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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게임’ 미래 판도, 기획 의도가 바꾼다

입력 2017. 10. 3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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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군사오락 특별대담: 밀리터리 게임의 과거·현재·미래


 


그동안 국방저널의 군사오락 코너에서는 알려진 유명한 작품부터 인지도는 낮지만 중요한 작품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밀리터리 게임을 소개했습니다. 10월 호 김민석의 군사오락은 연재 1주년을 기념해 국내에서 몇 안 되는 게임 비평가이자,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의 저자인 이경혁님과 함께 밀리터리 게임의 과거, 현재, 미래를 훑는 대담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정리·사진=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밀리터리게임의 과거

기술적 한계가 새로운 상상을 만들다

美 남북전쟁 배경의 1990년 ‘노스 앤 사우스’ 대표적

 


김민석 : 과거 밀리터리 게임들은 전쟁과 군사를 소재로 했지만, 게임기의 성능 부족과 그래픽 표현의 한계로 제한적인 표현과 게임플레이만 가능했습니다. 가령 메탈기어 솔리드의 경우 전쟁게임을 만들어야 하는데, 대규모 전투를 표현하기 어려워 몰래 숨어서 전투한다는 컨셉트를 잡았는데요. 이런 과거 1980~1990년대의 고전 게임 가운데 여러 제한을 창의성으로 극복한 게임들의 사례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경혁 : 확실히 초기 컴퓨터게임의 경우 표현의 한계가 기술적으로 명백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약이 새로운 상상을 만든 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전쟁과 게임’ 칼럼에도 한 번 나간 적이 있지만, 1990년의 ‘노스 앤 사우스’ 같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미국 남북전쟁을 다룬 이 게임의 용량은 360kb 디스켓 한 장 분량으로, 요즘으로 치면 ppt파일 하나만도 못한 용량입니다. 이 안에서 남북전쟁을 그려내기 위해 제작자는 철도를 중심에 놓습니다. 군대를 만드는 경제적 바탕을 철도역 간의 연결에 두고, 역을 점령해 철도 운행을 시킬 때마다 군자금이 들어오는 식의 구조를 게임 안에 구현합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남북전쟁은 최초의 총력전이자 철도를 활용한 수송과 생산이 본격적으로 군사전략에 포함되기 시작한 전쟁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노스 앤 사우스’는 철도 수송, 역 점령을 위한 양 진영의 다툼을 게임의 중심에 그려냈습니다. 그 결과 남북전쟁을 다룬 여러 매체 중에서도 그 중심에 철도가 있음을 논리 전개만으로도 훌륭하게 표현해 낸 매체가 됐다고 봅니다.



김민석 : 기술의 제약이 재미에 제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자원 안에서 밀리터리적 재미를 찾은 것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이미 게임을 활용한 장갑차 시뮬레이터가 있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게임과 밀리터리의 접목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네요.


밀리터리게임의 현재

비판·열광·경쟁 ‘다양성이 공존한다’

전쟁과 살인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임… 비판적인 접근과 주제의식 가져야

 


김민석 : 이제 현대의 게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콘솔 게임기에서 등장하는 밀리터리 게임들은 실감 나는 3D 그래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와 ‘배틀필드’ 시리즈는 수천만 장의 판매고와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지요. 하지만 이런 블록버스터 FPS 밀리터리 게임들은 실감 나는 그래픽 뒤에 숨어 있는 단순한 일직선 스토리, 전쟁과 살인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태도 등으로 비판받습니다. 매체로서 현대의 발전된 밀리터리 게임에서 반성을 할 여지가 있을까요? 혹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거나 비판한 게임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시오.



이경혁 : 소설·영화·만화 등 많은 매체가 전쟁을 다루고 또 많은 독자가 이에 호응한다는 것은 휴머니즘의 아이러니입니다. 어쨌든 영화와 만화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현실이 아니니까요.

