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법정극, 드라마의 새 돌파구 : <미스 함무라비>의 성취
최근 한국 드라마 중 가장 뜨거운 장르는 법정드라마다. 월화드라마였던 <검법남녀>(MBC) 등 6월에는 무려 4개의 법정드라마가 동시 편성되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또 오는 25일에 <친애하는 판사님께>(SBS)가 찾아오고, 8월 이후에는 <플레이어>(OCN)가 기다리고 있다. 법정드라마의 열기는 이직 식지 않았다.
이런 법정드라마의 인기는 우리에게는 이례적인 일이지만 사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상식과도 같았다. 법정이란 극적 공간에서 연출되는 선명한 갈등과 풍부한 사건, 압축적인 상황 전개와 반전의 묘미는 작가들의 상상력을 극대화하기 마련이다. 시청자들 역시 감정이입과 추리를 통해서 참여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으니, 법정드라마는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선 꽤 오랫동안 법정의 묘사가 금기처럼 여겨졌다. 2008년 ‘신의 저울’이 방영되면서 비로소 법정드라마라고 할 만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과거와 달리 투명해진 사법문화
일단 과거의 한국 법정이 드라마틱하지 않았다는 데 가장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진 세상이다. 공개 재판은 확고한 원칙이 됐고, 국민참여재판도 활발히 시행되고 있으며, 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도 폭증해서 소송 만능 사회란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사법 서비스의 대중화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들이 많아졌고, 그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대형 사건들을 날카로운 법 해석으로 풀어주며 국민으로부터 주목받았다. 법정에 대한 호기심과 사법정의에 대한 욕구를 갖게 만들었다. 그렇게 법정드라마가 사랑받을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정작 법조인들의 고민을 정확히 그려내고 실제 현실 법정을 고스란히 재현하면서 함께 고민하는 법정드라마는 찾기 힘들었다. 냉정히 말해서 <미스 함무라비> 이전의 드라마들은 <무법 변호사>처럼 ‘법정 판타지’이거나 ‘법정 낭만극’, ‘법정 멜로’에서 그쳤다.
하지만 <미스 함무라비>는 사상 유례없는 사법 거래의 민낯이 드러난 자리에서 묵묵히 판사들의 고군분투를 그려냄으로써 ‘생활밀착형 법정드라마’라는 평가를 이끌어냈고,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는 법정드라마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면서 스스로 전설이 됐다.
현직판사 작가의 현실감 있는 에피소드
<미스 함무라비>는 현직 판사가 극본을 썼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판사들의 세상을 촘촘하고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판사들의 자잘한 일상 업무에서부터 법원의 다양한 직업군과 판사들 사이의 인간관계나 위계질서, 판결에 관련된 사람들의 에피소드까지 꼼꼼히 풀어 놓는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부지런해야 그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드라마였다.
그러나 꾸준히 일관성 있게 쌓아 나간 박차오름, 임바른, 정보왕, 이도연, 한세상 등의 캐릭터들은 뒤로 갈수록 큰 힘을 발휘했고, 각 판결 에피소드와 함께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설정은 판사라는 직업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였다.
또한 성차별을 비롯한 거의 모든 한국 사회의 모순을 극적 재료로 가져와서 대립되는 입장 차이를 충분히 보여주고는,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결론을 찾아가는 내공은 단연 돋보였다. 아마도 작가의 오랜 판사 경력에서 쌓인 내공이었으리라.
법조인 꿈꾼다면 시청 필수
<미스 함무라비>가 이룬 성취는 이 비루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끝까지 모색하면서 극 중 인물들의 선택으로 일정한 제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촌스럽다고 여겨질 수도 있고, 자칫 꼰대질로 느껴질 수도 있는 이 낡았지만 원칙적인 극작술은, 사법 거래 파동의 충격 속에 배신감에 시달리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선사했다.
<미스 함무라비>는 세칭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에게 국민을 대신해서 나직이 묻는다. ‘당신에게 국민이 준 ‘권리’를 누구를 위해 쓰고 있습니까? 특히 질문할 권리와 들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습니까?’
어디에도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어디에나 있는 우리의 영웅 이야기, <미스 함무라비>는 그 제목의 전근대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현대 법치의 근본 원칙을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사법부의 독립과 법원의 역할을 재규정한다.
영화 <더 포스트>가 기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줘야 할 작품이라면, <미스 함무라비>는 법조인의 꿈을 품고서 로스쿨에 입학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할 드라마이자 교재가 아닐까.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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