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함정 군함이야기

AO급 유류지원함

윤병노

입력 2018. 07. 04   17:29
업데이트 2018. 11. 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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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구룡함이 최초...천지함은 수에즈 첫 통과 '기록'


한국 해군 함정 최초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O-2 천지함이 항해하는 모습. 사진=해군본부 제공
한국 해군 함정 최초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O-2 천지함이 항해하는 모습. 사진=해군본부 제공


조선해안경비대 시절 미국 YO-65급 유류 바지선 1척 인수 구룡함 명명
유조함 하셀 인수 천지함 명명, 5개월간 태극기 달고 유럽 항로 항해 기록
‘부전함’ 54년 해군사관학교 첫 순항훈련 4년 연속 참가 1만7771마일 항해

1946년 유류지원함 운용 역사 시작


전투함이 지속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해상 보급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 특히 유류는 장기간 해상작전을 수행하는 데 핵심이다. 우리 해군은 전투함의 해상작전 수행 능력 보장을 위해 다양한 유류지원함을 운용해 왔다.

조선해안경비대 시절인 1946년에는 미국으로부터 YO(Fuel Oil Barge)급 1척을 인수하고, 1953년에는 네덜란드에서 유조선 2척을 구매했다. 1955년에는 YO급 1척을 추가 임차했다. 1971년에는 일본 상선 1척을 구매·개조해 유조함으로 운용했으며, 1982년에는 미국에서 AOG(Gasoline tanker)급 2척을 임차해 사용했다.

1990년대에는 기존 함정이 노후화되고 다목적 지원 능력이 필요해짐에 따라 3척의 AOE(Auxiliary Logistic Support Ship)급 함정을 국내에서 건조·도입했다. 유류지원함은 초창기 YO급과 O급으로 불리다 AO급으로 함형을 변경했다. 1978년에는 선체 번호를 50번대로 바꿨다.

자체 건조한 군수지원함이 등장하기 이전 1980년대까지 우리 해군의 유류지원함 운용 역사는 ▲미 해군 YO급과 네덜란드에서 구매한 유조선을 운용하던 초창기 ▲미 해군 AOG급과 일본에서 구매한 상선을 운용하던 확장기로 구분된다.

한국 해군 최초의 유류지원함인 YO-1 구룡함. 사진=해군본부 제공
한국 해군 최초의 유류지원함인 YO-1 구룡함. 사진=해군본부 제공

파이프 계통 많아 운용에 전문지식 필요

해군의 전신인 조선해안경비대는 1946년 12월 4일 미 해군의 YO-65급 유류 바지선 1척(USS YO-118)을 인수해 구룡함(YO-1)으로 명명했다. 이 함정은 초창기 조선해안경비대 유일의 유류지원함이었다. YO-65급 유류 바지선은 1946년 대부분 퇴역했지만 성능이 우수해 상당수가 민간에 매각됐고, 일부는 2000년대 초반까지 운용됐다.

구룡함은 해군이 함정 번호 명칭을 제정함에 따라 1948년 8월 30일 선체 번호를 106으로 개정했다.

조선해안경비대는 창설 초기 함정 운용 경험이 적어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유류지원함은 파이프 계통이 많아 운용하는 데 전문지식이 필요했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도 있다. 도입 당시 구룡함은 복원력을 유지하기 위해 물을 가득 싣고 입항했다. 물을 배출해 기름을 채우면 유조정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미 해안경비대 군사고문관들도 물을 밖으로 퍼내는 방법을 몰랐다.

미국에서 전문가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해군사관학교 교관과 구룡함 부장을 겸직하던 이성호(중장 예편·5대 해군참모총장) 중위가 설계 도면을 찾아내 파이프 시스템을 연구했다. 며칠 밤을 새워가며 밸브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 결과 그는 작동원리를 파악했다.

이성호 중위는 기관장에게 디젤엔진으로 된 펌프 가동을 명령했고, 탱크 안에 있던 물을 모두 배출했다. 다음 날 미 군사고문관들이 달려와 ‘도대체 누가 물을 퍼내는 데 성공했느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유일무이’ 구룡함 6·25전쟁서 큰 업적

정상 작동에 들어간 구룡함은 부산 영도의 오일터미널로 이동해 유류를 채운 뒤 진해로 귀항했다. 이후부터 구룡함은 수많은 작전에 투입돼 유류 공급 임무를 수행했다.

6·25전쟁에서도 ‘유일무이’의 유류지원함으로 다대한 업적을 남겼다. 당시 한국 해군 함정과 유엔군 함정은 부산에 있는 제2군수사령부 오일터미널에서 유류를 공급받았다. 구룡함은 이 터미널에서 유류를 적재한 뒤 각 함정에 보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룡함은 1950년 7월 28일 서해에서 미 공군 조종사 2명을 구출해 31일 영국 구축함(DD-34, Cockade)에 인계했다. 1952년 5월 11~12일에는 거제도 봉쇄 작전에 참가했으며, 같은 해 12월 8일에는 서해안 초도와 석도 근해에서 경비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1955년 임차한 화천함은 미 해군의 유류바지선 중 하나인 USS Derrick YO-59정이었다. 구룡함보다 크게 설계된 이 함정은 백연함으로 불리다 1955년 12월 6일 화천함으로, 1956년 AO로 함형을 바꿨다. 1975년 한국 해군이 완전히 인수했으며, 1978년 AO-52로 선체 번호를 변경했다.

한국 해군 함정 최초 수에즈 운하 통과

우리 해군은 1953년 6월 30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유조함 1척을 구매했다. 이 함정은 1951년 노르웨이의 베르겐(Bergen) 조선소가 네덜란드로부터 주문받아 건조한 유조함 하셀(Hasseel)이었다.

해군 인수요원들은 함정 인수 후 로테르담을 출발해 도버 해협(Strait of Dover)과 지브롤터 해협(Strait of Gibraltar), 수에즈 운하(Suez Canal)를 통과했다. 이어 인도양을 건너 스리랑카의 콜롬보(Colombo)에 입항했다. 그리고 1953년 9월 14일 진해에 입항했다. 이 유조함은 O-2 천지함이었다.

천지함은 한국 해군 함정 최초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으며, 5개월 보름 동안 태극기를 게양한 채 유럽 항로를 항해하는 기록을 세웠다. 천지함은 1978년 6월 1일 AO-51로 번호를 개정했다.

해군은 1953년 8월 31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O-3(부전)함을 추가 인수했다. 천지함 인수 경험이 있던 해군 인수요원들은 부전함을 타고 같은 항로로 항해해 진해로 돌아왔다.

부전함은 해군사관학교의 첫 순항훈련인 1954년부터 연속으로 4회 이 훈련에 참가했다. 이 기간 부전함은 1만7771마일을 항해해 필리핀·대만·홍콩·태국·베트남을 방문했다. 1993년 AOE함이 참가하기 전까지 유류지원함의 순항훈련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부전함은 1971년 6월 28일 서해 흑도 근해에서 좌초해 퇴역했다.
글 = 윤병노 기자

■ 기사 원문 
    국방일보 ‘대한민국 군함이야기’, 윤병노 기자, 2018년 7월 5일자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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