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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꿈… 그 꿈을 믿어요, 저를 지켜봐요”

김용호 기사입력 2017. 07. 30   12:27

⑧·끝 -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3세 아비기아

학비 못 내 집으로 돌아온 적도

고향 한 번도 벗어난 적 없어…
더 넓은 세상 구경하고 싶어요

 

 

 


 


세계의 경제수도 뉴욕에도 있고, 미국 메이저리그 류현진의 소속팀 연고지인 LA에도 있고, 이웃 나라 일본의 오사카에도 있다. 세 도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민이나 유학 떠난 한국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코리아타운이 있다는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는 이러한 코리아타운이 많다. 하지만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동북쪽의 ‘예카’에는 조금은 색다른 코리아타운이 있다.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정착촌이다. 이름하여 한국마을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 마을은 우리나라와는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관계다. 에티오피아 황제근위대가 6·25전쟁에 파병되기 전 기능별 임무 수행에 필요한 현지 적응훈련을 받았던 곳이 마을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산악 지형에다 깊은 계곡까지 흡사 한국의 강원도 지형을 쏙 빼닮았다. 이곳은 수도 외곽에 있지만, 우기만 되면 황토색 흙탕물이 콸콸 쏟아져 나와 도로가 끊기기 일쑤고, 건기에는 항상 흙먼지가 펄펄 날려 숨쉬기조차 어렵다.

이 마을은 1968년 대한민국을 국빈방문했던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6·25전쟁 참전용사들(강뉴부대)의 정착을 돕기 위해 하사했다. 6·25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귀환한 전쟁영웅들은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고 행복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이런 호사는 오래가지 않았다. 1974년 쿠데타가 발생했고,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마을은 풍비박산이 났다.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났고,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에티오피아 강뉴부대는 전우애가 강하기로 유명했다. 6·25전쟁 당시 253전 253승. 패배를 모르는 용맹한 부대로 이름을 날렸다. 6037명의 참전용사 중 122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했다. 이들은 전투 중 사망한 전우를 전장에 남겨두지 않았고, 포로가 발생하면 끝까지 추적해 구출해냈다. 그래서 단 한 명의 포로가 없을뿐더러 전사자 중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가 한 명도 없는 진기록을 남겼다.


 


 

 

현재 한국마을에는 3만여 명이 살고 있으며, 그중 5000여 명이 참전용사나 그 후손들이다. 그들이 사는 마을 입구에는 에티오피아 국기와 대한민국 태극기가 나란히 그려진 입간판을 세워 놓았다. 200여 명의 생존 참전용사 대부분은 전쟁 후유증이나 노환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 그런데도 전쟁영웅들은 6·25전쟁 참전에 대해 무한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이들 노(老) 영웅들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다. 바로 후손들이 잘사는 것. 교육만이 현재의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다.

예카(한국마을)에 사는 참전용사 3세 아비기아는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렵다. 2002년 예카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열다섯 살 소녀 아비기아는 가족과 수다 떨고 노는 게 좋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갔다오면 먼저 집안일을 하고 공부할 정도로 어른스러운 소녀다.

아비기아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얘기는 할머니가 해주신 게 전부다. 할아버지가 강뉴부대 2진으로 6·25전쟁에 파병돼 셀 수 없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전쟁영웅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전쟁에서 무사히 귀환해 퇴역 후 정비사로 일하다 1984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비기아의 가족은 부모님, 오빠 두 명 등 다섯 식구다. 아버지는 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어머니는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두 분이 매일 열심히 살고 있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

아비기아가 학교에 다니려면 매월 530비르가 필요하다. 부모님의 한 달 수입은 1500비르(한화로 약 8만 원) 남짓. 아비기아의 학비로 3분의 1을 써야 한다.

한때 등록금 압박이 심해 학교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었다.

“수년 전 일이에요. 교장 선생님이 학비를 내지 못한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했어요. 시험 기간에 시험도 못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비기아는 일주일 뒤 학비를 내고 나서야 간신히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월드투게더의 지원을 받아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단다.

“월드투게더의 도움으로 등교할 수 있고, 거기에다 학용품이나 생활비까지 지원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덕분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어 주변 친구들이 부러워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고향인 예카를 한 번도 벗어나 보지 못한 아비기아는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아왔다. 그런 그의 꿈은 더 넓은 세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우연히 책을 통해 승무원이 되면 세계 곳곳을 가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프리카 너머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대한민국에도 가보고 싶어요. 할머니를 통해 들었는데 지금은 무척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들었거든요. 제가 승무원이 되면 우리 가족의 경제적 상황도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매일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꼭 승무원이 될 거예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와 가족을 도와주세요


<후원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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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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