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육군

역사 흔적오롯이 남은일본땅에서…가슴 속애국이 끓는다

이석종

입력 2017. 09. 0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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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생도 일본 전사적지 탐방<上> 동행 취재





미래 우리 육군을 이끌어갈 육군사관학교 3학년 생도들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방문했다. 장교로서 갖춰야 할 국가관과 역사의식, 애국심 등을 함양하고 주변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5박6일 동안 생도들은 과거 우리 선조들이 일본에 전해준 문화유적을 찾고,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 등 아픈 역사의 흔적을 쫓았으며, 현재 일본의 군사·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느껴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일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것은 물론 장교로서 가져야 할 소양도 함양했다. 국방일보는 총 290여 명의 생도들이 90여 명씩 3개 조로 나눠 진행한 이번 탐방을 동행 취재해 동행기와 특집좌담 등으로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8월 24일 오전 5시30분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3층.

역시 육군사관생도들은 달랐다. 출국 수속을 밟고 있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생도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청년 90여 명이 오와 열을 맞춰 정렬해 있는 모습이나, 일사불란하고 절도있는 움직임은 멀리서도 이들이 생도임을 직감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생도들은 출발 전부터 강한 인상을 심어주며 앞으로의 엿새를 기대하게 했다.


 

오사카

관광지로만 알고 있던 오사카성과 호코쿠 신사

윤봉길 의사 수감 형무소 터엔 도요토미 동상만이…

 


약 1시간40분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생도들이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쯤이었다.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생도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입국 수속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생도들이 이번 탐방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흔적이 남아있는 오사카성.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일본의 유명한 관광지였겠지만 생도들에게 이곳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곳에서 생도들이 처음 만난 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위패가 있는 호코쿠 신사였다. 1592년부터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아픈 역사 중 하나인데 바로 그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도요토미다. 특히 이 신사 지역은 일제 강점기에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폭탄 의거를 감행한 윤봉길 의사가 수감됐던 오사카 육군위수형무소가 있었던 곳이다.

1931년 4월 29일 훙커우 의거 직후 일본 경찰에 체포된 윤 의사는 사형이 확정돼 폭탄 투척 현장인 훙커우 공원에서 공개처형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윤 의사의 순국이 독립운동가들에게 더욱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점과 국제 여론의 악화를 우려해 그를 이곳 오사카 위수형무소로 데려온 후 사형을 집행하기로 하고 1932년 11월 18일 일본 우편수송선 다이요마루 편으로 이송, 고베항을 거쳐 이곳에 수감했다.

이후 윤 의사가 이곳에서 약 한 달간 독방생활을 하던 중 일제는 육군9사단의 주둔지인 가나자와에서 사형을 집행하기로 결정하고 그해 12월 18일 가나자와로 이송했다. 윤 의사는 다음날인 12월 19일 오전 7시40분 미쓰코지산 육군작업장에서 순국했다.

 

오사카성 천수각 8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제 시대 일본 육군4사단사령부 건물과 윤봉길 의사가 수감됐던 오사카 육군위수형무소 터.

 


윤 의사가 오사카 육군위수형무소로 이감됐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알게 된 건 지난 2015년이다. 1961년 도요토미의 신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윤 의사 수감 당시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이곳에 수감됐던 일본의 반전작가 쓰루 아키라의 추도비가 세워져 있어서 이곳이 육군위수형무소 자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곳을 지나 오사카성 내부로 들어가자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육군4사단사령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 건물은 전후 오사카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다 박물관이 오사카성 밖으로 이전했고 현재는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이 건물을 지나 만난 오사카성의 핵심 천수각에서는 도요토미의 일생과 당시 일본의 정치 상황, 임진왜란을 일으키게 된 배경 등 역사적 사실을 접할 수 있었다.

나라·교토

고구려 담징 작품 ‘금당벽화’ 등 선조 숨결 느끼고

임진왜란 희생자 귀 무덤·윤동주 시비 찾아 넋 기려

 

 

육사3학년 생도들이 교토의 귀무덤 앞에서 임진왜란 당시 희생된 선조들의 넋을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탐방 이틀째인 25일과 26일에는 각각 일본의 전통과 문화를 만날 수 있는 나라와 교토를 방문했다.

