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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역사… 120개 대학 통해 20여만 명 장교 배출

기사입력 2018. 10. 17   17:24

<38> 대한민국 학생군사교육단과 ‘ROTC’ 장교들

1963년 2월 육군 ROTC 1기 임관식.



1959년 해군서 한국해양대에 첫 도입
육군 1961년, 공군 1971년 잇따라 운영
육·해·공군 및 해병대 장교 양성하는
국내 최대 종합사관학교로 발돋움

한 해 우리나라 소위 임관의 80% 차지
2010년 여군 학군단도 탄생
ROTC 출신 4성 장군 6명 배출
김진호·박한기 대장 합참의장까지 올라


1974년 2월 당시 공군 ROTC 임관식.


대한민국 학생군사교육단(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은 우리나라 육·해·공군 및 해병대의 모든 장교를 양성하는 최대의 종합사관학교다. 일반적으로 학군(學軍)·학군단(學軍團)과 함께 ROTC라는 용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 ROTC 제도는 대학 재학생 중에서 우수자를 선발해 2년간 군사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전공 학문 완성과 소정의 군사지휘 실무능력을 갖춘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우수한 장교를 양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998년 11월 16일 김진호(왼쪽) 합참의장과 머리스 바리 캐나다 국방총장이 전쟁기념관 광장에서 국방부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저비용, 양질의 장교 양성 체제…군에서 중추적 역할

ROTC가 제일 먼저 시작된 곳은 육군이 아닌 해군이었다. 육·해·공군사관학교 중 해군사관학교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출범했듯이 ROTC도 해군에서 먼저 시작됐다. 그때가 1959년이었다. 그 뒤를 이어 육군에서도 1961년 ROTC 제도를 도입해 운영했다. 공군은 이보다 훨씬 늦은 1971년에야 시작했다. 그렇게 볼 때 우리나라 ROTC 출신 장교들이 국방을 맡은 지도 이제 60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를 통해 우리 군은 매우 적은 비용을 들여 양질의 장교를 양성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게 됐다. 나아가 ROTC 장교들이 군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해군에서 가장 먼저 ROTC 제도를 도입한 학교는 부산에 있는 한국해양대학교였다. 1945년 진해고등상선학교로 출발한 한국해양대학교는 1956년 제8대 학장으로 취임한 신성모(申性模) 때인 1959년 3월 11일, 최초로 ROTC 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했다. 이른바 해군부산군사교육단, 즉 해군 제1001학생군사교육단을 설치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ROTC 제도 도입이었다. 신성모 학장은 일제강점기 때 중국 난징(南京)해양대학과 영국 런던항해대학을 졸업하고 일등 항해사 자격을 취득한 뒤 영국 상선의 선장을 지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내무부 장관을 거쳐 국방부 장관과 국무총리 서리를 역임한 역량 있는 고위 관료(官僚)이자 바다를 잘 아는 해사인(海事人)이었다. 한국해양대학교에서 출범한 해군 ROTC는 부경대학교·목포해양대학교·제주대학교로 확대되었고, 그 과정에서 해군 장교뿐만 아니라 해병대 장교로까지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해병대 학군단이 설치된 곳은 한국해양대학교와 제주대학교다.

육군에서는 해군보다 2년 늦은 1961년에 ROTC 제도를 도입해 채택했다. 하지만 육군에서도 그보다 일찍 미국 ROTC 제도에 눈뜨고 우리나라 육군에 도입하려고 했던 선각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대한민국 최연소 육군참모총장과 최초의 대장(大將) 계급장을 단 백선엽(白善燁) 장군이었다. 백 장군은 1959년 두 번째 육군참모총장을 마치고 제4대 합동참모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합참의장은 전역을 앞두고 군 원로가 가는 비교적 한가한 자리였다. 그때 백 장군은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우리 군에 도움을 줄 일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육군에 ROTC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우리나라 육군의 초급장교가 절대 부족했던 시기였다. 특히 소대장 요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총장을 하면서 그것을 잘 알고 있던 백 장군은 그 해결책으로 미국의 ROTC 제도를 육군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1960년 4·19혁명 이후 백 장군이 합참의장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1960년 5월에 전역하게 됨에 따라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군문을 나서게 됐다. 이후 백 장군이 결정했던 ROTC 제도는 1961년 드디어 도입됐고, 육군의 ROTC 1기생들이 1963년 소위로 임관하면서 결실을 보게 됐다.

공군에 ROTC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71년이었다. 해군이나 육군보다 10년 이상 늦었다. 최초 공군 ROTC 제도를 채택한 학교는 한국항공대학이었다. 공군에서는 공군사관학교 출신만으로는 공군 장교를 모두 충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도입된 것이 ROTC 제도였다. 이후 공군 학군단은 한서대학교와 한국교통대학교로 확대돼 운영되고 있다. 뒤늦게 공군 학군단의 출범으로 우리나라는 비로소 육·해·공군 및 해병대의 ROTC 장교들을 양성하는 체제를 갖추게 됐다. 거기다 2010년부터는 여군 학군단도 설치하여 운영하게 됐다. 이에 따라 ROTC는 각군 사관학교를 모두 합쳐 놓은 것과 같은 종합사관학교의 성격을 띠게 됐다.


지난 10월 11일 국방부 대연병장에서 열린 합참의장 취임식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박한기 신임 합참의장에게 부대기를 수여하고 있다.    사진=국방일보 DB



DMZ 담당하는 전방 소대장의 70% 차지

1959년 한국해양대학교에서 ROTC 제도를 도입한 이래 이제 60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 기간에 ROTC 제도는 우리나라 국방에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해마다 4000여 명을 웃도는 초급장교 배출은 그 규모만도 어마어마하다. 한 해 우리나라 소위 임관의 80%를 차지하는 놀라운 수치다. 거기다 비무장지대(DMZ)를 담당하는 전방 소대장의 70%를 차지한다고 하니 대한민국 국토방위의 대부분을 ROTC 출신 장교들이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ROTC는 2018년 현재 120개 대학교를 통해 20여만 명의 장교를 배출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방 역사상 최다 장교를 배출한 장교단(將校團)을 형성하게 됐다. 이는 ROTC가 국내 최대의 장교 양성기관으로서뿐만 아니라 육·해·공군 및 해병대 그리고 여군 장교까지 배출하는 ‘대한민국 종합사관학교’의 위상을 갖추게 됐음을 알려주는 증좌(證左)다.

그 과정에서 ROTC 장교들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그동안 4성 장군인 대장까지 오른 사람이 6명(박세환·김진호·홍순호·조재토·이철휘·박한기)이나 되고, 그중 대한민국군 서열 1위인 합동참모의장에 오른 장군은 2기생 김진호 대장과 21기생 박한기 대장이다. 김진호 장군은 현재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으로 여전히 국가안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박한기 대장은 제2작전사령관에 이어 2018년 10월 제41대 합참의장으로 임명돼 변화된 안보환경에서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60년의 세월 동안 ROTC 출신 장교들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때는 국가안보를 위해서 호국의 간성으로서 최선을 다했고, 전역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교육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사회지도층으로서 또 애국시민·민주시민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런 점에서 최초 초급장교 보충과 우수장교 유치를 위해 도입됐던 ROTC 제도는 국방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볼 때 기대 이상의 대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런 ROTC 출신 장교들에게 경의와 함께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남정옥 전 군사편찬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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