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국방안보

부모처럼 자녀들도 운명처럼 호국의 길

윤병노

입력 2017. 06. 2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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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家 대한민국 병역명문가-병무청 ‘병역명문가 선양’


할아버지 등 남자 3대가 군필 가문

모두 3923가문 ‘우리家 병역명문가’

 

군 복지시설 저렴하게 이용 혜택

금리 우대·지자체 시설 싸게 이용도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근간으로 하는 병역법을 시행하고 있다. 징병제는 국가가 국민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해 일정 기간 군대에 복무케 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한국 남성은 누구든지 의무적으로  병역판정검사를 받아야 하며, 현역병 입영대상자로 판정 받은 사람은 지방병무청장에 의해 징집 순서가 정해진다.

이 제도는 군대가 필요로 하는 인원을 쉽게 확보하고, 비교적 적은 경비로 군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반면 병역 거부·면탈 등의 범죄가 생길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병무청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사람이 긍지와 보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도를 마련했다. 바로 ‘병역명문가 선양사업’이다. 2004년 도입된 이 사업은 병역을 명예롭게 이행한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자발적인 병역이행을 확산하는 데 중점을 뒀다. 올해까지 3923가문이 병역명문가로 선정됐으며, 이들 가문의 병역이행자는 1만9555명에 달한다.



3代 가족 군 복무 이행 3923가문 선정

병역명문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큰아버지·작은아버지, 본인·형제·사촌형제 등 남자 3대(代) 가족이 모두 군 복무를 마친 가문을 말한다.

징집 또는 지원에 의해 장교·준(부)사관·병사로 소정의 복무를 마쳤거나 해양경찰, 경비교도대원, 의무소방원,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한 경우도 포함된다. 국민방위군·학도의용군 등 군인이 아닌 신분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사람도 대상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만든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사람도 해당한다. 3대째 남자가 없을 경우 1명 이상의 여성이 현역 복무를 마친 경우도 가능하다. 3대 가운데 징병검사·입영 기피자, 병역 면탈자가 있을 땐 선정에서 완전히 제외된다.

병역명문가 선정을 위해서는 1~2월 중 방문·우편·팩스 등으로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구비서류는 병역사항을 대조 확인할 수 있는 제적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 등이다. 이어 2~3월 중 외부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일반 병역명문가와 표창 대상 20가문을 선정한다. 표창심사심의위원회는 ▲병역이행 총 가족 수 ▲병 의무복무자 수 ▲총 복무 기간 등 병역이행 세부 내역을 검토해 표창 가문을 가린다.

병역명문가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제도 시행 첫해인 2004년 40가문이던 병역명문가는 2008년 100가문을 넘어섰다. 선정 기준을 개선한 2013년에는 545가문으로 대폭 늘었다. 지난해에는 560가문이, 올해에는 492가문이 영예를 안았다.

군 복지시설도 회원 자격으로 이용

병무청은 병역명문가가 우리 사회에서 우대받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현재 대상 1가문에는 대통령 표창이, 금상 2가문에는 국무총리 표창이 수여된다. 은상 5가문은 국방부 장관 표창, 동상 12가문은 병무청장 표창을 받는다.

모든 병역명문가에는 증서와 인증패, 병역명문가증을 발급한다. 병적증명서에 ‘병역명문가’를 표기하고, 병무청 홈페이지 ‘병역명문가 명예의 전당’에 가문의 내력을 영구적으로 게시한다.

이와 함께 6·25전쟁 기념식과 국군의 날 등 주요 행사에 초청해 명예를 고양하고, 55개 지방자치단체와 ‘병역명문가 우대 조례’를 제정해 편의시설 사용료·입장료·주차료 면제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외에도 민간기업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전국 760여 곳의 궁·능원, 자연휴양림, 콘도, 병원 등의 이용료를 면제(할인)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지난 19일부터는 국방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군(軍) 복지시설 이용이 가능하게 됐다. 병역명문가증을 발급받은 가족은 군 체력단련장(골프장)과 휴양시설(호텔·콘도), 마트(PX) 등의 복지시설을 회원 자격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군 복지시설 이용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국군복지단 홈페이지 또는 병무청 홈페이지 명예의 전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정한 병역이행 문화 정착에 심혈

공정한 병역이행 문화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병역이행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회에서도 이를 인정·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 병무청은 3대 가족이 모두 군 복무를 마친 가문을 선정·표창함으로써 자긍심을 갖게 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사회에 널리 알려 명예를 높여 주고 있다.

