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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던 전쟁터…미소로 반겨준 아이들 떠올라”

김용호 기사입력 2017. 07. 17   11:46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메코넨 타데세 옹

가난 피해 입대…스무살에 한국 파병

“28일간 항해 끝 도착한 부산항 처참…

혹한과 전장의 공포 아직까지 생생”

 

귀국 후 목수로 일하다 추락 큰 부상

생계 수단 막막…가족까지 뿔뿔이

대한민국 지킨 老영웅들 관심 절실

 

메코넨 타데세(오른쪽) 옹과 그의 가족.


“마치 생지옥 같았어요.” 열여덟 살에 고국을 떠나 6·25전쟁 파병을 마치고 돌아와 에티오피아의 아마다 지역에 살고 있는 전쟁 영웅 메코넨 타데세(Mekonen Tadesse) 옹이 65년 전 치열했던 전투 경험담을 털어놨다. 아프리카 이방인 메코넨 타데세 옹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 상황은 최악이었다.

“강뉴전사들이 생명을 담보로 전장의 한복판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냈던 청년 시절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해요. 고막을 찢을 듯한 총성과 포성의 공포로 한반도에는 신음 소리가 넘쳐났죠. 길에는 전쟁 통에 부모의 행방을 몰라 울고 있는 어린이들이 넘쳐났고, 구걸하고 노숙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어요. 전쟁의 폐허로 먹을 음식이 없었고, 거리에는 포격을 맞아 온전한 집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최악의 상황에도 이방인을 웃으며 반기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 어린이들의 미소에서 희망을 봤죠.”

참전용사 메코넨 타데세 옹은 1932년 아데아 베르가 단세(Adea Berga Danse)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소작농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농사와 가축 돌보기, 식수 길어오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1949년 에티오피아 정부의 모병 소식을 듣고 입대를 결심했다. 가난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에서다. 이후 1951년 강뉴부대 일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한국에 파병되기 전 공격전술과 방어전술, 기관총 사용법 등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받았다. 참전을 위해 대한민국 땅을 밟는 순간 고난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군함을 한 번도 타본 경험이 없던 그에게 지부티 항에서 태평양을 건너는 항해는 고문이었다.


마당 앞 타데세 옹이 앉아서 쉬는 공간.


결국 28일간의 항해 끝에 부산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는 당시 비참한 부산항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함정에서 전쟁을 상상하며 부산으로 향했어요.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부산의 모습은 처참했어요. 먹을 것이 없어 울고 있는 어린이를 보는 것은 어쩌면 가장 평화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가족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절망에 빠져 있는 피란 행렬과 다친 사람들이 뒤섞여 지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아비규환이었어요.”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1500명의 일원으로 부산항에 내린 후 전장에서 그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날씨였다. 대한민국의 변화무쌍한 4계절에 깜짝 놀랐다. 한여름의 고온 다습한 무더위, 겨울의 살을 에는 혹한과 허리까지 차는 눈이 주는 공포감은 전쟁이 끝난 지 6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6·25전쟁에서 무사히 귀국한 메코넨 타데세 옹은 케부르 제베그나(Kebur Zebegna)부대에서 7년 동안 근무했다.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면서 천직으로 여기던 군인 신분을 더는 유지할 수 없었다. 그는 총 대신 대패를 들고 목수로 전직했다. 20년간 목수로 열심히 일한 그에게 불행이 닥쳤다. 8m 높이의 건물에서 추락해 크게 다친 그는 목수로서의 삶을 접어야 했다. 다행히 긴급 의료 지원을 받아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이후 몸을 크게 다쳐 힘쓰는 일을 하지 못했다.

“내 몸 다친 것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가장 슬프고 걱정되는 것은 가장인 나를 의지하고 있던 가족들이었어요. 당장 생계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죠.”

메코넨 타데세 옹이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자 타데세 옹의 부인이 거리로 나섰다. 토마토·감자 같은 농작물을 키워 시장에 내다 팔았다. 생활은 겨우 유지했지만 이런 상황도 오래가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장 질환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메코넨 타데세 옹이 살고 있는 아마다 지역은 인구의 60%가 빈곤층이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된 가뭄으로 에티오피아는 지금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아마다 지역의 경우 인구의 60%가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저소득층은 하루에 한 번밖에 밥을 먹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섯 명의 자식 중 큰아들은 가업을 물려받아 목수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거리가 없어 개점 휴업 상태다. 둘째 아들은 일용직이고, 운전기사였던 막내아들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셋째와 넷째 아들은 4년 전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났다. 지금은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다. 고령의 ‘전쟁 영웅’인 그는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한데 모여 행복하게 살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에티오피아에는 메코넨 타데세 옹과 같은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200여 명 생존해 있다. 죽음이 눈앞으로 다가온 고령의 참전용사들이 쓸쓸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킨 그들이 “6·25전쟁에 참전하길 잘했어”라는 유언을 남길 수 있도록 우리 국민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후원방법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와 가족을 도와주세요

문의: 02-429-4044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902-052203
예금주: (사)월드투게더
금액: 월 1만 원 이상

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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