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미 육군 개혁이야기

장갑차 개발 예산 잡아라…美 육군, 악수(惡手)를 두다

입력 2018. 09. 3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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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개혁이야기 <4> ‘위원회’와 ‘TF’로 혁신을 할 수 없는 이유


- ‘브래들리 장갑차’의 사례 (下)


새 장갑차 개발안 예산 승인 못받아 크라이저TF 구성 정치적으로 해결
공군장교 “방호력 문제 있다” 주장 ... M2·M3 실험 통과 못해 새로 설계


라킨 TF와 FMC가 내놓은 ‘XM2/XM3 분리 개발(안)’은 미 의회의 예산 승인을 받지 못했다. 논란이 돼 왔던 요구성능, 운용환경 때문이 아니었다. ‘장갑의 보호하에 보병을 수송한다는 애초 운용 목적과 다른 것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1977년 의회가 감사에 나섰던 것이다. 


미 회계감사국(GAO)은 ‘FMC의 XM2/XM3 모델은 무거운 중량으로 인해 도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설계 재검토를 권고했다. 감사국의 지적은 정확한 것이었다. 이 무기 저 무기에 토우(TOW)까지 달았으니 당연히 무거울 수밖에.

장갑차 개발 예산이 통째로 날아가지 않으려면 뭔가 수를 내야 했다. 다급해진 육군은 악수를 두었다. 또 TF를 만든 것이다. TF장으로 임명된 것은 전력 부서 근무와 독일 파견 경험이 있는 팻 크라이저(Pat William Crizer) 장군이었다.

크라이저 장군은 군사교리나 무기체계의 ‘스페셜리스트’가 아니었다. 관리와 통솔에 능숙한 이른바 ‘제네럴리스트’에 가까웠다. ‘크라이저 TF(Crizer TF)’는 관료식 타협안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이 다음과 같았다.

“이제 와서 사업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며, 무게의 문제는 장갑의 두께와 면적, 탄약 적재량 등을 조정하면 해결할 수 있다.”

그야말로 정치적인 해결책이었다. 이런 논리에 익숙한 의회는 1979년 신형 장갑차 개발 예산을 승인했다. XM2와 XM3는 ‘시험(X)’ 딱지를 떼고 1980년부터 ‘M2/M3 브래들리 전투 장갑차(BFV; Bradley Fighting Vehicle)’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과연 이대로 브래들리 장갑차가 배치돼도 문제가 없었을까?

“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공군 장교들이었다. 국방부 연구개발 검증 부서의 존 보이드(John Boyd) 예비역 공군대령(우리가 알고 있는 ‘OODA 루프’ 개념의 개발자)과 제임스 버튼(James G. Burton) 공군대령이 “브래들리 장갑차의 방호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손들고 나선 것이다.
 

공군 교리발전에 크게 기여한 존 보이드 예비역 대령.


무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장갑의 두께를 줄인 것은 크라이저 TF의 치명적 실수였다. 버튼 대령은 “얇은 장갑을 뚫고 들어온 적탄이 격벽 없이 적재된 탄약에 맞으면 재앙이 벌어진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당시 육군 관계자들은 어떻게든 브래들리 장갑차를 빨리 양산 단계로 넘기고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버튼 대령은 ‘기관총탄에 뚫리는 장갑차’를 용납할 수 없었죠. 육군의 별 14개와 공군대령이 정면으로 맞붙은 겁니다.” 존 보이드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이 일은 나중에 ‘브래들리 게이트’로 불릴 만큼 큰 사건으로 번졌다. 전국 방송과 신문에서 육군을 비판했다. 버튼 대령은 만 4년 동안 승인 도장을 찍지 않고 버텼다. 1986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국방부를 떠났고 오지인 알래스카로 발령 난 끝에 전역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버튼 대령은 의회에 나가 “지금의 브래들리 장갑차로는 작전을 할 수 없다”고 증언했다. “육군의 조작된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에 장병의 생명을 맡길 수는 없다. 실전 상황을 상정한 무작위 실사격으로 방호력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의회 국방위는 버튼 대령이 제안한 방식으로 실사격 실험을 하지 않으면 관련 예산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육군에 통보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M2, M3 모두 실험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FMC는 현수장치, 장갑, 탄약 보관소 등을 모두 재설계했다. 그리하여 새로 생산되는 브래들리 장갑차는 장병의 생존과 직결되는 방호력이 높아졌고, 피탄 시 연쇄 사고율도 많이 낮아졌다(물론 최초 개발 목적에 맞는 ‘가볍고 빠른 보병 수송용 장갑차’와는 여전히 동떨어진 것이었지만 말이다).

미 육군이 발간한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 1991) 보고서’는 브래들리 장갑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브래들리 장갑차는 모든 작전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공격할 때는 기동과 화력의 선봉에 섰다. 방어할 때는 진지와 화점의 역할을 겸했다. 브래들리 장갑차는 ‘M1 에이브럼스 전차’보다 이라크 차량을 많이 파괴했고, 이라크군의 직간접 화력으로부터 보병을 잘 보호했다.”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각주가 달려 있는데, 아마도 브래들리 장갑차 개발의 이면을 잘 알고 있는 이가 썼을 것이다.

“브래들리 장갑차 실사격 실험 덕택에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많은 장병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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