게임의 경우는 하나가 더 붙는데, 주체적 의지가 개입한다는 점입니다. 유명한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노 러시안’ 미션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테러 집단에 잠입한 주인공에게 내려지는 민간인 사살 명령 앞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데 주저하지 않는 플레이어도 드물 것입니다. 실제 같은 민간공항에서 멀쩡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사격해야 한다는 상황 자체는 단순한 양자택일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게이머에게 묻는 장면이 됩니다. 현실은 아니지만 우리는 대체로 그 장면에서 멈칫하고, 혹은 이러한 미션을 넣은 게임사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저는 전쟁에 대한 고찰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례가 비단 ‘콜 오브 듀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FPS 장르에서는 ‘스펙 옵스: 더 라인’이 있죠. PTSD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이 게임은 시작부터 거꾸로 선 성조기를 보여주며 게임의 주제의식을 부각시키고, 전쟁의 한복판에서 피폐해져 가는 군인들의 정신세계를 고상한 방식이 아닌, 전장의 현실 그 자체로 다뤄 냅니다. 문자언어를 넘어선 현장 감각을 통해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은 오히려 책이나 기타 매체보다 더 큰 호소력을 지닙니다.

특정 게임의 폭력성 비판보다는 저는 게임 매체의 총체적인 구성 자체로 비판하는 접근이 좀 더 유용할 거라고 봅니다.



김민석 : 스펙 옵스: 더 라인은 저도 재미있게 한 게임으로 인상 깊습니다. 주인공들을 전쟁의 영웅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살상과 광기를 다룬 충격적인 내용은 저에게 깊은 사색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밀리터리 게임이 단순히 자극적인 폭력이 아닌 비판적인 접근과 주제의식을 가진다면, 하나의 미디어 예술로서 대접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민석 : 다음 질문을 해볼까 합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게임 중 밀리터리와 가장 관련이 있는 게임은 단연 ‘소녀전선’이라고 봅니다. 이 게임은 사실 밀리터리적 요소는 적지만, 미래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점, 지휘관으로서 전략에 신경 써야 한다는 점에서는 훌륭한 밀리터리 게임이라고 봅니다. 비평적 관점에서 소녀전선의 재미와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경혁 : 국방일보 ‘전쟁과 게임’에 ‘소녀전선’이 등장한 것이 그렇게 이슈가 될 줄은 몰랐는데, 거의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국방일보가 게임도 다뤄?’ 같은 지점이 유머코드로 작용했겠지요. 하지만 연재를 시작한 지도 벌써 반 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화제가 된다니 좀 서글프기도 하네요. 좋은 게임들 많이 소개하고 있으니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실 ‘소녀전선’의 게임 형식 자체는 그다지 새로운 게 없습니다. 일본에서 군함을 다룬 비슷한 형태의 게임인 ‘함대 콜렉션’의 파생작이라고 봐야겠지요. 한국에서의 흥행은 오히려 이상한 지점에서 튀어 올랐다고 보는데, 최근의 한국 모바일 게임들이 대체로 유저 간의 경쟁을 부추김과 동시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현금 결제를 제시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는 점입니다. 현금을 어지간한 수준 이상으로 결제하지 않으면 사실상 플레이가 어려워지고, 또 게임이 그쪽에만 집중하면서 아이템 결제 외의 부분에 대한 만듦새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이래저래 불만이 늘어난 게이머 환경에서 ‘소녀시대’는 상당한 어드밴티지를 얻었습니다. 경쟁을 강요하지도 않고, 과금을 요구하지도 않았거든요. 아마도 흥행의 배경은 이 지점이었을 겁니다.

또한 ‘소녀전선’은 캐릭터성을 빼놓고 말하기 힘든 게임입니다. 등장하는 각 총기들은 나름 실제 총기로부터 가져온 모티브를 훌륭하게 잘 녹여냅니다. AK-47은 반정부군·저항군이 애용한다는 컨셉트를 살려 게릴라스러운 캐릭터로 등장했고, G11은 고속 점사라는 특성을 반영해 게임 내에서 엄청난 발사 속도를 자랑합니다. 이런 각 캐릭터의 특징을 살린 꼼꼼하고 재미있는 요소들로 채워진 소녀전선의 캐릭터들은 캐릭터 인형이 아니라 성장하고 교전하며 움직이는 굿즈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것이 ‘소녀전선’을 가장 잘 드러내는 특징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석 :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밀리터리라는 장르는 게임·영화·드라마·연극·소설 등에서도 자주 쓰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거부감을 주거나 진입장벽이 높은 소재인 것 같습니다. 소녀전선의 캐릭터성은 이런 진입장벽을 낮추고, 밀리터리 게임을 대중화시키는 단초가 된 것 같은데, 우리 군의 홍보나 밀리터리 게임 개발자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는 것 같네요.

