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53사단 서혜준 일병 어머니>
사랑하는 아들에게
혜준! 날씨가 점차로 쌀쌀해지는구나. 너희 부대는 남쪽이라 큰 걱정이 없지만 벌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는 전방 지역의 아들들은 월동 준비에 몸과 마음이 바쁘겠구나. 서울에도 얼마 전 첫눈이 내렸지.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마냥 즐거워하면 어리거나 젊은 게고 퇴근길 교통체증과 미끄러운 눈길부터 걱정하면 나이를 먹은 거라더니, 엄마는 펑펑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겨우내 눈과의 전쟁을 치르며 제설 작업에 시달릴 아들들을 걱정했단다. 어쨌거나 겨울은 오고야 말았고 우리는 그 계절을 견뎌야 하리니….
언젠가 몹시 추운 날, 중국의 동산(洞山) 선사에게 어느 승려가 여쭈었단다.
“추위나 더위가 오면 어떻게 피하는 게 좋습니까?”
그러자 동산 선사는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으로 가면 되겠지!”라고 아주 심상하게 대답했다네. 누가 그걸 몰라서 묻나? 너무 쉬워서 답 같지 않은 답을 받아들고 승려가 다시 질문했다지.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 세상 어디에 그런 곳이 있을까? 아무리 에어컨과 온풍기가 있어도 다 막을 수 없는 것이 더위와 추위인데. 그런데 그때 툭 내던진 선사의 대답이 단순하고도 명쾌했더란다.
“추울 때는 추위에 뛰어들고, 더울 때는 더위에 뛰어드는 것이다!”
더울 때는 더위로 뛰어들어 스스로 철저하게 더운 것이 되어 버리고, 추울 때는 추위로 뛰어들어 자기 자신이 철저하게 추운 것이 되어 버리면, 더는 더위와 추위를 느끼며 괴로워할 일은 없을 테지. 그러니까 선사의 말씀인즉 도망쳐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정면으로 그것을 마주 보고 받아들여 경계를 지우라는 뜻일 게야.
올여름은 모질게도 더웠지. 그런 혹서를 겪은 터에 올겨울 혹한까지는 없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설령 모진 추위가 닥쳐올지라도 부디 요동치는 계절에 흔들리지 말고 모든 아들이 무사 무탈하게 잘 견뎌주길 빌 뿐이야. 아마도 엄마는 지난여름 무더위 속에서 훈련받을 아들을 걱정하며 에어컨을 켜지 못했던 것처럼 다가올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좀처럼 보일러를 틀지 못할 것 같아. 네가 추우면 엄마도 춥고, 네가 아프고 힘들면 엄마도 아프고 힘들단다. 이제는 어린아이 때처럼 따라다니며 챙겨줄 수 없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림자처럼 항상 너를 뒤쫓는단다.
세상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아! 부디 자신을 아끼고 몸과 마음을 잘 챙기렴. 그렇게 거뜬히 겨울을 이겨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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