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해군3함대 추강진 병장
타지에서 일하던 아버지
사춘기 아들과 서서히 멀어져
입대하던 날 ‘남자 되어 오라’며 꼭 안아주던 아버지의 모습에
닫혀있던 마음도 조금씩 열려
조리병 생활하며 많이 달라진 아들
집에 오면 청소·요리 등 척척 해내고
셰프 되기 위해 조리사 공부까지 ‘기특’
아버지는 늘 말씀이 없으셨다. 살갑지도 않았다. 아들은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빴다. 그런 아들을 바로 잡기 위해 아버지는 체벌을 마다하지 않았다. 부자(父子) 사이는 더욱 멀어졌다. 입대하던 날, 한마디 말이 없던 아버지는 ‘남자가 되어 돌아오라’며 아들을 안아줬다. 그때부터 아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모범적인 군 생활은 물론,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 해군3함대사령부 3기지전대 본부대대 근무지원중대 추강진(22) 병장의 아버지 추영수(53) 씨, 어머니 고연희(48) 씨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최근 부대를 찾았다.
조리병 아들의 든든한 모습
초여름에 접어든 어느 화창한 날, 부모님은 시간을 내 전남 순천에서 영암에 있는 부대에 도착했다. 조리병인 추 병장은 삼학관 조리실에서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날 메뉴는 들깨순나물, 꽁치튀김 고추장 소스, 돼지고기 김치찌개. 추 병장을 포함해 4명의 조리병이 하루 세끼 420인분을 만들고 있다. 부모님은 대파를 얇게 써는 아들의 솜씨를 보고 놀랐고, 아들과 같이 일하는 조리병들의 손을 잡으며 인사도 나눴다.
추 병장은 육상식당에서 근무하기 전 31전대 충남함 조리병이었다. 처음 근무할 때만 해도 칼에 베이고, 뜨거운 물에 데기 일쑤였다. 더운 여름, 식사 메뉴 중 튀김이 있는 날이면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음식을 준비하는 아들들을 유심히 본 어머니는 “다들 저보다 요리를 잘하는 것 같다”면서 “병사들과 만나서 얘기해보니 하나같이 정말 착하다. 곧 더워질 텐데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지만, 씩씩해 보여 든든하다”고 말했다.
이후 부모님과 아들은 부대를 둘러보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눴다.
소통이 어려웠던 아버지와 아들
아들은 중학교 때 반 친구들과 자주 싸웠다. 공부도 안 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학교에 자주 불려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가 권유해 담배를 피우게 됐다. 그걸 본 아버지는 아들에게 엄한 체벌을 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타지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피해 다니기 바빴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입대 전까지도 서먹했다. 그나마 살갑고 유머가 넘치는 어머니가 있어 딱딱했던 집안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지곤 했다.
“남편이 말수가 적어요. 속마음도 표현을 잘 안 하고요. 아들은 오랜만에 본 아빠가 혼내기만 하니까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서로 안 마주치게 했죠. 그 당시에는 그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방법이 잘못된 것 같네요.”
그러다가 아들이 입대하게 됐다. 부모님은 아들의 군대 가는 길을 함께했다. 그때까지 한마디도 없었던 아버지는 ‘군에 가서 남자가 되어 오라’면서 아들을 꼭 안아줬다. 아들은 감동했다.
“입대하면서 마음을 잡을 수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던진 그 말이 뇌리에 박혔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군 생활을 경험하면서 사회생활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간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내색도 안 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추 병장은 조리병으로서 수병들에게 먹일 맛있는 밥을 지으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 책임감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전엔 집안일 손도 안 대던 녀석이 휴가 때 집에 오면 엄마 도와준다고 설거지도 하고, 걸레 하나로 다 끝낼 수 있다는 ‘해군 스타일’로 청소도 열심히 해요. 특히, 부대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자신 있는 요리인 날치알 오색 비빔밥과 토마토 해산물 스파게티를 가족들에게 선사해 주더라고요.”
아버지는 아들을 대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아들이 언제 속 썩인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보다 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잘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하면 된다”고 칭찬했다.
이연복 셰프를 롤 모델로…한국 최고의 셰프가 꿈!
군대 와서 진로도 결정했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아 조리병을 지원한 추 병장은 조리병 임무를 수행하면서 셰프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이연복 셰프를 본보기로 삼아 한국 최고의 셰프가 되는 게 꿈이다. 그래서 요즘은 멋진 미래를 위해 일과 이후,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 때 성적에 맞춰 기계우주항공공학을 전공했지만, 전역 후 조리학과나 식품영양학과로 전과할 생각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제일 가는 셰프가 될 것입니다.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어서요. 그리고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군 생활, 마무리 잘해서 부모님께 멋진 아들의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표현이 서툰 아버지라 미안하다… 사랑한다 ♥
아들에게.
너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쓰려니 어색함이 먼저 드는구나. 갓 태어난 너를 안은 것이 불과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여 년이 훌쩍 지났구나.
아버지가 집을 떠나서 하는 일이 많아 네가 성장하는 과정도 많이 지켜보지 못하고 미안할 때가 많았지. 표현 방식이 서툴다 보니 한 번씩 집에 가서도 너를 혼내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을 거야. 아버지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강진이가 다 크고 세월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후회가 되는구나. 모든 것을 엄마가 잘하리라 생각하고 우리 아들과 딸에게 조금 소홀했던 것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아버지가 너희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세상 누구보다도 크단다.
네가 군에 입대할 때 아버지 마음은 뿌듯했단다. 남자로서 나라를 위해 군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더구나. 이제 석 달만 있으면 전역이다. 사회에 나오면 군대 가기 전과는 또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아버지가 어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는구나. ‘타인의 실수에서 배워라. 스스로 모든 실수를 경험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의 소중함과 그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아들아! 얼마 남지 않은 군 생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주고 아버지는 표현은 부족하지만, 항상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만나자.
전역하면 대화 많이 나누는 아들 될게요!
아버지께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아들 강진이입니다.
입대할 때 진해까지 같이 가서 배웅해주신 게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병장을 달고 전역을 준비하는 시기가 됐습니다. 그동안 배를 타며 처음으로 단체생활도 해보고 힘든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군대도 이렇게 어려운데 저를 키우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나중에 아버지처럼 될 수 있을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리고 군 생활을 하면서 제가 그동안 철없이 행동했던 걸 깨닫고 저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됐어요. 이제 전역하게 되면 아버지께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대학도 열심히 다니고, 등록금도 제 손으로 벌고, 나중에 돈도 많이 벌어 호강시켜 드릴 겁니다.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아들이 될게요. 아버지 말씀처럼 ‘남자’가 돼서 사회로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전역하면 예전보다 서로 대화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엔 제가 철이 없어서 그랬지만 전역하면 다른 집의 아빠, 아들처럼 지내고 싶어요. 저 전역할 때까지 몸 건강히 지내시고 밖에서 뵙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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