나라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금당을 비롯해 5층 목탑, 불상, 불교 공예품 등 아스카시대와 나라시대를 대표하는 다수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어 지난 1993년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호류지(法隆寺)를 방문했다. 창건 때부터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호류지는 고대 일본 불교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건축과 문화유산의 보고로 잘 알려져 있다.

사찰의 발원자인 쇼토쿠(聖德)태자는 고구려의 승려 혜자(慧慈)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으며 백제의 혜총(惠聰)에게도 불교를 지도받았다. 또 백제에서 파견된 공인들이나 한반도 출신의 승려들이 사찰의 조영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금당의 본존불인 석가삼존상은 백제에서 이주한 구라쓰쿠리노 도리의 작품이며 유메도노의 구세관음상이나 백제관음상 등도 백제 불상과 연관성이 있다. 특히 일본 고대 미술의 백미로 꼽히는 금당벽화는 고구려 담징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생도들은 고대 일본에서 불교 번성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승려 및 장인들과 한반도 출신 이주민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 승려 담징의 벽화가 있는 호류지 금당.

 


이어진 교토 방문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희생된 조선인의 넋을 기리는 역사의 흔적과 마주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전리품을 확인하기 위해 목 대신 베어 갔던 조선인 약 2만 명의 귀와 코를 묻은 무덤을 방문한 것이다.

무덤 위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만물의 구성요소인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을 상징해 쌓아 올린 고린토(五輪塔)라 불리는 석탑이 세워져 있었고 둘레는 돌로 둘러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생도들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묵념을 하며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호국 의지를 다졌다.

이어 생도들은 군국주의 일본이 벌인 침략전쟁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함께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전시물들이 전시된 리츠메이칸대학 국제평화박물관을 방문했다.

 

생도들이 교토의 도시샤대학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를 견학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도들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일본에서는 유례가 없을 만큼 자신들의 침략 역사를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는 전시물들을 관람하며 전쟁의 참상을 확인하고 조국수호 의지를 되새겼다.

교토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생도들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동주의 시비를 찾았다. 그가 다니던 도시샤(同志社)대학에 세워진 그의 시비 앞에서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젊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의 넋을 기렸다.

요코스카·도쿄

美 해군7함대사령부 자리 잡은 요코스카항

한반도 안보 상황과 국가 수호 막중한 임무 실감

 

 

생도들이 이봉창 의사가 사형당한  이치가야형무소 터에 세워진 형사자 위령탑을 견학하고 있다.



오사카·나라·교토로 이어지는 관서지방의 일정을 마친 생도들이 1박2일간의 이동을 마치고 관동지방에서 맞은 첫 일정은 유엔군사령부의 후방 기지 중 하나이자 미 해군7함대사령부가 자리 잡은 요코스카항.

 

요코스카항에 정박 중인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항공모함 이즈모함.

 


항구 입구에서 들어서자 차창 밖으로 일본 해상자위대의 만재배수량 2만7000톤급 헬기항공모함 이즈모함(DDH-183)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어 이곳이 미7함대사령부라는 것을 알려주는 대형 닻으로 만든 표지판과 그 뒤로 멀리 성조기와 일장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보였다. 기지 옆쪽으로는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의 발틱함대와 싸운 일본 해군의 기함 미카사함이 박물관으로 변신해 있었다.

견학 중 주일미군과 유엔사 후방기지의 현황과 역할에 대한 설명을 들은 생도들은 한반도 안보 상황과 자신에게 주어질 막중한 국가 수호의 임무를 다시 한번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요코스카 기지 탐방에 나선 생도들이 기지 외곽 미가사 공원에 전시된 미카사함 앞을 지나고 있다.

 


이어 생도들은 경술국치일을 하루 앞둔 28일과 경술국치일인 29일 2·8독립선언의 현장인 도쿄 재일본한국기독교청년회(YMCA), 이봉창 의사가 히로히토 일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 의거 현장으로 추정되는 경시청 앞의 사쿠라다몬, 이 의사가 사형당한 이치가야형무소 터, 관동대지진과 그로 인한 혼란의 와중에 자행된 학살에 희생당한 조선인들의 넋을 기리는 조선인희생자추모비 등을 견학하며 아픈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졌다.

이렇게 5박6일간의 일본 탐방을 마친 최성은·최형준·주영준 생도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번 탐방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며 “특히 이웃이지만 아픈 역사의 흔적을 남긴 일본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석종 기자 < seokjo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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