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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9월 9일 F-5F 제공호 1호기 출하

신인호

입력 2017. 09. 03   15:08
업데이트 2021. 09. 0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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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국내 생산 항공기인 F-5F 제공 시제기가 시험비행하는 모습. 국방일보DB
최초의 국내 생산 항공기인 F-5F 제공 시제기가 시험비행하는 모습. 국방일보DB

 

1977년 105·155㎜ 곡사포의 국산화가 이뤄진 후 국내 방위산업계에는 “항공기와 고도정밀전자병기를 제외하고는…”이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쓰인 적이 있다.

당시 소총으로 대표되는 개인화기, 기동 및 화력장비, 함정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고 500MD 헬기의 조립생산을 막 시작했지만, 사실 고정익 항공기 등 두 분야에는 손도 못 대고 있어 향후 방위산업의 발전의 한 목표이자 숙제처럼 여겨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8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1980년대 중반에는 전자병기와 항공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개발 능력을 키워나가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고, 이어 그해 8월 26일에 열린 제1차 방위산업진흥 확대회의에서 항공기 생산 계획을 연내에 앞당겨 착수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1979년 7월 1일 대상 기종으로 노스럽(Northrop)사의 F-5E/F가 선정되고, 1980년 10월에 미국과 ‘F-5E/F 항공기 공동생산에 관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사업은 면허생산 형태로 진행됐다. 대한항공이 주관 사업자로서 기체 생산 및 조립을, 삼성정밀이 엔진 생산을 각각 담당했다.

1982년 9월 9일,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김해공장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내외빈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한 지 불과 10개월 만에 F-5E/F 전투기 1호기 출하 행사가 열린 것이다. 

이 전투기에는 하늘을 제패하라는 뜻으로 '제공'(制空)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일본과 대만에 이어 세 번째 전투기 생산국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고, 전투력 측면에서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당시 언론에서는 사설을 통해 1978년 한국형 지대지 유도탄 ‘백곰’ 실사, 1980년 최초 국산 호위함 ‘서울함’ 진수와 함께 우리나라 방위산업과 국방과학기술이 거둔 세 번째 개가라며 ‘우리 역사에 또 하나의 찬연한 신기원이 그어진 날로 기념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립 생산’은 독자적인 ‘개발’ 단계로 쉽게 오르지 못했고, 최초의 독자개발 항공기로서 KT-1 기본훈련기가 초도비행하기까지 근 10년(1991)이, T-50 고등훈련기가 초도비행하기까지는 20년(2002)이 더 걸려야 했다.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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