밀리터리게임의 미래

발전된 기술 ‘점점 더 현실적으로’

VR 활용 통한 군사훈련 시뮬레이터·반전의 메시지 확산 등 기획 의도에 영향 받을 듯


김민석 : 현재 컴퓨터 게임 기술의 특징은 극단적인 사실성의 추구로, 과거 블록버스터 영화의 실제 화면 같은 그래픽을 재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가상현실(VR) 게임들이 계속 기술혁신을 하여 마치 모바일 게임이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 게임의 혁신을 주도할 것으로 많은 전문가가 예측하는데요. VR과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달로 미래의 밀리터리 게임은 어떤 모습이나 의미를 가지게 될까요?



이경혁 :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게임에도 계속 발전된 기술이 적용될 것입니다. 그러면 더 나은 게임이 나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그래픽의 향상이 재미를 항상 담보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2017년 최고의 밀리터리 게임으로 꼽아도 무리가 아닐 ‘배틀 그라운드’는 우리에게 어떠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배틀 그라운드가 성공한 이유는 향상된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전장의 새로운 국면을 포착하고 이를 통해 ‘이것이 전장이다’라는 기존과 다른 주장을 메시지로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새로운 메시지의 핵심은 ‘살아있는 전장’입니다. 과거 FPS 게임이 패쇄된 내부 공간에서 치르는 전투였다면, ‘배틀 그라운드’대에 이르면 컴퓨팅 기술이 발달하면서 비로소 360도 시야가 모두 확보되는 광활한 개활지를 그려낼 수 있게 됩니다. 이때 ‘그려낸다’는 표현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그려낸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개활지 어디에도 적이 있을 수 있고, 무작위의 위치에 매복한 적이 날리는 총탄의 궤적까지도 정밀하게 그려낼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이 따라오지 못하면 표현할 수 없는 성격의 전장이었을 겁니다.

저는 컴퓨팅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까지 기술적 한계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많은 요소들이 전장을 대표하는 오브젝트로 변할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미처 기존에 표현하지 못했던 새로운 요소를 짚어낼 수 있는 개발자의 혜안이 새로운 밀리터리 게임의 역사를 창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파생되는 의미는 쉽게 단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군사 부문에 종사하는 이들은 점점 더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전장에 주목하며 VR 등을 활용한 게임 요소로 가상의 군사훈련 시뮬레이터를 만드는 데 집중할 것입니다. 반전운동을 벌이는 예술가 집단이라면 좀 더 상세하게 전장의 참혹함을 그려내며 반전의 메시지를 퍼뜨리는 데 이 기술을 활용하겠지요. 즉, 각각의 분야에서 해석하고 사용할 기술의 방향은 기술 자체에 매인다기보다는 매체를 활용하는 이들의 의도와 이해로부터 영향 받을 거라고 봅니다.



김민석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미 게임산업의 VR 기술은 군사적 부문에서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데, VR 게임 기기인 오큘러스 리프트 등을 활용한 장갑차 운전, 증강현실을 이용한 전투 시뮬레이션 등이 게임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배틀 그라운드의 넓은 환경요소를 활용한 분대 전투 시뮬레이션 등으로 훈련 효과를 늘리는 시도도 언젠간 실제로 적용될 것 같네요.


 



김민석은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 민간 군사전문가로 애비에이션 위크 등 국내외 국방·군사전문매체에 글을 기고하면서 온라인 게임 기획자로 활동.


 




이경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현직 회사원 겸 게임 칼럼니스트. 성균관대학교 ‘게임과 인문학’ 강좌 진행. 저서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2016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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