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If’(이프). 흔히 역사를 논하며 ‘If’를 거론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21세기 현대사회에서 곰곰이 또 다른 발상을 해보면 ‘꼭 그래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든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 ‘If’를 초대하면 무한한 상상력이 발동한다. 상상은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하고, 이는 곧 창의력과 창작력으로 옮아가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역사에 초대된 ‘If’는 다양한 상상 속에서 다양하고 기발한 콘텐츠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1623년 3월 13일은 조선의 인조가 반정을 통해 왕좌에 오른 날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조는 정묘년과 병자년 두 차례 외세 침략이라는 국난에 직면한다. 그는 오직 종묘사직을 위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피란길에 나섰다. 선왕인 광해군의 실리외교에 반해 성리학적 기본질서에만 함몰된 대명 일변도 사대외교에만 집착한다. 그 결과 청나라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틀을 읽지 못하고, 적국에 항복한 치욕의 군왕으로 역사에 남았다. 만약 인조반정이 없었다면….
이번에는 전쟁 이후 청에 볼모로 갔다 돌아온 그의 아들 소현세자의 죽음에 관한 ‘만약’을 발동해 보자. 그가 의문사를 당하지 않고, 오롯이 왕위를 이어받았다면…. 소현세자는 볼모 생활 동안 새로운 세상을 본다. 성리학만으로는 건강한 조선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서양인은 물론 적국의 사람들과도 교류하고, 배우며,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더 넓은 세상을 품었다. 이런 왕세자를 조국의 아비와 대신들은 오직 불온한 사상에 물든 이단아로만 치부했다. 그를 사학(邪學)에 빠져있는 위험한 인물이라 매도했고, 이 선각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소현세자의 등극이라는 ‘If’를 그려 보면, 성리학 일변도의 교조적이고 낡은 이데올로기에만 사로잡힌 조선이 아닌, 좀 더 다른 조선의 모습이 보이진 않을까.
그 바탕 위에 영·정조 대의 르네상스는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와 부국강병의 기틀이 마련됐을 것이다. 또한, 정조의 손자 효명세자의 절명 역시 역사의 If를 고개 들게 한다. 할아버지를 꼭 빼닮았다며, 개혁 군주 1순위 후보로 기대를 받던 효명세자. 그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그로 인해 실행되지 못한 국가 개혁은 18세기 이후 특정 가문과 정치집단에 의해 국가 권력이 독점되고, 나랏일이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닌, 일개 가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도정치로 흐른다. 조선 후기 역사에 ‘If’라는 상상의 나래를 아쉬움 속에 펼치다 보면, 일본의 메이지유신보다 앞선, 근대화의 산물을 우리가 선점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씁쓸함이 문지방을 넘어선다.
역사에 ‘If’는 부질없는 짓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보다 앞서가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지녀야 할 우리 청춘들에게까지 역사와 ‘If’를 철저히 떼어 놓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역사와 ‘If’의 동거를 잘못된 접근방식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청춘들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 실현을 위한 또 다른 하나의 배경이 될 수 있다고, 이해해 주는 어른들의 마음도 필요할 듯하다.
역사와 ‘If’(이프). 흔히 역사를 논하며 ‘If’를 거론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21세기 현대사회에서 곰곰이 또 다른 발상을 해보면 ‘꼭 그래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든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 ‘If’를 초대하면 무한한 상상력이 발동한다. 상상은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하고, 이는 곧 창의력과 창작력으로 옮아가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역사에 초대된 ‘If’는 다양한 상상 속에서 다양하고 기발한 콘텐츠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1623년 3월 13일은 조선의 인조가 반정을 통해 왕좌에 오른 날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조는 정묘년과 병자년 두 차례 외세 침략이라는 국난에 직면한다. 그는 오직 종묘사직을 위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피란길에 나섰다. 선왕인 광해군의 실리외교에 반해 성리학적 기본질서에만 함몰된 대명 일변도 사대외교에만 집착한다. 그 결과 청나라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틀을 읽지 못하고, 적국에 항복한 치욕의 군왕으로 역사에 남았다. 만약 인조반정이 없었다면….
이번에는 전쟁 이후 청에 볼모로 갔다 돌아온 그의 아들 소현세자의 죽음에 관한 ‘만약’을 발동해 보자. 그가 의문사를 당하지 않고, 오롯이 왕위를 이어받았다면…. 소현세자는 볼모 생활 동안 새로운 세상을 본다. 성리학만으로는 건강한 조선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서양인은 물론 적국의 사람들과도 교류하고, 배우며,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더 넓은 세상을 품었다. 이런 왕세자를 조국의 아비와 대신들은 오직 불온한 사상에 물든 이단아로만 치부했다. 그를 사학(邪學)에 빠져있는 위험한 인물이라 매도했고, 이 선각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소현세자의 등극이라는 ‘If’를 그려 보면, 성리학 일변도의 교조적이고 낡은 이데올로기에만 사로잡힌 조선이 아닌, 좀 더 다른 조선의 모습이 보이진 않을까.
그 바탕 위에 영·정조 대의 르네상스는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와 부국강병의 기틀이 마련됐을 것이다. 또한, 정조의 손자 효명세자의 절명 역시 역사의 If를 고개 들게 한다. 할아버지를 꼭 빼닮았다며, 개혁 군주 1순위 후보로 기대를 받던 효명세자. 그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그로 인해 실행되지 못한 국가 개혁은 18세기 이후 특정 가문과 정치집단에 의해 국가 권력이 독점되고, 나랏일이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닌, 일개 가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도정치로 흐른다. 조선 후기 역사에 ‘If’라는 상상의 나래를 아쉬움 속에 펼치다 보면, 일본의 메이지유신보다 앞선, 근대화의 산물을 우리가 선점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씁쓸함이 문지방을 넘어선다.
역사에 ‘If’는 부질없는 짓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보다 앞서가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지녀야 할 우리 청춘들에게까지 역사와 ‘If’를 철저히 떼어 놓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역사와 ‘If’의 동거를 잘못된 접근방식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청춘들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 실현을 위한 또 다른 하나의 배경이 될 수 있다고, 이해해 주는 어른들의 마음도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