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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호 병영칼럼] 한국어에는 있고, 프랑스어에는 없는 것

입력 2018. 01. 1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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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현 호 파일럿·작가
오 현 호 파일럿·작가



1996년 중학생이었던 나는 프랑스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른 채 서울에서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그곳 학생들은 내 성을 따서 나를 ‘오!’라고 불렀다. “Oh~” 하며 신음을 내는 녀석도 있었는데 당시 아이들은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내 이름은 “현! 호! 다”라고 아무리 말해줘도 프랑스인들에게 ‘Hyunho’라는 발음은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어에는 ‘ㅎ’ 발음이 없다. ‘h’는 무음 처리돼 모두 ‘ㅇ’ 발음이 난다. 호텔을 ‘오뗄’, 호스피털을 ‘오삐딸’로 발음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때문에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면 늘 긴장하곤 했다. 친절한 한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보고 차근차근 성심껏 불러보셨다.

“윈~!호?”

프랑스어에서 ‘u’는 ‘우’가 아니라 ‘위’처럼 발음된다. 즉 ‘Hyun’이란 글자는 사실상 프랑스인들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발음이다.

약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작은 장난도 학생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선생님들은 타지에서 온 말 못 하는 내게 발음이 형편없어도 내 이름을 꼬박꼬박 불러줌으로써 예의란 무엇인지 몸소 가르쳐 주셨다. 직업인으로서 가진 윤리 의식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많은 어른은 내 이름을 보고 어렵더라도 이름을 불러주려고 배려했다.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는 멕시코에서 온 베드로였다. 나보다 세 살 많았고, 키가 15㎝나 더 컸지만 우리는 비슷한 프랑스어 실력으로 같은 학년에 배정받았다. 작고 말도 못 하는 아시아에서 온 한 살 어린 나는 학생들에게 점차 무시당하기 일쑤였는데 베드로 덕분에 그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한 해가 지나고 첫해의 성적이 나왔다. 나는 학년을 올라가지 못했다. 유급이다. 프랑스에서는 성적이 기준 이하가 되면 학년을 올라가지 못해서 한 반에 나이가 다른 학생들이 종종 있다. 결국, 부모님의 부름을 받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년의 교과과정을 건너뛴 나는 자연스레 한국의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고, 중상위권이던 석차는 학급에서 끝을 달리게 됐다. 반 석차 43등! 그 후로 많은 반항과 삐뚤어진 길을 가기도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동시에 프랑스에서 수많은 문화충격을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어쩌면 어린 중학생의 마음에 ‘세상은 넓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가르쳐 주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유학 실패자’라고 놀려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사실 아무것도 이룬 것도, 한 것도 없었다. 그렇게 1년을 허비했다고 생각할 때쯤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제2외국어 프랑스어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외국어 경시대회에서 수상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며 43등이던 나는 반에서 가장 빨리 대학교 입학을 확정할 수 있었다.

버리는 경험이란 없다. 내가 보고 듣고 깨친 모든 것은 다 꽃이 필 그 시기가 반드시 온다. 그렇다면 나는 주저하지 말고 무엇이든 하면 된다. ‘Just do it’이란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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