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철길따라 3800km 안보대장정

나라위해 끝까지 달렸다 빗발치는 총탄 뚫고

안승회

입력 2017. 09. 2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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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인터뷰 - 한국철도공사 대전기관차승무사업소 홍정표 기관사


미 24사단장 구출 작전 중 순직한 고 김재현 기관사의 외손자…3대가 철도인

6·25전쟁 당시 철도직원 1만9000여 명, 병력·군수물자·피란민 수송 등 임무 수행

 

 

6·25전쟁 당시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국군과 유엔군의 희생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위국헌신 정신과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열차 기관사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국방군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철도직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만9300명이 병력과 군수물자, 피란민을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순직한 철도원은 287명으로 군인·경찰에 이어 셋째로 많은 수다.


 

 


 

 

 


“6·25전쟁 당시 숨은 영웅이었던 철도인들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총칼을 들고 북한군과 직접 맞서 싸우진 않았지만, 당시 철도인들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군수물자와 병력 수송작전을 펼치며 군을 도왔습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겁니다.”

지난 20일 경부선 대전역 1층 커피숍에서 만난 한국철도공사 대전기관차승무사업소 홍정표 기관사는 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희생한 철도인들을 가장 먼저 소개했다. 홍 기관사는 1950년 6·25전쟁 중 미 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 구출작전에 참여했다가 가슴에 총탄 8발을 맞고 현장에서 순직한 고(故) 김재현 기관사의 외손자다.



“외할아버지는 가감변(증기기관차 속도조절 장치)을 손에 꼭 쥐고 돌아가셨습니다. 숨이 멎는 순간까지 임무완수 의지를 보이셨던 거죠. 당시 1남 1녀를 둔 가장이셨던 외할아버지는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겼지만,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습니다.”

6·25전쟁 당시 미국은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미 제8군 24사단 소속 스미스 부대를 파병했다. 미군이 파병한 최초의 지상군이었던 이들은 경기도 오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치렀다. 열세에 몰린 스미스 부대는 무너진 방어선을 뒤로한 채 퇴각했고, 부대를 지휘하던 딘 소장은 퇴각 중 북한군의 포로가 됐다. 영동에 집결한 미군은 딘 소장 구출작전을 세우고 미 해병 결사대 33인을 조직한 뒤 이원역에서 대전역까지 증기기관차를 운행해줄 기관사를 급구했다. 김재현 기관사는 딘 소장을 구해야만 대전과 조국을 지킬 수 있다는 간절한 믿음으로 이 작전에 자원했다.



 


“작전을 위해 기관차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두려움을 느낀 기관사들이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어요. 다급해진 미군은 지원을 호소했고, 비번이셨던 외할아버지께서 작전에 지원하셨죠. 몇 년 전, 현충일 행사에서 어떤 노인분이 다가오시더니 저희 어머니 손을 꼭 잡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신 적이 있어요. 딘 소장 구출작전 당시 본인이 당번이셨는데 용기가 없어서 못 갔고 외할아버지께서 대신 나가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죠.”

실패할 가능성이 컸던 작전에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재현 기관사는 미카3-129에 미군 30명을 태우고 대전역에 도착했지만, 이미 북한군이 점령한 상황이었다. 결국 딘 소장을 찾지 못하고 철수하던 중 대전역과 세천, 판암에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공격을 받았다. 거센 총격 속에서 김재현 기관사는 총상을 입고 27명의 미군과 함께 전사했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외할아버지께서 가족을 남겨둔 채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철도인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총격 속에서도 끝까지 좁은 기관사실 자리를 지킨 외할아버지의 투철한 사명감을 같은 철도인으로서 본받고 싶습니다.”



고 김재현 기관사는 1983년 철도인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 장교묘역에 안장됐다. 또 2012년 미국 정부는 딘 소장 구출작전에서 순직한 김재현 기관사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그의 유가족에게 특별공로훈장을 수여했다. 민간인에게 주는 가장 큰 훈장이다.


홍정표 기관사는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3대째 철도인의 길을 걷고 있다. 2004년 코레일에 입사한 그는 신탄진 장비사무소에서 선로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했다. 2012년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근무했던 대전기관차승무사업소로 발령, 부기관사로 근무하다가 2015년 8월 정식 기관사가 됐다.


대전도시철도공사 판암차량기지와 경부선 철로 사이에 서 있는 김재현 기관사의 순직비.


안승회 기자 < seu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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