 함께 있는 공항에 착륙허가를 받고 랜딩했다. 관제사의 지시에 따라 이동하는데, 일반 공항 구역과 군 공항 구역의 이름이 비슷해, 유도로를 따라가는 중 우리는 군 쪽으로 이동했다. 훈련 전투기 수십 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너무 멋진 광경에 소리를 질렀다. 미국은 군 공항에도 이렇게 주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군인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서 관제사가 말했던 곳까지 도착하는 순간, 뭔가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군 공항은 일반 항공기가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법으로도 명시돼 있기 때문에, 아무리 관제사가 허가를 해줬지만 본능적으로 여기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원래 시동을 꺼야 하는 곳을 지나 바로 눈 곁에 우리와 같은 일반 항공기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주기장에 도착하니 확실히 맘이 편했다. 왜 이렇게 지시했을까 싶었다.

시동을 끄고 내리는 순간 군 차량이 사이렌을 울리며 우리 뒤를 바짝 쫓아왔음을 알게 됐다. 무장한 군인들과 대장처럼 보이는 군인이 우리에게 곧바로 다가왔고, 영화에서나 보았던 자세로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우리는 아까 상황에 대해 군인들에게 설명해줬다. 공항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처음 온 사람에게는 헷갈릴 수 있는 공항이었다. 군인들은 신분증 검사부터 비행기 검사와 비행기 소유주에게까지 전화해서 우리에 대해 파악한 뒤, 한마디 했다. “절대로 군 공항에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위험할 수 있어요.” 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정말 멋진 여행을 하고 있네요. 앞으로도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 하세요.” 대장처럼 보였던, 인상이 좋은 군인은 마지막으로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간혹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났었던 것 같았다. 군사 공항인 경우는 봤지만, 이렇게 민간 공항과 분리해서 사용하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찔한 순간이긴 했지만, 파일럿이 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학교 책에서나 자체 훈련에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인 오리건주에 도착했다. 말로만 들었던 대자연이 그토록 아름답다던 포틀랜드였다. 우리는 우버를 타고 예약해둔 숲 속 오두막으로 이동했다. 지도를 찍고 갔지만, 산속이라 숙소 위치를 내비게이션이 정확하게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길을 못 찾는 것보다 미국인 운전자의 태도에 나는 깜짝 놀랐다. 원래 여행이라는 게 이런 일이 항상 벌어지는 것이라며, 이게 여행 아니겠냐고, 천천히 찾아보자고 오히려 우리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행 와서 여유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정말 많아지는 것 같았다. 숲길을 몇 바퀴 돌고 돌았지만, 결국 숙소를 찾지 못했다. 그때, 운전자가 근처 시골 맥주 가게 앞에 차를 대고는 주인에게 우리가 찾는 집에 관해 물어봤고, 놀랍게도 주인은 그 집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5분 만에 그 집을 찾아냈고, 우리는 운전자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우버는 이미 가격이 정해져 있으므로 시간이 더 가도 요금이 올라가지 않는다. 30분을 넘게 헤맸음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도착한 숙소는 환상적이었다. 숲 속의 3층 나무집에, 뒷마당에는 자쿠지가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천장 삼고, 따뜻한 자쿠지에서 피로를 풀었다.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내리고 그 지역의 가장 멋진 자연 속에서 매일매일을 보낸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이런 경험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커튼을 젖히는 순간 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행복이 내 몸에 녹아드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가까이에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그 곁으로 산책로도 있었다. 여행 와서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몇 개월간 공부만 하다가 왔기에 상대적으로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것일까 궁금했다.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영화도 찍고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멋진가. 분명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이었는데, 왜 행복보다는 치열함에 지쳤던 것일까. 모든 것은 끝이 나면 알 수 있다는 것을 막바지 여행을 하면서 또 깨닫게 됐다.

포틀랜드 시내를 둘러보면서, 캘리포니아가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했던 것이 깨졌다. 평화가 느껴지는 이 도시와 사람들로 인해 몸과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게 됐다. 우리는 다시 비행기를 몰고 시애틀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했다.
사진=필자 제공
<이동진 파일럿/여행가>  


이승복 기자 < yhs920@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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