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대한민국 군함 이야기

APD급 고속수송함 도입… 5인치 함포 시대 열다

윤병노

입력 2018. 11. 07   16:12
업데이트 2018. 11. 1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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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APD급 고속수상함<上>

호위구축함 경북함의 기동 모습. 사진=해군본부 제공
호위구축함 경북함의 기동 모습. 사진=해군본부 제공
 

아산함과 웅포함 재취역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호기대의 경례를 받고 있다. 사진=해군본부 제공
아산함과 웅포함 재취역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호기대의 경례를 받고 있다. 사진=해군본부 제공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은 대서양 전선에서 승기를 잡자 대량 운용하던 DE(Destroyer Escort)급 호위구축함을 고속수송함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한 대잠 전력의 소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미 해군은 루데로(Rudderow)급 50여 척과 버클리(Buckley)급 50여 척을 APD(Auxiliary Personnel Destroyer)급 고속수송함으로 개조했다.


美 해군 DE급 개조한 APD급 6척 인수

루데로·버클리급 호위구축함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왕복하는 보급선단을 호위하기 위해 1943~1945년 사이 건조됐다. 루데로급은 70여 척, 버클리급은 100여 척이 건조됐다.
그러나 독일 잠수함의 위협이 감소하면서 다량의 호위구축함을 보유할 필요가 없어졌다. 함정이 남아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미 해군은 호위구축함을 개조해 인원·장비 수송 작전에 활용했다. 이 함정들이 APD급 고속수송함이다.

미 해군은 APD급 고속수송함을 상륙전 소요가 많은 태평양 전선에 투입했다. 이들 함정은 상륙작전 때 주력보다 먼저 적진에 침투하는 정찰대·선견대를 수송하는 등 기존의 상륙함이 수행할 수 없었던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우리 해군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6척의 APD급 고속수송함을 양도받아 운영했다. 네 척은 루데로급, 두 척은 버클리급이었다.

함명으로는 경남(APD-81)·아산(APD-82)·웅포(APD-83)·경북(APD-85)·전남(APD-86)·제주(APD-87)가 부여됐다. 경남함·아산함·웅포함·제주함은 루데로급, 경북함·전남함은 버클리급이다.


기존 3인치 함포서 최초로 5인치 포 보유

고속수송함에는 5인치 함포가 장착돼 화력이 막강했다. 한국 해군의 기존 함정은 3인치 함포가 주포였다. APD급 고속수송함 도입이 한국 해군의 5인치 함포 시대를 연 것이다.

경남함은 1944년 미시간주 베이 시티(Bay City) 조선소에서 진수돼 카발라로(Cavallaro)함으로 명명됐다. 건조 직후 고속수송함으로 개조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태평양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1946년 임무가 해제돼 대기상태로 전환됐고, 1959년 10월 15일 한국 해군에 무상으로 대여됐다.

아산함과 웅포함은 1944년 위스콘신주 힝햄(Hingham) 조선소에서 진수됐다. 해리 콜(Harry L. Corl), 줄리어스 레이븐(Julius A. Raven)을 함명으로 부여받은 뒤 고속수송함으로 개조됐고, 1966년 6월 1일 한국 해군에 양도됐다.

경북함은 1944년 웨스트버지니아주 찰스턴(Charleston) 조선소에서 진수돼 케파트(Kephart)함으로 명명됐다. 고속수송함으로 개조된 후 유럽·태평양 전선에서 활약하다 1946년 임무가 해제됐으며, 1967년 8월 16일 한국 해군에 양도됐다.

전남함과 제주함도 1943년 찰스턴 조선소에서 진수됐다. 전남함은 1944년 헤이터(Hayter)함으로 명명돼 임무를 시작했다. 1945년 필라델피아에 있는 조선소에서 고속수송함으로 개조됐고, 한국 해군에는 1967년 8월 16일 양도됐다.

윌리엄 하비(William M. Haobby)로 함명을 부여받은 제주함은 고속수송함으로 개조 직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됐다. 전남함과 마찬가지로 1967년 8월 16일 한국 해군에 양도됐다.


함명수 총장 적극적 요구로 2척 추가 도입

고속수송함은 6·25전쟁 직후 수립한 우리 해군의 증강계획에 의해 도입됐다. 특히 아산함과 웅포함의 도입에는 7대 해군참모총장인 함명수(중장 예편·2016년 작고) 제독의 역할이 컸다.

함 총장은 1966년 1월 6일 미 해군참모총장 맥도널드 제독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두 해군참모총장은 양국 해군의 현안을 논의했다. 그 자리에서 함 총장은 전임 해군참모총장들이 요구했던 구축함과 대잠 항공기의 양도를 요청했다. 그뿐만 아니라 함 총장은 잠수함을 보유하고 싶다는 뜻을 미 해군참모총장에게 전달했다. 맥도널드 총장은 국회 동의 사항이라고 난색을 표한 뒤 다음 기회에 논의하자고 했다.

그러나 함 총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대안으로 고속수송함 2척과 대간첩작전을 위한 해안초소 전파탐지기 지원을 요청했다. 맥도널드 총장은 즉석에서 함 총장이 요구한 내용을 들어주기로 약속했다.

함 총장은 그날 오후 7시 맥도널드 총장의 배려로 주미 한국 특파원단 회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한국 해군은 기본 전력증강 계획 이외에 두 척의 고속수송함을 추가로 보유하게 됐다.

아산함과 웅포함을 도입하고 1년 뒤 세 척의 고속수송함이 또다시 태평양을 건넜다. 1967년 8월 16일 우리 해군은 진해 군항에서 명명식을 개최하고 경북·전남·제주를 함명으로 부여했다. 이 함정들은 3개월여의 수리 기간을 거쳐 11월부터 해양 수호 임무에 투입됐다.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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