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국방안보

국군과 31년 ‘동고동락’ M1, 1978년 ‘현역 은퇴’

이주형

입력 2017. 01. 12   17:35
0 댓글

<1> 소총


 M1- 1947년 육사 생도에게 첫 보급

발사속도·명중률 우수했지만 무거워

 

M16- 베트남 전쟁 거치며 주력 소총

1974년 국산화… 현재 예비군 사용

 

K2- 우리 체형에 맞게 1984년 개발

30여 년 국군 기본화기로 자리매김

 

 


 


시대를 관통하는 기록물은 그 시대의 모습을 알려주는 상징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살필 수 있으며, 하나의 문서에 의해 가치관과 시대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국방일보는 이러한 사진과 문서 등의 기록물 등을 통해 군에 관련된 다양한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부터 매월 격주로 찾아갑니다.

소총은 군인에게 ‘제2의 생명’이다. 군인의 무기체계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가장 기본이 되는 병기로 꼽힌다. 그런 만큼 소총은 그 나라의 국방력과 자주국방의 대표적인 무기체계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 국내 개발된 K2 소총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M1과 M16 소총이 있었다.



M1- 국군 창설부터 활약

국군 주력 소총 계보의 첫머리는 M1 소총이 장식한다. 1947년 10월 1일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처음 보급된 것이 그 시작. 1948년 4월부터는 일선 각 부대에 선보였다. 국군이 정식으로 창설된 1948년 8월 이후에는 미군으로부터 M1 소총이 대량 인도돼 일제 99식 소총을 본격적으로 대체했다. M1 소총은 반자동으로 사격 후 자동으로 탄피가 배출, 방아쇠만 당기면 다음 탄환을 사격할 수 있다. 같은 시기 다른 소총보다 발사속도와 명중률이 우수했지만 무게가 4.3㎏이나 돼 한국인에게는 다소 무거운 것이 흠이었다. M1 소총은, 6·25전쟁 당시 여러 전투에서 폭넓게 사용됐지만 국내에서 M16 소총이 생산되면서 점차 일선 부대에서 사라졌다. 육군 현역 부대에서 M1 소총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시점은 1978년이다.



1960년대 육군보병학교에서 M1 소총을 어깨에 메고 행진하는 교육생들의 모습. 국방일보 DB


M16- 1974년 주요 전투부대부터 교체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우리 군의 주력 소총은 달라진다. M16A1 소총의 등장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 병사들이 M14가 너무 무겁고 무덥고 습한 기후에 수목이 울창한 정글에서 들고 다니기가 무척 번거롭다는 문제 제기에 따라 1964년 새로운 제식 소총으로 M16을 채택한 것과도 시기가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베트남에 파병된 국군은 1966년부터 M16A1 소총을 비롯한 모든 장비와 보급품을 미군과 동일한 기준으로 지원받았다. 이어 육군의 현대화 5개년 계획이 수립되고, 1974년 부산 육군 제1조병창에서 국산화 생산이 이뤄지면서 주요 전투부대 순으로 M16A1 소총이 교체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60만여 정 이상이 생산됐다. M16소총은 현재 예비군 훈련 등에서만 일부 사용하고 있다.

첫 국내개발 총기인 K1A를 들고 훈련에 참가 중인 장병(1985년 4월).  육군기록정보관리단 제공

K2- 전력화 위해 실탄 100만 발 사용

우리 군의 기본화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K2 소총은 1970년대 면허 생산하던 5.56㎜ M16A1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화기다. 1984년 개발에 성공했고 1985년부터 우리 군에 납품, 개인화기로 본격 정착됐다. 신체 조건을 고려해 전장 97㎝로 짧게 설계한 K2는 접철식 개머리판을 사용해 휴대성과 기동성을 높였다. M16A1이 단발 및 연발로만 사격할 수 있는 데 비해 K2는 3발 점사 장치를 추가해 연발 사격에 따른 탄약 낭비를 억제시킨 것도 특징이다. 하지만 K2 소총을 처음 접한 장병들은 거부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당시 K2는 우리 장병이 휴대하고 사격하는 데 용이하도록 인간공학적인 설계를 했고, 이를 위해 선진국 소총의 인간공학 데이터, 외국군 체형과 한국군 체형 데이터를 참고해 방아손잡이 크기, 개머리판으로부터 가늠자·총대까지의 거리 등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를 모형 총으로 만들어 시험했는데 M1 소총이나 M16 소총 등 외국 소총에 익숙했던 장교·부사관 계층에서 K2 소총이 너무 작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또한 K2는 안전도와 명중도, 내구성 등 각종 기술 및 운영시험을 통해 전력화됐으며 이 과정에서 약 100만 발의 5.56㎜ 실탄이 사용됐다.


M1이 보급되기 전 우리 군

일본군 38·99식 소총 사용

일본군의 99식 소총.  국방일보 DB

 

M1 소총이 보급되기 전 우리 군은 일본군이 남기고 간 38식·99식 소총을 사용했다.

38식 소총은 일본 메이지 38년(1905)에 개발됐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1907~1909년 우리나라의 항일 의병을 강제 진압할 때 일본군이 사용한 소총이 38식 소총이었다. 일본군은 1919년 청산리 전투를 비롯, 우리 독립군과의 전투에서 거의 예외 없이 이 소총을 사용했다. 우리나라와는 악연이 많은 총이라고 할 수 있다.

99식 소총은 나고야 조병창(造兵廠)에서 1939년(일본 기원 2599년)부터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명칭이 부여됐다. 38식 소총을 대체한 99식 소총은 1941년 12월 8일 시작된 태평양 전쟁 기간 일본 육군의 주력 소총으로 사용됐다.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