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손자가 전한 할아버지 유품
노르웨이 출신 초대 유엔사무총장 트리그브 할브란 리
북의 침략으로 전쟁 발발하자
‘국제평화 파괴 행위’로 간주
유엔군 파견 결정 이끌어 내
자국 군대 보낼 수 없게 되자
야전병원·위생병 파견 요청
지난 11일 주한노르웨이 대사관은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해 광화문광장 내에 ‘문화체험존’을 운영했다. 노르웨이 하면 연어, 바이킹, 동계 스포츠 강국 등의 수식어가 떠오른다. 노르웨이와 한국,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두 나라의 인연은 각별하다. 노르웨이 출신의 트리그브 할브란 리(Trygve Halvdan Lie) 초대 유엔사무총장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소련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남침을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로 단정 짓고 사상 첫 유엔군 파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은 초대 유엔사무총장인 트리그브 할브란 리 씨의 유품에 관한 이야기다.
그의 외손자 라근발트 브라츠(Ragnvald Bratz) 씨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할아버지의 담뱃갑, 티스푼, 촛대, 저서, 사진첩 등 소장품 30여 점을 전쟁기념관에 일괄 기증했다. 2010년 동아일보와 함께 유물 기증 캠페인을 진행했을 때 한 인터뷰에서 브라츠 씨는 “장녀인 어머니가 큰아들인 내게 준 이 유물들은 한국인의 관심 속에 남아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 기증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트리그브 총장은 1896년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10대부터 돈벌이를 시작했고 첫 일터가 노르웨이 노동당이었다. 이후 학업과 정치 활동을 병행하며 40대 중반까지 비서, 국회의원, 법무부 장관 등의 요직을 거쳤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노르웨이 망명정부의 외교부 장관으로 활약했으며, 이후 초대 유엔사무총장 자리까지 올랐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총장은 북한의 침략을 ‘국제 평화의 파괴 행위’로 간주해 유엔군 파병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21개국이 유엔군의 깃발 아래 대한민국을 돕게 됐다. 특히 노르웨이의 경우, 유럽 내 군사적 분쟁 때문에 군대를 보낼 수 없어 야전병원 시설과 위생병을 파견했고 이때 노르웨이 출신인 트리그브 총장의 요청이 큰 역할을 했다.
트리그브 총장의 유품은 기념관 내 6·25전쟁실Ⅲ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하늘색 바탕 위에 세계지도를 감싸고 있는 올리브 가지, ‘유엔기’를 마주하게 된다. 트리그브 총장의 유품들이 전시된 공간 한쪽에는 그의 저서인 『트리그브 라이프(TRYGVE LIFE)』가 있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임한 7년 동안 6·25전쟁과 관련된 역할이 가장 고무적이었으며, 북한의 남침을 받은 우리나라의 상황이 1940년 독일에 침략당한 노르웨이와 매우 비슷했다’는 말을 남겼다.
68년 전 트리그브 총장의 유엔군 파병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낯선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준 유엔군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유엔평화유지군으로서 다른 나라를 돕는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6·25전쟁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유엔군과 참전용사의 헌신, 그리고 용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강현삼 전쟁기념관 유물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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