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FPS의 선구자, 둠(DOOM)
1993년 첫 등장
2D로 재현한 공간감
가상공간 활용한 모범사례로 꼽혀
화끈한 총기 난타전
개틀링 건 등 개인화기 위력 보여줘
전쟁을 다루는 게임들을 장르로 분류하자면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두 장르는 역시 전략 시뮬레이션과 FPS(1인칭 시점 액션)일 것이다. 특히 병사 개개인의 시점에서 전장을 다루는 FPS 게임들은 빗발치는 총탄과 폭음의 현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어 다이내믹한 플레이를 원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모니터 안쪽에 가상의 공간으로 구현된 3차원의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액션을 다루는 FPS 장르는 ‘퀘이크’나 ‘오버워치’처럼 판타지 느낌에 가까운 액션성을 그려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배틀필드’나 ‘카운터 스트라이크’처럼 현실의 전장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현실성에 무게중심을 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라도 가상공간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두 부류는 동일한 장르로 묶을 수 있고, 이들의 공통적인 선조로 지목되는 고전 게임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FPS의 증조할아버지뻘이 되는 게임, ‘둠’이 그 주인공이다.
1993년 처음 세상에 등장한 ‘둠’은 길지 않은 게임의 역사 속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게임이다. 현대 게임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3D(3차원) 가상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 모범 사례로 등장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2D 기반 게임들에서 미처 구현하지 못했던 공간감은 비록 지금 시점에 돌이켜 보면 조악하게 여겨질 수 있는 그래픽이긴 했지만, 당대의 플레이어들에게는 상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개척자로 여겨지는 게임으로 ‘둠’을 꼽게 만드는 요소였다.
제작사인 ‘이드 소프트웨어’의 전작이자 3D FPS의 고조할아버지뻘인 ‘울펜슈타인 3D’가 비록 3차원 게임 공간을 표현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2차원 그래픽이었던 점을 넘어선 ‘둠’은 스토리나 세계관 설정 등을 최대한 단순하게 정리한 채 오직 3차원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화끈한 총기 난타전에 집중했다. 화성 개척 와중에 텔레포트 장치의 문제로 갑자기 나타난 지옥의 악마들을 기관총과 샷건, 로켓포로 물리치는 주인공 ‘둠가이’의 활약은 화약 병기 그 자체인 듯 뜨겁고 강렬한 게임 경험을 자아냈다.
현대 병기로 악마를 부수는 통쾌함
화끈한 게임 플레이를 만드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개성 넘치는 무기들과 지옥의 악마로 설정된 적 캐릭터 덕분이었다. 맨주먹과 권총으로 시작하는 ‘둠’은 게임 속에서 획득하는 다채로운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데, 하나같이 뭔가 크고 거대하며 육중한 느낌으로 화력의 위엄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무기마다 독특한 특색이 희석되지 않는 구성이었다.
고어물의 영원한 친구인 전기톱이 근접 무기로 등장하고, 살짝 공회전한 뒤 무지막지한 속도로 총알을 쏟아붓는 개틀링 건도 등장한다. 90년대 게이머들에게 사실상 ‘둠’의 상징 무기였던 미사일 런처는 연사력은 떨어지지만 한 방의 어마어마한 파괴력과 함께 적 악마들의 시체를 박살 내는 효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후반부의 SF 무기들인 플라즈마 라이플과 BFG와 같은 무기에 이르면 개인화기의 화력에 갖는 사람들의 로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강력한 개인화기들은 사람이 아닌 ‘지옥에서 온 악마들’을 갈아버린다는 설정과 맞물리면서 ‘둠’의 액션성을 크게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대세 FPS류 게임들, 그 이전에 ‘둠’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우리 눈이 바라보는 세계에 좀 더 와 닿은 3D 방식의 게임이라고는 해도, ‘둠’이 갖는 게임으로서의 근본적인 움직임은 아직 3차원 세계의 그것을 따르기보다는 고전 2D 아케이드 게임에 가까운 형태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오락실 등에서 흔히 보는 2D 게임들의 캐릭터처럼, ‘둠’의 주인공 또한 현실의 움직임을 벗어난 빠른 속도의 움직임이나 물리법칙과 거리가 있는 행동들을 수행할 수 있었다. 공간은 3차원이었지만 적어도 독고무쌍의 캐릭터가 혼자서 강력한 무기로 수많은 적을 잠입이나 엄폐가 아닌 화력으로 쓸어담는다는 설정 자체는 기존의 2D 게임이 가진 게임적 틀을 넘어섰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이자 특징은 이후 FPS의 발전에 있어 각자의 축을 가진 두 부류로 이어지게 된다. 3차원 공간에서 2D 게임 특유의 판타지적 움직임과 무쌍이 펼쳐짐에 주안점을 둔 ‘퀘이크’류의 하이퍼 FPS와 처음 등장한 3D 공간을 좀 더 현실적으로 가다듬으며 발전해 오기 시작한 밀리터리류의 FPS가 그것이다. 단지 액션 중심의 게임뿐 아니라 최근에는 아예 게임 속 공간이 대체로 3D 공간으로 디자인되며, 롤플레잉/어드벤처 등 다채로운 장르에 ‘둠’이 제안한 3D 공간이 적용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어쩌면 현대 디지털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조상으로서 ‘둠’이 갖는 가치는 일상적 상상 이상의 무게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PC방의 대세 게임은 RTS(스타크래프트), AOS(리그 오브 레전드)를 거쳐 ‘오버워치’를 지나 ‘배틀그라운드’로 변화해 가고 있다. 한때 해외에서 자주 나왔던, ‘한국은 FPS에선 약세다’라는 말 또한 점차 FPS/TPS류가 대세를 띠면서 줄어 가는 추세다. 이제는 군 장병들의 주요 외박지 PC방에서도 점차 ‘배틀그라운드’와 ‘오버워치’의 비중이 늘어가고 있음을 보고 있노라면 장르의 선구자였던 ‘둠’의 의미 또한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시점이 아닐까 싶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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