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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동기는 무엇인가? 전우애·부대단결·도덕 가치

입력 2017. 12. 0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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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美 육군참모대학 전략연구소의 『그들은 왜 싸우는가:이라크 전쟁에서 전투 동기』


이라크 전쟁에서 싸우는 이유 ‘이라크군-강압·미군-동료애’

진정한 전문군대로 발전하면서 전쟁의 ‘도덕적 명분’도 중요

 




병사들이 끝까지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합리적 개인에게 자기 목숨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병사들은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레너드 웡(L. Wong) 박사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육군참모대학 연구진들은 이라크 전쟁의 양측 참전병사와 종군기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왜 싸우는지를 탐색했다.

전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미국답게 일찍부터 병사들이 어떻게 싸우는지에 대한 연구가 있어 왔다. 그 대표적인 연구가 사무엘 스토퍼(S. Stouffer)의 ‘미군(The American Soldier)’(1949)이다. 그들이 전쟁 동안 싸울 수 있도록 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전쟁을 빨리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다음으로 많은 대답은 전투를 통해 형성된 ‘전우들 간의 강한 유대’였다. 동료에 대한 배려(loyalty)와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데올로기나 애국심과 같은 고상한 명분은 전투 동기(combat motivation)의 결정적 요소가 되지 못했다.

‘총 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Men Against Fire)’(1947)의 저자 마셜 장군도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병사로 하여금 계속 전투에 임하게 하는 전쟁의 가장 단순한 진리는 가까이 있는 동료의 존재 그 자체”라고 단언했다. 패전이 분명한 상황 속에서도 독일군 병사들이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잘 싸웠던 것도 전우들 간의 동료애 때문이었다.



부대 단결의 중요성

전투 동기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부대단결(unit cohesion)에 대한 강조는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에 대한 연구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한국전의 전투 동기를 분석한 로저 리틀(R. Little)은 “수개월씩 함께 전투에 참가한 전우들 간에는 견고한 전우애(buddy relation)가 형성되었고, 이것이야말로 생존에 결정적 요인”이라고 결론지었다. 베트남전쟁을 연구한 찰스 모스코스(C. Moskos)는 “이러한 동료애가 부대전투력(unit effectiveness)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판단했다. 동료들과의 깊은 유대가 생존을 위한 이기적 욕망의 결과일지 모르지만, 전투 수행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대원에 의한 지휘관 고의 살해(fragging)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부에서는 인간적 친밀도와 군사적 효율성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로버트 맥콘(R. MacCoun)은 1993년 랜드보고서를 통해 부대원들 간의 감정적 친밀함을 의미하는 사회적 결속(social cohesion)과 과업 수행을 위한 업무적 결합을 의미하는 과제 결속(task cohesion)을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사회적 결속은 오히려 공적인 업무 수행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 것일까? 저자들은 2003년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을 대상으로 실제 전투에 나가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탐색했다. 대상에는 미군 병사와 함께 이라크 병사와 종군기자들을 포함시켰다. 미군과 이라크군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제3자로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이라크 병사들을 전장에 붙잡아 둔 것은 ‘강압’이었다. 탈영자들은 공개처형과 가혹한 처벌을 받았고 그들의 부모까지 투옥되었다. 지휘관들은 정치적 이유에서 임명되었기 때문에 전술적 능력도 부족했고 상호존경도 없었다. 동료를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기본적인 전우애조차 없었다.



“동료를 위해 싸운다”

이에 비해 미군은 “동료를 위해 싸운다”는 개념이 분명했다. 전우들 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감정적인 것이다. 부대생활과 훈련, 그리고 전투를 함께 수행하면서 가족과 같은 인간적 친밀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들 간의 관계는 사회적 결속에 가깝다. 저자들은 사회적 결속은 두 가지 점에서 전투 동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서로에 대한 끈끈한 유대감으로 인해 병사 각자가 높은 책임감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역할이 별스런 일이 아닐지라도 개개인의 역할이 부대 성공의 결정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 병사는 “만약 그가 나 때문에 죽는다면 그것은 내가 죽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강한 유대감을 보였다. 어떤 병사가 언급했듯이, 전우가 아내보다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 정도다.

사회적 결속의 또 다른 역할은 믿음과 보증이다. 앞선 병사가 전진할 수 있는 것은 후위 병사가 자신의 뒤를 잘 봐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다른 병사를 신뢰하는 것은 훈련을 많이 받았거나 유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을 인간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병사들은 안도감을 느낀다. “그가 내 뒤를 지켜주고, 나 역시 그의 뒤를 지켜준다면, 별일 없을 거야.”

병사들이 이런 믿음과 안도감을 갖게 되면, 당연히 자신의 과업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일종의 ‘심리적 쿠션’과 같은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 주목할 점은 지금까지 연구에서 무시되었던 이념적, 도덕적 요소의 부활이다. 남북전쟁 당시 양측의 병사들은 모두 지원병이었고 정치적 의제에 민감한 식자층이었다. 남군이나 북군 모두 자신들이 지향하는 정치적 명분을 이유로 참전하여 싸웠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들은 애국심이나 전쟁의 목표에 대체로 둔감했다. 애국심을 부추기는 발언조차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연구에서는 ‘이라크 인민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되찾아 주었다’는 데 대한 자부심 넘치는 발언들을 미군 병사들이 쏟아냈다. 한 종군기자는 “여기에 있는 많은 병사들에게 가장 강력한 동기는 이라크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썼을 정도였다. 이는 애국심과는 다른 보다 근본적인 가치이다. “어린이가 달려와서 좋아하는 모습만큼 큰 보상은 없다”거나 “그들이 행복해하고 감사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에서 더욱 근본적인 도덕적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진정한 전문군대의 의미

이처럼 많은 병사들이 예전과 달리 자유나 해방, 민주주의와 같은 개념에 동기부여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임스 맥퍼슨(J. MacPherson)이 남북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의 사례에서 잘 지적했듯이, 오늘날 미군은 이전과 다른 조건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높은 교육수준과 정치적 의제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역시 결정적인 이유는 오늘날 미군은 지원병제의 토대 위에 ‘진정한 전문군대(truly professional army)’로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저자가 간략히 언급했지만 40년 전 전면 지원병제를 채택한 이후 미군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전면적 재검토와 개혁을 통해 전문군인으로 거듭났다. 직업군인은 국가와 군이 그들에게 부여한 책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진정한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싸우지만, 전쟁의 도덕적 이유를 자각할 만큼 충분히 수준 높은 집단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보고서는 적어도 두 가지 차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갖고 있다. 하나는 전쟁에 내포된 도덕적 사명의 중요성이다. 왜 싸워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병사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잘 싸우는 군대를 육성하는 것이 국방개혁의 목표라고 한다면 병역제도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해야 한다. 미군의 사례가 늘 적절한 것은 아니지만, 의무병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최영진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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