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장군의 서재

전쟁터만큼 창의성 필요한 곳 없어 리더라면 꾸준히 越煉越强(월련월강) 해야

김상윤

입력 2018. 02. 0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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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진 공군사관학교 교장『키로파에디아-키루스의 교육』


공군사관학교의 교육체계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황성진(중장) 교장이 추천도서 『키로파에디아-키루스의 교육』을 들고 독서의 중요성과 리더의 자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한재호 기자



고대 그리스 사상가 크세노폰이

적국의 영웅을 사례로 쓴 병서

지난 사관생도 졸업식서 책 인용
‘지도자의 게으름’ 경계하며 축사

다독 불가능한 현실적 상황서도
전쟁사와 명장들 전기 즐겨 읽어

사관생도는 우리 군의 미래다. 공군사관학교(공사)의 리더, 황성진(중장) 교장의 철학이자 신념이다. 황 교장에게 ‘독서’란 군인이자 지휘관으로서 자신을 연마하는 수단인 동시에, 생도들에게 리더십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치열한 고뇌의 과정이다. 그런 황 교장이 ‘동양의 손자병법과 사기열전(史記列傳)을 합쳐놓은 서양의 고전’으로 추천하는 책이 있다. 대제국 페르시아를 건설한 키루스 왕자의 성장과 일대기를 다룬 『키로파에디아-키루스의 교육』이다.




독서는 평생의 자기수련

“키루스 왕자는 ‘특별한 교육’을 통해 정의로움, 용맹함, 전략적 사고, 탁월한 리더십을 갖춘 대왕으로 성장했고,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페르시아를 광대한 대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떤 교육이었는지 궁금하신가요? 훌륭한 리더를 꿈꾸는 장병 여러분과, 이들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고민하는 지휘관·참모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대제국 페르시아를 건설한 인물이 ‘키루스’라면, 그런 키루스를 만든 것은 바로 ‘교육’이다. 『키로파에디아-키루스의 교육』은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 크세노폰이 적국의 영웅을 사례로 쓴 병서이자 전략서, 리더십 지침서다. 황 교장은 ‘키루스의 교육’이 ‘사관학교 교육’과 유사하다고 분석한다. “키루스처럼, 오늘날 사관생도들 역시 엄격한 ‘절제’와 ‘규율’을 특징으로 하는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발과 손을 맞추며 걷는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키고, 어려움을 자기주도적으로 이겨내는 과정에서 강인함, 현명함, 품격을 갖추게 되죠.”

지난 사관생도 졸업식에서 황 교장은 이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 축사를 했다. 키루스가 대제국의 통치자에 오른 뒤 게으름을 경계하며 강조했던 말이다. “한때 용감했던 자도 끝까지 용감하려고 헌신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용감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절제와 인내도 그것을 고양하는 노력을 중단하는 순간 퇴보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언젠가는 리더의 자리에 오를 것입니다. 잊지 말기 바랍니다. 리더는 꾸준히 ‘월련월강(越煉越强)’해야 합니다.”


‘명장의 전기’로 전장을 읽다

공사 33기인 황 교장은 주기종 KF-16 전투조종사로서 3000시간 이상 하늘을 날았고, 3훈련비행단장, 공중전투사령관 등 중요 직책을 역임했다. 현실적으로 ‘다독’이 불가능했지만, 황 교장은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특히 즐겨 읽은 것은 전쟁사와 장군들의 전기다. 시대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내가 그들의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판단했을까를 고민하기 위해서다. “군인은 혼자 싸워 이길 수 없기에 부하들을 이끌 리더십을 익혀야 합니다. 또한 변화무쌍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싸워야 하기에 전쟁과 전술의 법칙, 인간행동의 패턴을 알아야 하죠. 그중 많은 부분을 독서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황 교장은 ‘전쟁터만큼 창의성이 필요한 곳은 없다’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은 ‘상상 밖’의 일을 잘 하지 않습니다. 독서를 통한 풍부한 상상력은 예상치 못한 전술로 적의 허를 찌르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필수죠. 명장들 역시 책을 가까이 했습니다. 맥아더를 만든 것은 부친이 남긴 4000권의 장서이며, 패튼, 브래들리, 리지웨이도 소문난 독서가였다고 합니다. ‘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던 안중근 장군은 독서에서 얻은 역사적 통찰력으로 의사(義士)의 길을 걸었죠.”

황 교장에게도 책은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았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온 ‘삼망(三忘)’은 황 교장에게 ‘삶의 나침반’이 됐다. “출전명령을 받으면 가족을 잊고, 전장에 가서는 부모를 잊고, 공격의 북소리를 들으면 자신을 잊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살고자 무던히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자기주도적으로 ‘따로 또 같이’ 읽어야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꾸준히 책을 읽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황 교장은 활발한 독서운동은 우리 군의 미래를 밝게 만들지만, 책 읽기에 대한 과도한 강박과 강요는 독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독서가 제도나 부담으로 느껴지면, 오히려 책을 멀리하게 되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단순히 몇 권의 책을 읽게 하는 것보다 평생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독서습관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이 읽는 것 이상으로 독서의 다양성도 중요하죠. ‘할 때 제대로 하고, 쉴 때 푹 쉬는’ 합리적인 병영문화를 조성해 자연스럽고 자기주도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황 교장은 장병들의 상호작용을 기대할 수 있는 ‘집합적인 독서’를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작전이 ‘모두 함께’의 영역이라면, 독서는 ‘따로 또 같이’의 영역입니다. 읽는 행위 자체는 각 개인이 ‘따로’ 하지만, 독서의 교훈을 나누는 것은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좋은 책을 주변에 권유해 함께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밝은 독서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쓰기’는 독서의 완성

황 교장 취임 이후 공사는 기존 교육체계를 ‘과제기반학습(Project Based Learning)’ 기반으로 대폭 개선하고 있다. 불필요한 과목은 가려내 폐지하고, 필수 이수학점은 과감히 축소했다. 생도들은 오후 3시30분이면 하루 수업을 마치고 각자 원하는 분야에 대한 ‘자기주도적 학습’에 들어간다. 이런 혁신은 지휘관의 확고한 철학과 교수부 등 실무자들의 공감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교육은 피교육자에게 ‘집어넣는 것’이 아닌 그들 스스로 ‘꺼내는 것’입니다. 테니스를 예로 들죠. 기본 자세는 수업에서 배우되 공을 제대로 맞히려면 결국 스스로 연습해야 합니다. 피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역량을 개발하는 생도만이 미래 군을 이끌 리더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제기반학습’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독서’와 ‘글쓰기’다. 공사 생도들은 학년별로 ‘명장의 전기’ 등 주제에 맞는 책을 읽고 독서비평문을 쓴다. 시대가 요구하는 융복합 사고능력을 갖추기 위해 ‘읽는 것’ 이상으로 ‘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황 교장의 확신이다. “흔히 생각한 다음 글을 쓴다고 알고 있지만, 뇌과학자들은 쓰면서 생각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읽는 것’이 서 말의 구슬을 갖추는 것이라면, ‘쓰는 것’은 그 구슬을 꿰는 작업입니다. 전쟁사 서적을 읽었다면, 전장의 지휘관으로서 군사전략·작전목표·무기운용·군수역량 등을 글로 재구성해 써보면 어떨까요? 독서를 통한 주도적인 자기역량개발, 글쓰기로 완성해보시길 바랍니다.”


김상윤 기자 < ksy0609@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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