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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호 병영칼럼] 나는 흙수저가 아니다

입력 2018. 01. 0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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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책 『부시파일럿, 나는 길이 없는 곳으로 간다』에는 흙수저, 수능 7등급 등을 강조한 문구가 쓰여 있다. 하지만 사실 나는 혜택을 받으며 살아온 사례에 가깝다. 무리 없이 학원에도 다녔었고, 심지어 중학생 때 프랑스에도 잠시 다녀왔다. 갖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쉽진 않았지만 가질 수 있었다. 집에는 항상 밥이 있었고, 반찬도 있었다. 입을 옷도 있었고, 겨울에는 보일러도 돌아갔다. 에어컨은 없었지만, 선풍기는 넉넉하게 있었고, 등록금이 치솟는 가운데서도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아르바이트는 꾸준히 했지만, 이따금 용돈도 받았었다.

7등급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바보같이 사회가 나눈 등급을 스스로 인정하고 격차를 나눈 것은 아닌지 부끄러울 정도다. 성적은 비록 7등급이었지만, 자신감은 1등급이었고, 결국 자신감 하나로 많은 것에 쉽게 도전할 수 있었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전역 후 강남 파이낸스 센터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했다. 한 달 140만 원 정도를 벌었는데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많은 월급을 주는 곳이었다. 그렇게 7개월을 일하고 영어 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영어를 공부했다.

스물두 살 나는 영어를 잘하고 싶었다. 노동의 대가로 모은 적은 자금을 갖고 호주로 떠났다. 호텔에서 청소하고 야간에 설거지하고 낡은 배를 고치는 일도 하면서 빠르게 생활 영어를 배웠다.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되고자 다이빙 숍에 무작정 찾아가 무급 인턴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끝없이 제안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나는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될 수 있었다. 영어도 못 하고, 돈도 없고, 호주에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렇게 부딪치고 나니 기회가 찾아왔다.

대형 면세점에도 취업해 300만 원 넘는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돈을 벌고 나니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하지 못할, 20대에 해야만 하는 일들이다. 히말라야 텐트 피크 등정, 우간다 르웬조리 등정, 사하라 사막 마라톤 250㎞ 완주, 플로리다 베로비치 철인 3종경기 완주, 45개국 세계 일주 등에 도전했다.

삼성전자 중동총괄에서 마케팅 담당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또 파일럿이 되기 위해 4년 전부터 훈련을 받았고, 그 과정이 겨우 끝났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려보면 무수히 많은 실패와 고난의 시간이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이었다.

‘나 힘들다’는 말은 누군가가 보기엔 참으로 쉬운 일일 수도 있고, 내가 아무렇지 않게 보내는 1시간도 누군가의 꿈일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지나온 시간을 잊고 내가 해야 할 일을 꾸준하게 묵묵히 해내기만 하면 된다.

지금도 나는 실패 속에서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헤쳐나가는 중이지만 끊임없이 부딪히다 보면 마라톤의 결승선이 나타날 것을 믿는다.

앞으로 이곳에 ‘사회가 인정하는 보편타당성에 대한 저항’이라는 주제로 여러 얘기를 쓸 것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이 주위의 시선보다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그런 사회가 되는 그런 날을 꿈꾼다.

확실한 건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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