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끝>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닌 일상에서 미술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거리와 공원입니다. ‘공공미술’이란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거리를 걷다 큰 건물 옆을 지나실 때 잠시 멈춰보세요. 앞에는 어김없이 조형물들이 있습니다. 청계천이나 올림픽공원에도 많은 조각품이 설치돼 있죠.
20세기에 많이 제작된 공공미술
공공미술은 20세기 들어 전 세계적으로 많이 제작됐습니다. 이전에 비해 장식성이 거의 없어 밋밋해 보이는 현대의 건축물을 꾸미기 위해, 어려워진 작품 경향 때문에 대중에게서 멀어진 현대미술을 보다 친숙하게 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양한 공공미술 작품을 제작했죠. 지금은 건축비의 1%를 미술 작품에 사용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 공공미술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광복 이후 위인들의 동상이 많이 세워졌죠. 학창 시절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의, 혹은 유관순 열사의 동상을 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1980년대에는 올림픽을 기념해 스포츠 관련 조형물들이 만들어지기도 했죠. 무엇인가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던 공공미술품들은 이제 일상에 침투해 거리와 공원을 장식하고 있죠. 지방에서는 지역색을 띤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예술과 생각보다 가깝답니다.
미국의 심장과 같은 워싱턴 DC 내셔널 몰
공공미술 작품 가운데도 전쟁을 주제로 한 것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미국으로 가볼까 하는데요.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 세워진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의 주인공은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입니다. 미국의 수도 한복판에 6·25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이 작품은 6·25 전쟁은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합니다. 미국은 6·25 전쟁을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했죠. 조형물이 세워진 내셔널 몰이라는 장소에 대해 살펴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1902년 세워진 내셔널 몰은 고대 로마의 웅장한 도시 구상을 본떠 만든 것으로 미국을 한 장소에 축소한 것과 같은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사방으로 국회의사당(동), 링컨기념비(서), 제퍼슨 기념비(남), 백악관(북)이 자리 잡고 있고, 가운데에는 오벨리스크 형태의 워싱턴 기념비가 솟아있죠.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들의 존경을 알 수 있습니다. 워싱턴 기념비 주변에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국립미술관 등 과학과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건물들이 있죠. 내셔널 몰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미국인들을 교육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미국의 심장과 같은 곳입니다. 그런 곳에 6·25 전쟁 참전용사를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졌다는 것은 6·25 전쟁이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가치와 국가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선정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기념비 설립에 꼬박 10년이 걸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는 전쟁이 끝나고 40여 년이나 지난 1995년에야 만들어졌습니다. 1985년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내셔널 몰에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뒤부터 꼬박 10년이 걸렸습니다. 앞서 1982년 내셔널 몰에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9년 동안 5만8153명의 사상자를 낸 베트남 전쟁과 3년 동안 5만4446명의 사상자를 낸 6·25 전쟁은 사상자의 수에서 비슷합니다. 하지만 전쟁 기간을 고려하면 6·25 전쟁이 더욱 치열했고 더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6·25 전쟁 참전용사들은 1800만 달러에 가까운 기부금을 내며 기념비 건립을 주도했죠. 현대와 삼성 등 우리 기업들도 25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기념비 설립을 위한 위원회에서는 공모를 통해 디자인을 선정하기로 하고 1989년 존 폴 루커스(John Paul Lucas), 베로니카 번스 루커스(Veronica Burns Lucas), 일라이저 페니패커 오버홀처(Eliza Pennypacker Oberholtzer), 돈 알바로 레온(Don Alvaro Leon) 등 펜실베니아주립대학 교수들로 건축가 팀을 꾸립니다. 이들은 숫자 ‘38’을 주요 테마로 선정했습니다. 38선과 38개월에 걸친 전쟁, 38명의 미군 보병소대가 전투의 영역에서부터 평화의 영역을 상징하는 성조기를 향해 전진하는 모습을 시각화했죠.
美 군인·韓 카투사 등 다양한 인물 담아
그러나 실제로 세워진 모습은 많이 다릅니다. 기념비는 북쪽 ‘기념의 연못’의 둥근 원형과 인물 군상이 배열된 삼각형 형태 그리고 그 옆의 검은 화강암 벽 등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죠. 나무로 둘러싸인 지름 30m의 ‘기억의 연못’은 한쪽에 ‘자유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고 반대쪽에는 사상자 수가 적혀 있습니다. 그 주변으로는 조각가 프랭크 게이로드(Frank Gaylord))가 제작한 19명의 군인 상이 놓여 있죠. 이들은 모두 비옷을 입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만난 바람과 혹한을 재현하기 위한 장치죠. 또 보병소대원뿐만 아니라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그리고 군의관, 간호원, 한국의 카투사와 흑인, 인디언 등의 인종과 각각의 계급, 역할을 보여주는 인물들로 구성했습니다. 50m 길이에 높이가 1.5~3m에 이르는 화강암 벽에는 2400여 명의 육·해·공군, 해병대, 간호군인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공모 당선작과 실제 작품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당선된 팀은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래서 창작권 침해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죠. 이 소송으로 3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결국 공모전에 당선된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작가들은 패소했습니다. 기념비 완성이 더 늦어진 이유는 여기에 있죠.
전통·현대성이 조화된 기념비
기념비는 전통성과 현대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전통성을 반영한 사실적인 조각 표현은 참전군인들의 취향이 반영돼 있죠. 그러나 현대성도 보입니다. 영웅적인 개인이나 집단을 애도한다기보다 평범한 군인들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기념비는 전통적인 미학과 현대적인 성격이 절충된 미국 민주주의의 이념을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저는 6·25 전쟁을 기억하는 미국인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인들마저 자신의 역사 속에 반영한 6·25 전쟁을 정작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죠. 1년 동안 떠나본 그림 여행이 즐거우셨는지 모르겠네요. ‘전쟁을 그린 화가들’을 연재하며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많은 작품 속에 그려진 전쟁의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전쟁의 시대를 살아낸 작가들은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전쟁을 그려냈고,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줬죠. 우리가 살펴본 작품들은 이제 과거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잊기 쉬운 전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지금의 우리가 왜 나라를 지켜야 하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됐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동안 ‘전쟁을 그린 화가들’을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연재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충성!
<김윤애 문화역서울284 주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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