문화 체험, 금리 우대는 물론 지자체 조례 제정을 통해 현재 666개소 시설의 이용료를 감면·할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시행 초기에는 국가기관·지자체 등의 자발적인 협조와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병무청은 이해 관계자의 의견 청취를 강화하고, 전략적인 홍보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매년 병역명문가에 선정되는 가문과 지원기관이 증가하고, 병역에 대한 인식 또한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병역명문가 가족 중 6·25전쟁 참전 사실이 있음에도 참전유공자로 등록되지 않은 247명을 찾아 국가보훈처 ‘참전유공자 찾기 사업’과 연계, 국가유공자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병무청은 앞으로도 자발적인 병역이행 문화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병역명문가 선양사업을 보완·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총알 뚫고 간 자리는 지워지지 않는 훈장”

 

우리家 대한민국 병역명문가 - 2016 병역명문가 대상 이순득 옹

 

2주 남짓 훈련 받고 6·25전쟁 참전

팔·다리 관통상…“전역 너무 아쉬웠어”

 

병역 이행은 국가·국민 위한 헌신

나라사랑 정신이 튼튼한 국방력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됐다. 스물세 살 청년은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주저 없이 군에 입대했다. 전투에 투입돼 중공군과 싸우던 그는 총상을 입고 후송됐다. 수차례 의병전역을 거부했지만 상부의 특명으로 군복을 벗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조국애는 6명의 아들과 9명의 손자까지 60여 년 이어졌다. 지난해 병역명문가 대상을 수상한 이순득 옹의 이야기다. 이옹과 다섯째 아들 재오 씨를 만나 가문의 특별한 나라사랑정신을 들었다.



튼튼한 국방, 경제성장에 일조 뿌듯

총상을 입고도 국가 수호의 의지를 보였던 6·25 참전용사 이순득 옹의 가문은 아들 6명과 손자 9명 등 3대(代) 16명이 모두 현역으로 군 복무를 했다. 이들의 복무 기간을 합산하면 596개월에 달한다.

이옹의 큰아들 재석 씨는 갑종 224기로 임관해 소령으로 예편했고, 다섯째 재오 씨와 여섯째 재원 씨는 하사로 전역했다. 3대 윤한 씨는 시력이 좋지 않았지만 끝까지 임무를 완수한 후 육군병장으로 전역했고, 장호 씨는 귀신 잡는 해병대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이옹의 가문은 이를 바탕으로 2016년 병역명문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옹은 “병역이행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고귀한 헌신이며,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며 “오늘날 대한민국이 튼튼한 국방력과 함께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을 이뤄낸 데는 병역명문가의 나라사랑정신이 단단히 한몫했다”고 자부심을 밝혔다.

최고의 병역명문가로 선정된 이옹의 가문과 군의 첫 인연은 6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옹은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가을 군에 입대해 2주 남짓 훈련을 받고 육군8사단에 배치됐다. 1951년 2월 횡성고지전투에 참가한 그는 중공군의 총탄에 왼쪽 팔과 다리 관통상을 입었다.

“적군이 선점한 고지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전진 또 전진하던 중 팔과 허벅지를 총알이 관통했어.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전우들이 나를 들것에 실어 전장을 벗어나게 했지. 전우들이 없었다면 아마 그 고지에서 전사했을 거야. 이후 청주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산국군병원으로 후송돼 3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어. 그런데 어느 날 의병제대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어.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버텼지. 그렇지만 결국 상부의 특명으로 전역하게 됐어.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 아쉬워.”

병역명문가 대상은 인생 최고의 순간

총상은 90세 노병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 그러나 이옹은 총알이 뚫고 지나간 흔적을 ‘지워지지 않는 훈장’으로 여기며 경북 구미시 무을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런 그에게 다섯째 아들 재오 씨는 천군만마보다 더 든든한 지원군이다. 재오 씨는 부모님 집에서 차량으로 30분 남짓 걸리는 곳에서 컴퓨터 수리 매장을 운영 중이다. 그는 주말과 공휴일이면 어김없이 부모님을 찾아와 농사를 돕는다. 재오 씨는 병역명문가 시상식이 열린 지난해 5월 27일을 인생 최고의 날로 꼽았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개최된 행사에 초청돼 온 가족이 참석했다. 대통령 축하 메시지와 기념품, 병역명문가 증서를 전달받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느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닌 가족 모두의 성실함이 이뤄낸 열매이기에 더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청와대 초청·격려 행사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시골 마을에 병역명문가 대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동네 잔치도 열렸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지만 그날의 감격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병역기피 범죄 반드시 뿌리 뽑아야

재오 씨는 올해 병역명문가 상금이 축소된 것을 아쉬워했다. 상금과 행사를 확대해 병역의무의 중요성을 알리고, 더 많은 병역명문가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군대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병역 기피 현상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병역 기피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그들 대부분이 사회 지도층의 자녀이거나 스포츠·연예계 유명인이라는 게 더 안타깝다. 모범을 보여야 할 분들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면 사회와 국가가 올바르게 나아갈 수 없다. 원리원칙은 지켜져야 하며, 만인에게 공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병역 기피 현상이나 면탈 범죄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이옹과 아들 재오 씨는 군 생활 선배로서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내 가족과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군 복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조국 수호에 여념이 없는 장병들에게 감사하면서 당부하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군 생활이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해야 할 거라면 즐겁게 해야 한다. 옆에 있는 전우가 전장에서 내 목숨을 지켜 줄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60여 년 전 경험했다. 전우애는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싹튼다. 우리는 장병 여러분의 수고 덕분에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여러분 모두가 보람있게 군 생활을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전역하기를 기원한다.”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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