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 창설 69주년을 맞아
육군 포병병과가 창설 69주년을 맞았다. 1948년 건군 당시 우리 군은 미군으로부터 병력·무기·장비 등을 인수해 각 병과를 창설하였는데, 포병 병과는 1948년 10월 25일 ‘육군 야전포병단’을 만들어 병과 창설을 준비했고, 1948년 12월 15일 육군의 병과로 창설됐다.
이를 기념해 10월 25일을 ‘포병의 날’로 제정했다. 포병 병과는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69년간 눈부신 성장을 통해 전장의 핵심기능으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한국군 포병은 북한보다 절대적인 열세였다. 당시 우리 포병의 주력 무기는 미군으로부터 인수한 M3 105㎜ 곡사포로 최대 사거리가 6525m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91문 중 3문이 고장 난 상태였다. 반면 전쟁 준비를 마치고 기습남침한 북한군 포병은 122㎜ 곡사포, 76.2㎜ 평·곡사포, 76.2㎜ 자주포 등 대포 800여 문을 갖추고 있었다.
육군 포병은 턱없이 부족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개전 초기 옹진지구전투, 축석령지구전투 등에서 적의 진출을 지연시켰으며, 낙동강방어선을 지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전쟁 후반부 고지쟁탈전 때에도 저격능선전투, 피의고지전투, 백마고지전투 등에서 성공적인 화력지원을 했다.
6·25전쟁 이후 포병은 조직을 재정비하고, 1970년대에는 미국으로부터 M110 8인치 곡사포와 M107 175㎜ 자주평사포 등을 도입해 전력을 증강시켰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직접 무기 개발에 참여해 미국과 함께 KH178 105㎜ 견인곡사포와 KH179 155㎜ 견인곡사포를 개발했으며, K55 자주포에 이어 K9 자주포를 직접 개발했다.
특히 K9 자주포는 기동성이 뛰어나고, 사거리가 40km에 달하며, 급속사격이 가능하다. 또한 위성항법장치(GPS)와 위치항법장치(PNU)를 장착해 신속한 사격제원 산출이 가능하고, 자동장전 시스템과 자동포신이동 시스템을 갖추는 등 세계적으로도 명품 무기로 인정받고 있다.
제대로 된 무기 하나 갖추지 못했던 육군 포병 병과는 많은 선배 전우의 희생으로 전장을 주도하는 강한 힘, ‘화력의 시작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포병장교로서 큰 자부심을 느끼며, 동시에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 21세기 스마트 전장에서도 포병은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끊임없는 노력과 혁신으로 전장의 변화에 발맞춰 나가야 한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북한은 지난 70여 년간 변함없이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가지고 끊임없는 도발을 일삼아 왔다. 특히 최근 들어 김정은 정권은 더욱 위태롭고 위험천만한 행보를 보여 각별한 경각심이 요구된다.
장사정포 도발 위협 등 적의 화력 도발 가능성이 농후한 이 시기에 우리 포병은 확고한 정신무장과 항재전장 의식을 바탕으로 적 도발 시 도발 원점을 최단시간 내에 정확하고 완벽하게 초토화할 수 있는 만반의 화력 대기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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